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이어 재택 근무 제품으로 소개할 두 번째 디자인은 허먼 밀러의 사무용 체어(Chair)이다. 이 브랜드는 조지 넬슨(George Nelson)과 찰스 임스(Charles Eames), 알렉산더 지라드(Alexander Girard) 같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작품으로도 유명하며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나 돈 채드윅(Don Chadwick) 등 현대 산업디자인을 이끌어가는 디자이너 대부분이 거의 모두 거쳐 갔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그들의 디자인 중심 경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Studio 7.5(독일)를 비롯한 세계적인 디자인 스튜디오와 현재도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코코넛 체어부터 임스 라운지 체어까지 역사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허먼 밀러지만 그들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각인시킨 제품은 단연코 에어론 체어(Aeron Chair)였다.
1994년 출시된 이 제품은 빌 스텀프(Bill Stumpf)와 돈 채드윅(Don Chadwick)이 디자인한 사무용 체어의 표준 모델이며 제품 개발 초기부터 철저한 사용자 경험 분석과 인체학자, 과학자, 엔지니어, CMF(Color Material Finishing) 디자이너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2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탄생시킨 명실상부한 인체공학 체어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자 전 세계적으로 매년 100만 개 이상 판매되는 부동의 베스트셀러 체어이기도 하다.
에어론 체어의 핵심은 사용자 관찰을 통한 인사이트(Insight) 즉, 열 분산 메카니즘에 있다. 사무직 근로자들이 엉덩이를 뒤척이거나 자주 자리에서 일어나는 행동에서 의자 쿠션과 등받이에 상당한 열이 발생함을 발견했고 열을 분산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소재를 찾게 된다. 듀폰(Dupont)사의 펠리클(Pellicle) 메시가 바로 그것인데 이 소재는 공기와 체열(體熱), 수증기가 통과하는 신소재이며 지금의 에어론 체어의 핵심이기도 하다.
에어론 체어의 파급 효과는 대단했다. 스틸케이스(Steelcase)의 립체어(Leap Chair), 휴먼스케일(Human Scale)의 프리덤 체어(Freedom Chair)가 뒤를 이어 탄생했고 일본 오카무라(Okamura)의 콘테사(Contessa) 역시 계보를 이어가는 유명한 체어들이다. 허먼밀러 또한 미라(Mirra), 세투(Setu), 엠바디(Embody), 코즘(Cosm) 같은 다양한 라인업으로 최상위 브랜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멀티테스킹이 불가피한 재택 근무 환경에서 성과까지 내야 한다면 최적의 근무 환경은 필수 요건이다. 주 52시간 근무 등 짧은 업무 시간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앉아 있는 동안 최상의 근무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의자의 선택은 몸 무게의 분산으로 뒤척임을 줄일 수 있고 체열(體熱)의 순환으로 장시간 업무 집중에도 도움이 되어 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구글(Google), 아마존(Amazone), 페이스북(Facebook), 마이크로 소프트(MS) 같은 세계적인 IT기업들이 앞다퉈 인체공학적인 체어를 제공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며 이러한 사례는 분명한 ‘사용자 중심 디자인’(User Centered Design)의 폼 팩터(Form Factor)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에게 디자인 강의를 하면서 첫 월급을 타면 꼭 좋은 의자부터 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인체공학적인 사무용 의자는 디자인과 기능이 하나의 제품으로 완벽하게 결합한 훌륭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김정한 씽크디자인연구소 대표(계원예술대 산업디자인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