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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해외석학이 말하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격차 줄여…더 센 감염병 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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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해외석학이 말하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격차 줄여…더 센 감염병 대비를”

1918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스페인독감’에 감염된 사람들이 미국 캔자스주 포트 라일리 인근의 한 구급 병원에 가득한 모습.이미지 확대보기
1918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스페인독감’에 감염된 사람들이 미국 캔자스주 포트 라일리 인근의 한 구급 병원에 가득한 모습.

감염병 팬데믹은 때때로 의외의 영향을 사회에 끼친다. 대부분은 대량의 사망자와 사회의 황폐화를 초래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의 부를 재분배시키는 플러스의 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증하듯 팬데믹은 과거에 몇 번이나 세계정세를 크게 흔들어 왔다. 지금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도 세계정세를 불안정하게 하는 힘을 가질까.

프랑스 잡지 ‘르 포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를 역사적 관점으로부터 파악하기 위해 ‘폭력과 불평등의 인류사-전쟁, 혁명, 붕괴, 역병’의 저자로 알려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역사학자 월터 샤이델 교수에게 지금의 상황이 앞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물어봤다. 그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Q=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대재앙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사회 내 격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해 왔다는데, 왜 팬데믹 같은 대재앙은 격차를 축소 시켜 왔습니까?

A=역사상 유명한 팬데믹은 모두 오래전 것으로 현대 사회와는 크게 다른 농업을 중심으로 한 사회를 덮치고 있습니다. 전염병의 내습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죽으면 일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크게 줄어듭니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사람에게 이전과 같은 일을 하도록 하려면 임금을 올려줘야 합니다. 반면 땅값은 하락합니다. 주민 수가 줄어들어 토지가 남아돌기 때문입니다. 즉 땅 주인은 전보다 더 가난해지고, 노동자는 전보다 더 부유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과거 시대의 사례이기 때문에 현대에서도 통용될지는 불명확합니다. 역사를 바탕으로 과거의 사례를 조사한다고 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Q=현대 사회에서도 팬데믹이 격차를 좁힐 수 있습니까?

근대 최초의 팬데믹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입니다. 팬데믹이 현대 사회를 덮치면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할 때 이 ‘스페인독감’이 참고가 됩니다. 다만 문제는 이 팬데믹은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일어난 것이란 겁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 격차가 축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가 전쟁에 의한 것이며, 어디까지가 팬데믹에 의한 것인지를 판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스페인독감’과 같은 대규모 팬데믹은 이후 발생하지 않아 다른 단서가 되는 사례가 없습니다. 과거 사회와는 크게 다른 현대 사회에서 역병의 대유행이 발생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간략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연구자 중에는 현대 사회에서 ‘스페인독감’이 발생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시뮬레이션을 한 사람들은 있습니다.

만일 이번 코로나19가가 ‘스페인독감’과 비슷해진다면 이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전개를 예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사망자가 대량으로 나올 것으로 예측되는 곳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 등 개발도상국입니다. 이런 나라들은 전염병을 막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겁니다. 반면 부자들의 피해는 그런 나라들보다는 가벼워질 것입니다. 다만 사망자가 많이 나왔을 때 그것이 사회의 부의 재분배로 이어질 지 여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Q=미국 증시가 하향 조정되고, 단 며칠 만에 다우존스평균주가가 4,500포인트나 하락하기도 했던 것 등은 부의 재분배를 촉구한 것처럼 보입니다.

A=주식을 많이 가진 사람은 부자이고, 주가가 일주일 전보다 떨어지면 그만큼 가난해지는 셈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미약하나마 평등화가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 일시적 현상일 뿐입니다. 앞으로 코로나19의 감염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경제가 장기적으로 타격을 받아 자본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자본 배분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의 평등화가 진행되게 됩니다.

Q=금융경제학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에 따르면 사람들이 ‘패닉’을 일으키는 것이 정부나 기관의 과감한 조치를 부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한 대담한 조치는 나중에 되돌아보면 불필요했다고 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미래를 전망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조치를 단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역사학자인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것은 정부나 기관의 반응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지는 것일까요?

A=탈레브의 이론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훈련과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이번 코로나19가 언급되고 있는 만큼 위험하지 않았다고 해도 다음 신형 바이러스는 더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각국 정부는 역병 대책을 실시하면서 어떤 시책이 큰 규모에서도 유효한지를 학습하고 있습니다. 회의실 탁상에서 최악의 전염병을 상정하고 대책을 준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만반의 준비가 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이번과 같은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에 예를 들어 5년 후에 또 신형 바이러스가 출현했을 때 이번보다 뛰어난 방어 수단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해석해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1348년 유럽에 흑사병이 덮쳤을 때 검역을 실시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럴 준비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죠. 그 후 시대의 경과와 함께 역병 대책에 대한 준비도 갖춰지게 됐습니다. 17세기 무렵에는 국가가 준비를 잘했기 때문에 페스트가 유행하자 과감한 검역 조치를 실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것은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 프랑스 왕국이 실시한 가혹한 검역 조치입니다. 마르세유 주민의 절반이 죽었지만, 역병은 봉쇄되었습니다. 과거 전염병 유행에서 배운 성과가 있었기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오스만 제국은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병으로 고통받는 정도가 커졌습니다. 이런 점에서 각국 정부가 역병 유행에 직면하는 경험이 늘어나면 그만큼 전염병에 강해지고 대응 능력도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최대급으로 위험한 역병에도 대처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Q=유스티아누스의 반점으로 불리던 페스트의 대유행도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대규모 팬데믹이 국가를 붕괴시킨 사례는 있는 것일까요. 아즈테카 제국과 잉카 제국을 제외하면 팬데믹으로 인해 붕괴된 국가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A=국가는 팬데믹이 닥쳐도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시대에 따라 다릅니다. 고대나 중세는 사회가 단순했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은 자급자족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생활이 의존하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서 국가가 그 참화에 시달리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가 파괴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잉카와 아즈테카에 관해서 말하자면 두 제국이 붕괴한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역병도 그 요인 중 하나인데 ‘콩키스타도르(정복자)’가 온 것도 그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두 제국에서 역병이 유행했어도 그 후에 ‘콩키스타도르’의 상륙이 없었다면 국가를 재건할 수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대 국가가 고대나 중세 국가와 다른 것은 경제가 복잡하게 연결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남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현대 국가 쪽이 14세기 국가보다 훨씬 더 불안정해질 위험성이 높습니다.

다만 현대 국가는 규모가 크고, 대응 능력도 높고, 예산과 정보의 축적도 있기에 역병을 물리치는 힘이 강합니다. 그래서 현대 국가가 역병으로 무너질 가능성은 낮습니다. 남수단 같은 나라는 역병이 유행하기 전부터 파탄 직전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국가가 역병의 대유행을 만날 경우 붕괴 과정이 빨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로부터 부유한 국가가 붕괴 될 위험은 상당한 대참사일 경우는 다르지만 별로 없다고 봅니다.

Q=이란 중국 등은 불안정해 보입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국가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국가의 붕괴가 없더라도 역병의 대유행으로 체제가 붕괴 될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까?

시니컬해지고 싶지 않지만 이란이나 중국에서 살면 국가가 거짓말을 하는 것에 금방 익숙해져 버릴 겁니다. 이러한 나라의 정부는 위기를 잘 헤쳐나갔는가로 평가됩니다.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는지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중국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평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 정부는 공격적인 자세로 사태에 대처해 나갔으니까요. 결국 중국 국민은 자국 지도자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보지 않을까요.

중국은 과격한 조치를 감행할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이란 같은 나라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란은 이미 다른 요인으로 체제에 압력이 가해지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그래서 전염병의 유행이 마지막 한 방울이 되어 항아리의 물이 쏟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역병의 유행이 체제를 붕괴시킨 유일한 요인이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체제의 붕괴는 있어도 국가의 붕괴는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Q=’대항해 시대’ 역병의 유행이 세계정세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역병이 세계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 사례가 또 있나요?

A=’대항해 시대’는 인류사상 유일무이한 것이지요. 이전까지 완전히 별개였던 남북 아메리카와 유라시아라는 두 세계가 처음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것과 비교할만한 일은 또 없습니다. 말하자면 외계인이 지구로 와서 외계인의 병이 전염되어 지구인 사이에서 대유행했던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인과관계가 뚜렷한 이야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만 7세기 초에 동로마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사이에 30년 정도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실은 이 전쟁이 시작되기 2세대 전에 페스트의 유행이 있었고 그 참화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페스트의 유행이 동로마제국의 힘을 약화시켰고, 그것을 보고 페르시아가 동로마제국에 전쟁을 걸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쟁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쟁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종전 시 두 제국의 영토는 결국 전쟁 전과 다름없었지만 오랜 전쟁 탓에 두 제국 모두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의 아랍인의 침공에 저항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타이밍은 우연이 아닙니다.

두 제국이 30년 동안 전쟁을 계속하면서 서로의 나라의 힘을 약화시키지 않았다면 이슬람 제국의 판도가 그렇게 넓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이슬람 제국은 지금의 이란뿐만 아니라 동로마제국의 영토의 상당 부분을 몇 년 만에 정복해 버린 것이니까요. 지난 30년의 전쟁을 가능하게 한 것이 역병이었다면, 역병이 아랍 제국의 발흥을 불러와 세계정세를 크게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이것은 아직 추측에 지나지 않은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