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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리포트] 코로나 확산 속 '근거없는 정신승리'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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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리포트] 코로나 확산 속 '근거없는 정신승리' 눈길

왜 진단키트를 한국에 요청하냐고? 우리께 더 정확한데 한국은 부정확한데 빠르니까~라고 보도한 현지언론. 이미지 확대보기
왜 진단키트를 한국에 요청하냐고? 우리께 더 정확한데 한국은 부정확한데 빠르니까~라고 보도한 현지언론.
'너 자신을 알라.' 현재의 베트남의 상황을 꼬집은 말이다.

지금 젊은층들이 많이 쓰는 용어대로 표현하면 '존버'와 '근자감'으로 '정신승리' 중 정도일 듯하다. 이런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풀이하면 '존나 버티면서,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말도 안되는 상황을 스스로 합리화(위안)하고 끝낸다'는 뜻 정도일 것이다.
오늘자 현지뉴스를 보니 이 말부터 생각난다. 뉴스 제목을 찬찬히 살펴보니 '베트남이 왜 한국의 코로나19 빠른 진단키트에 대한 지원을 요청합니까?'정도로 씌여져 있다.

근데 내용이 기똥차다. 뉴스 내용을 빌리자면 베트남은 이미 대규모 진단키트를 생산하고 있는 나라다. 뭐 생산을 어떻게 했냐하면 기사를 쓰는 기자도 잘 몰랐을 것으로 예상되는 전문용어들을 끌어다 구구절절 지리하게 나열했다. 일단 결론은 그래서 자기들 진단키트로 환자를 테스트하면 100%정확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이 정도면 이미 다른나라에서 수출요청이 쇄도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24~48시간 정도 걸린단다.

삼성의 조치를 두고 베트남내 반응을 모아 보여주는 유튜브 영상.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의 조치를 두고 베트남내 반응을 모아 보여주는 유튜브 영상.

반면, 한국의 진단키트는 정확하진 않지만 속도가 빠르단다. 무려 어떠한 근거도 없이 '정확하지 않단다.' 그래서 지금 코로나19 확산시기의 베트남에 조금 더 적합하다는 게 기사의 요지다. 사실 우리께 더 우수한데 현 상황에서는 어쩔수 없이 사용해야 한다는 정도로 해석된다.

그 정확하지 않고 진단시간만 빠른 한국의 진단키트는 지금 전세계에서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놀랍다. 베트남에서 제일 유명한 홍옥병원이나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그룹이 설립한 종합병원 '빈맥'을 가봐도 한국의 웬만큼 갖춘 동네병원보다 수준이 못하다. 그런 나라에서 이런 평가를 받다니~

진짜 문제는 베트남 대부분 사람들이 전 분야에 걸쳐 이런 황당한 사실을 진실로 믿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가 정보를 차단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내보내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코로나19 확산추세는 '슈퍼 전파자'인 권력층에서 시작됐다. 이들로 인해 확산되기 전까지 수많은 의혹에도 베트남은 코로나 청정국이었다. 슈퍼 전파자가 된 17번째 확진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감염 의심자도 추가 확진자도 공식적으로 없었다. 그런데 웃기는 건 그 기간 동안에도 고급 아파트 단지나 산업공단에서는 끊임없이 공안들이 감염 의심자를 찾아다니고, 감염 의심자로 자가 격리된 현지인들의 소식이 SNS를 통해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확진판정을 받고도 각종 상류층 파티나 행사에 참여한 탓에 권력층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로 공식 발표를 할 수 밖에 없었던 17번째 확진자가 없었다면, 지금도 베트남은 코로나 청정국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보라. 추가로 발생한 확진자를 보면 대부분 외국인이 전파자다. 이들은 17번째 확진자와 같은 비행기를 탔다. 이들이 여행을 하면서 접촉한 사람들도 확진이 시작됐다. 그런데 각종 파티와 행사장에서 17번째 확진자와 어울렸던 상류층에서는 아직 공식적인 확진자가 한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17번째 확진자 이전에 중국과 한국에서 코로나가 확산되자, 베트남에서 코로나가 확산되면 우리 잘못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인들 탓'이라던 분위기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결국 남탓인 셈이다.

삼성이 베트남에 기술인력 700여명을 파견하면서 자가격리 2주간에 대한 절차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에 대해 베트남 현지인들은 난리법석을 피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삼성전자 구미공단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베트남으로 고급 스마트폰 생산이 옮겨온다며 기대를 하고 있다.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 spiritual victory)은 중화민국의 공산주의 리얼리즘 작가 겸 반봉건주의 비평가 루쉰의 '아큐정전,(阿Q正傳)'에서 사용된 말이다. '아큐정전'의 주인공 '아큐'는 동네 깡패들에게 얻어맞고는 "나는 아들한테 맞은 격이다. 아들뻘 되는 녀석과는 싸울 필요가 없으니, 나는 정신적으로 패배하지 않은 것이다"는 식으로 자위한다. 루쉰은 이러한 민중의 근성을 아큐의 '정신승리법'에 빗대어 비평했다.


응웬 티 홍 행 글로벌이코노믹 베트남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