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글로벌-이슈 24] 건강 안전지수 최하위권 슬로바키아가 코로나19 봉쇄 성공한 세 가지 요인은?

공유
0

[글로벌-이슈 24] 건강 안전지수 최하위권 슬로바키아가 코로나19 봉쇄 성공한 세 가지 요인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슬로바키아 시민들.이미지 확대보기
마스크를 착용한 채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슬로바키아 시민들.

인구 당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사망자 수가 유럽에서 가장 적은 나라는? 5월 6일에 제한 조치의 대폭 완화를 발표한 독일도, 반 락 다운(도시 봉쇄) 전략을 취하는 스웨덴도 아니다. 인구 545만 명의 슬로바키아다.

이 나라에서 확인된 감염자 수는 1,455명으로, 사망자 수는 26명(5월 8일 시점)에 불과하다. 이미 2만 명 이상이 사망한 뉴욕주에 슬로바키아의 사망률을 적용할 경우 사망자 수는 90여 명에 그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슬로바키아가 코로나19 차단에 성공한 것은 봉쇄 때문이 아니다. 현실은 정반대로 사람의 왕래 정도는 유럽 어느 국가보다도 높다. 유럽 내 타국으로 출퇴근하거나 계절 노동자나 이민자로 일하는 슬로바키아 국민은 수십만 명에 이른다. 아웃브레이크(감염증의 폭발적 확대)가 발생한 이웃 나라 오스트리아에는 2만 명 이상이 고령자 간병 종사자로서 통근하고 있으며 젊은 층의 유학 경향은 EU 각국 중 가장 높다.

휴대전화 이용 데이터에 따르면 2월 후반~3월 초에 코로나19 감염확산이 한창이던 이탈리아 북부를 방문한 슬로바키아인은 약 5만 명에 이르렀지만, 이들이 귀국한 뒤에도 대규모 감염 확대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망률이 낮은 것은 공공기관의 질이 높기 때문도 아니다. 슬로바키아는 EU 회원국이지만 지난해 발표된 세계건강안전 지수는 최하위권이다.

이 지수는 195개국을 대상으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등에 대한 대응능력을 평가했다. 슬로바키아의 ‘에피데믹(국소적 유행)의 조기 발견·보고’능력은 70위, ‘에피데믹 확대에 대한 신속한 대응·억제’능력은 105위에 불과하다. 대조적으로 독일은 전자가 10위, 후자는 28위로 평가된다. 이러한 숫자가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슬로바키아 국민은 지난 한달 반 정도 사이에 깨닫고 있었다.

■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낮지만

팬데믹 선언 당초 슬로바키아의 PPE(개인용 방호구)·검사 키트 비축 수는 한정적이었다. 검사나 접촉자 추적에 임하는 팀도,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갖추어져 있었다고는 해도, 수는 미미했다. 현재도 동국은 접촉자 추적 앱도 ‘스마트 격리’제도도 도입하고 있지 않다. 반면 마찬가지로 봉쇄에 성공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인 대만은 팬데믹 선언 전부터 그러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로바키아 국내 집단 감염 사례는 주로 3개 그룹에 국한된 것으로 보인다. 소수민족 로마의 빈곤층(영국으로부터의 귀국자로부터 감염이 확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간호 시설에서 사는 고령자, U턴 해 온 이민과 그 가족이다. 분명히 당국은 신속히 움직였지만 대응에 나선 것은 집단 감염의 발생 후에 지나지 않는다.

■ 감염 확대를 막은 3가지 요인

그렇다면 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지 않았을까. 복수의 전문가에 의하면 큰 요인은 세 가지가 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정부의 신속한 결단이다. 긴급사태 선포가 발령된 것은 국내 첫 감염자가 확인된 지 9일 만인 3월 15일로 다음 날부터 학교가 일제히 휴교하고 식료품점, 약국, 은행을 제외한 모든 상업 시설이 폐쇄돼 행사나 집회 개최가 금지됐다.

또 국내 전 공항을 폐쇄하고 귀국자 격리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일부 국가와 달리 개인 단위에서의 이동은 대체로 제한되지 않았다. 이런 조치들이 성공한 것은 제2의 요인 덕분일 것이다. 즉 국민이 한목소리로 즉각 요청에 따른 것이다. 슬로바키아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치가나 정부에 대한 신뢰감이 낮다. 그래도 이번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지시대로 행동했다.

여기엔 정치인의 자세가 한몫한 게 틀림없다. 준비부족 책임 소재를 둘러싼 정당 간 다툼은 있었지만 연방당국과 주당국이 대립하는 미국과 달리 위협의 심각성이나 제한조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거기서 중요해지는 게 제3의 요인이다. 공공기관보다 바이러스 차단에 더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언론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WHO의 부정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슬로바키아에서는 일찌감치 마스크 착용이 보급됐다. 분기점이 된 것은 3월 13일 국내 인기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새 내각 출범 전 이고르 마토비치 총리와 마렉 크라이치 신임 보건장관 내정자에게 사회자가 마스크를 건네고 모범을 보이도록 요구하면서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마스크를 썼고, 다음날부터 온 나라에 마스크 착용이 확산됐다.

■ 미디어와 시민의 힘으로 극복

코로나 위기는 보다 강경파인 미디어의 독자 수 증가에도 연결되고 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평소 건강문제에 관한 ‘음모론’을 펴는 비주류 온라인 매체의 인기가 매우 높다. 하지만 당초 몇 주 동안 이들 웹사이트는 코로나19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았다.

그 결과 주류 매체가 여론 형성에 앞장섰다. 부활절 휴가 중의 여행에 관한 판단 미스 등 특정의 시책은 비판하면서도, 이러한 미디어는 규제 준수의 필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신중하게 피했다.

슬로바키아에서는 4월 22일부터 일련의 제한 조치의 완화가 시작되었다. 하루 신규 감염자 수가 한 자릿수를 맴돌고 있어 5월 6일부터는 대부분의 상점, 음식점, 호텔의 영업 재개가 허용됐다. 휴교는 계속돼 음식점에서는 테라스 석만 이용할 수 있는 등 지금도 보통과는 거리가 멀지만, 시민들은 새로운 머리 모양의 자신의 이미지를 투고해 이제야 미용실에 갈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하고 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는 정부의 신속하고 단호한 행동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요구되는 규범에 따른다는 공감대를 미디어와 시민사회가 구축하면 공중위생 당국의 미비를 보완할 수 있다. 슬로바키아의 성공 사례는 그렇게 가르쳐 준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