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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도시보증공사 이대론 안된다(상)] '깜깜이' 분양가 심사로 주택사업자 '골병'...국토부는 '모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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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도시보증공사 이대론 안된다(상)] '깜깜이' 분양가 심사로 주택사업자 '골병'...국토부는 '모르쇠'

수유동 강북종합시장 재개발 시행사, HUG '분양가 500만원 낮춰라' 일방요구로 파산 위기
심사기준 잦은 변경 혼란에도 "내규상 비공개" 일관...공시지가도 무시, 기준 적용 '자의적'
사실상 '행정처분' 불구 이의신청 등 구제수단 없어...국토부 "기준 공개하면 꼼수 발생" 두둔

서울 강북구 수유동 '강북종합시장 정비사업 주상복합 신축공사' 현장. 사진=김철훈 기자 이미지 확대보기
서울 강북구 수유동 '강북종합시장 정비사업 주상복합 신축공사' 현장. 사진=김철훈 기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신규아파트 분양가 심사기준 비공개 원칙이 '깜깜이 기준'이라는 오명을 넘어 법치주의를 흔드는 월권행위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HUG의 '깜깜이 기준' 때문에 멀쩡한 개발사업 시행사가 당장 파산할 위기에 처해 있어 그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북구 수유동 강북종합시장 재개발 사업을 15년째 진행해 온 시행사 강북종합시장주식회사(현 CS네트웍스주식회사, 이하 CS네트웍스)가 이달 말 파산 위기에 놓여 있다.

이유는 HUG가 당시 시행사인 강북종합이 제시한 희망 분양가보다 3.3㎡당 약 500만 원 낮게 결정하는 바람에 시행사의 채산성이 적자로 돌아서면서 부도 위기에 몰렸다는 설명이다.

수유동 강북종합시장 재개발 사업은 주상복합 15층짜리 2개동, 10층짜리 1개동 규모에 총 216가구의 아파트와 판매시설을 신축하는 내용이다. 시공은 ㈜대원이 맡았다.

CS네트웍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관리처분 최종인가를 받은 뒤 곧바로 11월 같은 강북구에서 분양한 한신공영 단지(분양가 3.3㎡당 1999만 원)를 '비교사업장'으로 선정, 이를 기준으로 지난달 3.3㎡당 2010만 원의 희망 분양가를 HUG에 제시했다.

그러나 HUG는 한신공영 단지는 '비교사업장'이 될 수 없다고 결정한 뒤 2014년 준공된 도봉구 쌍문동의 코오롱글로벌 단지를 비교사업장으로 직접 선정해 3.3㎡당 1540만 원의 분양가를 책정해 시행사에 통보했다.

문제는 15년간 사업을 진행해 왔고, 지난 2월 착공까지 들어간 시행사조차 '비교사업장'을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HUG는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기준'을 개정해 새로운 '비교사업장' 선정 기준을 발표했다. 새 선정 기준은 우선 '해당 지역에서 입지·단지규모·브랜드 등이 유사한 최근 1년 이내 분양한 아파트'를 '비교사업장'으로 정하도록 했다.

만일, 해당 비교사업장이 없으면 둘째로 '해당 지역에서 입지·단지규모·브랜드 등이 유사한 분양한지 1년을 초과한 아파트'를 비교사업장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마저 적격 아파트가 없다면 마지막으로 '해당 지역에서 입지·단지규모·브랜드 등이 유사하며 준공된 지 10년이 지나지 않은 아파트'를 '비교사업장'으로 하도록 했다.

그러나, HUG는 새 선정 기준에 명시한 '입지', '단지규모', '브랜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 선정 주체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을 남겨놓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술 더 떠 HUG는 지난 2월 다시 심사기준을 개편해 일부 항목을 세분화하고 가중치를 적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개편 사실 자체를 공식 발표하지 않았고 세부 항목과 가중치 역시 공개하지 않았다. '깜깜이 기준'이라는 외부의 비판이 나온 배경이었다.

강북종합시장 재개발을 준비하면서 시행사인 CS네트웍스는 통상적으로 '입지'로 고려되는 항목들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수유동 내에는 10년 이내 준공 아파트가 없기 때문에 강북구 내에서 1년 이내에 분양했고, 동시에 교통(역세권), 교육시설(초·중·고교), 편의시설(관공서·병원·쇼핑시설), 공시지가 등이 유사한 한신공영 단지를 선정한 이유였다. 오히려 지하철역과 거리, 버스노선 수, 편의시설, 공시지가 등은 대원이 더 우수했다고 시행사는 주장했다.

'단지규모'는 비슷했고(대원 216가구, 한신공영 203가구), '브랜드'도 도급순위의 차이는 있지만(대원 57위, 한신공영 16위) 소비자의 주관적 선호도를 반영하는 만큼 반드시 도급순위와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었다.

반면에 HUG는 대원과 한신공영의 '입지가 다르다'고 판단했다. CS네트웍스에 따르면, HUG는 입지 차이의 이유로 첫째, 한신공영은 '주거전용지'여서 역세권인 대원보다 입지 가치가 더 높다는 주장이었다.

둘째, 대원과 한신공영은 모두 1㎞ 이내에 각각 초등학교 3곳, 중학교 3곳씩 있지만, 대원 단지 1㎞ 이내에는 고등학교가 없고 한신공영 단지는 고등학교 3곳이 있다는 이유로 입지가 다르다는 근거로 제시했다. 지하철역 거리는 대원 360m, 한신공영 780m로 대원이 우수하지만, 똑같이 1㎞ 이내이므로 '차별성이 없다'고 HUG는 평가했다.

공시지가는 대원(㎡당 398만 원)이 한신공영(㎡당 219만 원)보다 높지만 HUG는 자체 기준상 공시지가 반영 비중이 낮다는 점을 들어 선정기준을 좌우하는 요소로 보지 않았다.

이밖에 HUG는 도급순위는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하는 공신력 있는 기준으로서, 대원과 한신공영의 도급순위 격차가 커 브랜드 유사성이 없다고 봤다.

이와 달리, HUG가 제시한 비교사업장 코오롱글로벌도 한신공영과 같이 '주거전용지'이고, 도급순위(코오롱글로벌 19위)도 대원보다는 한신공영과 더 가깝다.

더욱이 HUG는 대원 단지엔 고등학교가 없고 한신공영 단지에는 고등학교가 3개라 입지가 다르다고 적시했지만, 코오롱글로벌 단지 1㎞ 이내에는 고등학교가 한신공영보다 1개 더 많은 4개다.

CS네트웍스와 업계는 시행사가 제시한 비교사업장보다 더 유사하지 않은 비교사업장을 HUG가 선정하고 분양가를 결정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CS네트웍스 관계자는 "대원은 한신공영과 초·중학교 수는 같은데 고등학교만 없다는 이유로 입지가 다르다고 하면 누가 이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역세권이 일반주거지보다 입지 가치가 떨어진다는 설명도 이해하기 어렵고, 도급순위는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하기 때문에 공신력이 있는 지표라면서 입지 등을 모두 고려해 국가기관이 평가하는 공시지가는 거의 반영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분양을 위해서는 분양보증이 필수이고, 분양보증을 독점하고 있는 HUG의 분양가 결정은 사실상 공권력 행사로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행정처분' 성격을 가짐에도 분양가 심사기준이 HUG 내규에 불과해 공개를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같은 문제점은 행정주체의 자의적인 행정작용을 억제함으로써 예측가능성을 높인다는 법치주의의 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의신청 등 구제방법도 전무하다는 점에서 월권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는 비판과 일맥상통한다.

아울러 법치주의 원리인 '소급적용 금지원칙'에 위배될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HUG가 비교사업장 판단기준인 '브랜드'의 세부항목으로 '도급순위'를 추가한 시점은 최근이다.

CS네트웍스는 2018년 '도급순위' 평가항목이 없을 때 대원을 시공사로 선정했으나, HUG는 이번 분양가 심사에서 한신공영과 도급순위 차이가 커 서로 브랜드 유사성이 없다고 밝혔다. 최근에 만든 기준을 이전의 행위에 적용해 시행사에 불이익을 준 셈이다.

CS네트웍스 관계자는 "도급순위를 기준으로 사용할지 알았다면 대원 대신 더 상위 도급순위의 시공사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은 관리처분과 같이 소유 등 권리관계를 법적으로 해결해야 이주와 철거가 가능하고 비로소 착공이 가능한 선분양제 중심의 제도"라며 "분양가 심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후분양을 하라는 HUG의 태도는 제도 모순에 따른 폐해를 결국 사업자에게 전가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HUG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심사기준 개선과 관련해 "1년초과 분양 기준과 준공 기준의 경우, 분양가 수준이 기존보다 다소 하향 조정되는 효과가 예상됨에 따라 HUG 보증 리스크와 주택시장을 보다 안정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HUG 상급기관인 국토교통부는 분양가 보증심사 기준을 공개하면 꼼수를 쓸 수 있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며 공개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