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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엔터 24] 법원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송신 정지로 보는 코로나19 이후 영화산업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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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엔터 24] 법원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송신 정지로 보는 코로나19 이후 영화산업 판도

한국 법원이 넷플릭스 송신 정지 명령을 내린 신작 영화 ‘사냥의 시간’ 포스터.이미지 확대보기
한국 법원이 넷플릭스 송신 정지 명령을 내린 신작 영화 ‘사냥의 시간’ 포스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인해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가운데, 격리 생활 중에 집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영상 넷 전달 서비스(OTT) 업계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특히 최대 업체 넷플릭스는 접속자가 몰리면서 일시적으로 접속이 안 되는 등의 문제도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 넷플릭스를 통해 10일부터 세계배송이 결정된 한 편의 한국영화가 지금 국내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영화 ‘사냥의 시간’은 올해 열린 제70회 베를린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베를린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부문’에 초청받았다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관심이 높았다. 게다가 주연배우 중 한 명인 최우석은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에서 아들 기우 역의 호연으로 주목받은 다음 작품이어서 많은 팬들이 개봉을 고대했다. 원래 2월20일부터 열린 베를린영화제와 비슷한 시기인 2월 26일 전국 개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개봉을 연기할 수밖에 없게 됐다.

⬛ 넷플릭스 통한 전 세계 송신 돌연 발표

감염 수습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채 공개일이 정해지지 않고 한 달이 지난 3월 하순 제작 회사인 ‘리틀빅픽쳐스’는 돌연 “극장 개봉은 하지 않고 넷플릭스로 전 세계 190개국에 전달한다”라고 발표했다. 할리우드의 대작 영화조차 1년 가까이 개봉 연기를 발표하는 등 영화업계에 코로나19 영향이 심각해지기 시작한 타이밍의 발표였다.

분명 지금 개봉해봤자 영화관에는 관객은 없는 상태다. 소중한 작품을 적자 각오로 개봉해 버리기보다는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배급으로 전환한 방법은 상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전달 선행형 공개가 문제가 되는 것인가?

사실 이 영화의 해외 판권이 이미 일본, 홍콩, 호주 등 14개국과 지역에 판매됐고, 그중 몇 개국은 2억여 원의 계약금도 입금된 상태였다고 한다. 해외 세일즈를 담당했던 해외 판권 창구인 ‘콘텐츠 팬더’는 이는 이중계약에 해당하는 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제작사 리틀빅픽처스는 “넷플릭스와 계약을 하기 전에 사전 통보를 해 이미 동의를 받았다”고 반박하면서 양측의 주장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이에 따라 ‘콘텐츠 팬더’가 서울지법에 계약파기 무효와 상영금지 소송을 냈고 9일 법원은 콘‘텐츠 팬더’의 주장를 인정해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극장, 인터넷 TV를 통해 상영, 판매, 전송하거나 비디오 DVD 등의 제작, 판매, 반포 등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한 것.

⬛ ‘업계 룰’ 깬 신작 영화 넷플릭스 전달

이 문제가 불거지면서 뉴스로 다뤄지게 된 3월 말에는 제작사 리틀빅픽처스 사장 권지원이 YTN FM 1994.5 라디오 ‘생생경제’ 생방송에 출연했다. 관심을 끈 것은 극장 수입이 이익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한국 영화업계에서 극장 개봉을 포기하게 할 정도의 배급권료로 넷플릭스가 도대체 얼마를 제시했는가?라는 점이었다. 리틀빅픽처스는 해외 판권사에 계약파기 보증금까지 주겠다고 한다. 프로그램 안에서 구체적인 액수가 언급되는 것은 없었지만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는 정도의 액수”라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만일 이번 '사냥의 시간'이 최종적으로 넷플릭스로 전달되어 인기를 끌어 성공 예가 된다면, 향후 개봉 예정으로 이미 해외 판권이 팔린 작품도 같은 방법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언제 신작을 공개할 수 있을지 모르는 지금의 상황에서 당장 구할 수 있는 캐시가 필요한 영화제작사는 솔깃할 수밖에 없다. 사실 권지원 사장에게는 다른 여러 제작사에서 어떻게 넷플릭스에 팔았느냐. 담당자를 소개해 달라는 문의가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 한국 영화산업 전체 이미지 훼손 우려도

많은 사람이 영화의 해외배급권리가 매매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해외에서 히트한 영화는 자동적으로 자기 나라에서도 상영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스크린 뒤에서는 판권을 파는 회사와 사는 회사가 일반적으로 7년간 한시적으로 계약서를 주고받고 영화 개봉 후에도 오랜 기간 주고 받는다.

극장 개봉에서 OTT를 통한 세계 배급으로 방향을 튼 것은 제작사 입장에서 보면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권 사장이 사들인 영화 계약을 파기했을 뿐 위약금을 내면 다 끝나는 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해외 판매원인 ‘콘텐츠 팬더’의 입장에서는 신뢰 관계에 관한 문제다.

이미 몇몇 한국 영화제작사가 권 사장에게 문의했듯이 앞으로 다른 제작사도 권 사장을 따라가게 되면 해외 영화권리 취급회사는 같은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위험회피 차원에서 한국영화 매입을 꺼릴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 영화산업 전체의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콘텐츠 비즈니스는?

이번 ‘사냥의 시간’처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엔 영화와 OTT의 관계가 확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비디오 시대의 선입견이 있던 관객들에게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것은 ‘B급 영화’라는 이미지를 갖기 일쑤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굳이 극장 개봉을 하지 않는 OTT 직구의 대작도 있다는 인식으로 바뀌고, 어디서 어떻게 영화를 보느냐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될 것이다.

‘사냥의 시간’ 말고도 그런 사례는 이미 등장했다. 3월 13일부터 텍사스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음악·영화·이노베이션 축제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중지되었지만, 주최자 측이 “상영 예정이었던 영화를 아마존 프라임과 손잡고 무료로 전달한다”고 발표했다. 이 밖에도 스필버그의 영화사 ‘드림웍스’는 신작 애니메이션 영화 ‘트롤스 뮤직 파워’를 코로나19 영향으로 극장 개봉이 어렵다고 판단, OTT와 극장 동시 개봉을 한 바 있다.

게다가 현재 문을 닫은 미국 극장 폐관이 장기화되자 공개 대기 중인 디즈니 영화 ‘원더우먼 1984’ ‘블랙 위도우’는 디즈니가 운영하는 OTT 디즈니 플러스를 활용해 OTT와 동시 개봉할 수 있다는 소문도 이미 흘러나오고 있다.

⬛ 위기 상황에서 수단을 선택할 여유는 없지만

영화제작에 종사하는 스태프 전원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라는 공통의 최종 목표를 가지고 있듯이 영화의 해외 매매 스태프는 제작국뿐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많은 세계인에게 이 영화를 알리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그 골을 메우기 위해서 누구도 수단을 선택하고 있을 틈이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이 미뤄지면서 금전적으로 쫓기고 있는 제작사의 구제를 위해서도 OTT의 활약은 기대되지만, 한편으로는 코로나19 감염 종식 후에도 OTT 의존이 정착되어 버릴 경우 영화관이라는 비즈니스가 성립하지 않게 되어 영화업계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과연 이번에 재판소가 송출정지를 명한 한국영화 ‘사냥의 시간’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극장이건 넷플릭스가 되건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볼 수 있었던 시기에는 우선 영화를 즐기는 데 집중해 주었으면 한다. 게다가 이 작품을 봐 주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노력했다고 하는 것과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OTT의 본연의 자세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