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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24] 미네소타주 흑인 사망으로 재조명되는 LA 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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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24] 미네소타주 흑인 사망으로 재조명되는 LA 폭동

킹은 시속 188km로 고속도로 달리다가 체포돼 구타당해…한인타운 막대한 피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인 조지 플로이드(46)의 목을 무릎으로 찍어 눌러 숨지게 해 워싱턴과 뉴욕 등 미국 곳곳에서는 약탈과 방화 등 폭동 수준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1992년 발생한 로스앤젤레스(LA) 폭동 영상. 사진=THE OCR이미지 확대보기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인 조지 플로이드(46)의 목을 무릎으로 찍어 눌러 숨지게 해 워싱턴과 뉴욕 등 미국 곳곳에서는 약탈과 방화 등 폭동 수준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1992년 발생한 로스앤젤레스(LA) 폭동 영상. 사진=THE OCR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 때문에 흑인 남성이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뒤 시작된 미국의 격렬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이 흑인인 조지 플로이드(46)의 목을 무릎으로 찍어 눌러 숨지게 해 워싱턴과 뉴욕 등 미국 곳곳에서는 약탈과 방화 등 폭동 수준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주방위군이 투입되고 연방정부가 강력 대응을 천명하면서 미국에서는 28년 전인 1992년 발생한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을 연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당시 경찰의 백인 경찰의 구타로 흑인 로드니 킹이 사망했지만, 경찰관 4명이 무죄를 선고받자 LA 등지에서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당시 곳곳이 폭동에 노출되면서 한인 상가 등의 피해도 막심했다. 헌병부대까지 파견됐지만 폭동은 오래 지속됐다.

로드니 킹 사건은 지난 1992년 4∼5월 LA를 폭동으로 뒤덮었던 미국의 숨기고 싶은 치부이다. LA를 비롯해 애틀랜타, 라스베이거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등 각지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일련의 폭동으로 최소 63명이 숨지고, 2383명이 다쳤다. 체포된 사람은 9500명에 달했다.

이 사건의 연원은 1991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인종갈등을 드러내고, 한인사회의 안타까운 피해를 야기했던 로드니 킹 사건은 여러모로 한국과 여러 연관이 있다.

먼저 그가 고속도로 위에서 과속 운전을 이유로 체포될 당시 운전한 차는 한국산 현대 엑셀 승용차(1987년 모델)였다.

시속 117마일(시속 188 km) 달리던 그는 차를 빼라는 경찰의 요구에도 운전을 계속했다. 이후 4명의 백인 경찰관이 킹을 체포해 두들켜 패는 장면은 아마추어 카메라 영상에 그대로 포착됐다.

백인으로 구성된 1심 재판에서 경찰관들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이에 흑인들은 분노했고, LA 경찰 당국은 비상령을 내렸다.

흑인들이 백인 운전자에게 폭행을 가하자, 백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경계가 강화됐다. 흑인들은 급기야 경찰 병력이 없는 LA 시내 한인타운을 목표로 삼았다.

폭동으로 한인들은 10억 달러(약 1조 2280억 원)가 넘는 손실을 입었다. 폭동 사망자 중에는 한인도 1명 포함됐다.

흑인 폭동의 시발점으로 작용했던 킹은 체포 당시 건설 노동자였다가 나중에 작가와 인권운동가로 삶을 마감했다. 1965년생으로 1992년 당시 27세였던 킹은 2012년 6월 47세로 생을 마감했다.


유명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mhyo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