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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안도현 '수제비'와 치바이스(齊白石) '연꽃과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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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 안도현 '수제비'와 치바이스(齊白石) '연꽃과 개구리'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막걸리 한 잔하는 술추렴이 있어 왁자하게 떠들고 웃으며 육자배기 가락과 유행가 뽕짝이 흐르는 골방. 그곳의 시큼하고 털털하고 퀴퀴한 냄새가 해마다 이맘때면 사무치게 그립다

수제비-안도현

비 온다
찬 없다

온다간다 말없다

처마 끝엔 낙숫물

헛발 짚는 낙숫물

개구리들 밥상가에

왁자하게 울건 말건
밀가루반죽 치대는

조강지처 손바닥

하얗게 쇠든 말든

섰다 패를 돌리는

저녁 빗소리


치바이스(齊白石) '연꽃과 개구리' (1954년, 종이에 채색, 베이징 영보재).
치바이스(齊白石) '연꽃과 개구리' (1954년, 종이에 채색, 베이징 영보재).


이 시는 안도현(安度昡, 1961~ )의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 2008)에 보인다. 24절기 중에 특히 ‘하지(夏至)와 소서(小暑)(6월 21일~7월 7일)’ 사이에 찾아 부러 읽기에 참 좋다. 나는 해마다 이 기간이 오면 경기도 오산 독산성 보적사 툇마루에 시집을 끼고 앉거나 수원 방화수류정 처마 밑을 줄곧 찾는다. 이왕이면 비 오는 날로 골라 외출을 맞춤하는 편이다.

올해는 장맛비가 쏟아지는 날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 양평 세미원 연꽃을 찾으려고 한다. 연잎에 돌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감상하기 위해서다. 그런 오늘은 분명 어제와 사뭇 다른 정취를 느끼게 한다.

觀水洗心 觀花美心 (관수세심 관화미심)

세미원 입구 건물에 새겨진 여덟 글자다. 이 글귀는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 연꽃을 굳이 보려는 마음은 이 때문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내가 살아 있음이 기쁘다.

혹시 아는가. 당대(唐代) 시인 두목(杜牧, 803~852)이 말했던 ‘모두 그녀만 못한 미인’을 우연히 보게 될지도 또 어찌 아랴(?) [봄바람 부는 십 리 양주 길, 기루의 주렴 걷고 보아도 모두 그녀만 못하네(春風十里揚州路, 卷上珠簾總不知)]

歌扇輕約 (가선경약)

여인이 부채를 들어 바람에 날리는 꽃을 슬쩍 치거나 받는다는 뜻이다. ‘부채’는 여인의 패션이자 무기가 되는 셈이다. 중국 남송(南宋) 때 시인 강기(姜夔, 1155~1221)가 35세 때 쓴 송사 ‘비파선’에 ‘가선경약’이란 글이 보인다. 가선은 ‘부채 든 여인’을, 경약(輕約)은 ‘가볍게 가로막다’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부드럽게 거절하다’로도 뜻을 새길 수 있다.

나는 독서하다가 급히 메모했다. 마스크 대신에 부채로 코로나19를 슬쩍 치거나 물리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내용의 낙서를 여백에다 썼다. 이러한 내 생각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그림이 하나 있다. 서양화이다. 20년차 미술패션 전문기자 유아정이 쓴 책 <아름다운 것들의 역사>(에이엠스토리, 2018)에서 보았다.

베르트 모리조 '무도회에서' (19세기, 캔버스에 유채).이미지 확대보기
베르트 모리조 '무도회에서'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인상파 화가 베르트 모리조가 그린 <무도회에서>는 말 그대로 무도회장에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다. 모리조 특유의 섬세하고 풍부한 색채가 고스란히 담긴 이 그림을 보노라면 화사한 무도회장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볼이 살짝 상기된 여인은 왜 부채를 자신의 왼쪽 뺨에 살며시 대고 있을까. 무도회장이 더워서는 아닌 것 같다. 더우면 힘차게 파닥파닥 부채질을 하거나 이도 아니면 손에 꽉 끼는 하얀색 새틴 장갑부터 벗으면 될 일이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부채를 통해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중략) 그림 속의 그녀는 부채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 누군가를 향해 ‘아니요!’라는 뜻을 전하고 있다. 당시 교본에 따르면 부채를 왼쪽 뺨에 댄다는 것은 거부의 의미다. 그녀의 볼이 살짝 발그스레했던 것은 더워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였나보다. 반대로 오른쪽 뺨에 대는 것은 승낙을 뜻한다.

이밖에 오른손으로 부채를 들어 얼굴을 가리면 ‘나를 따라 오세요’라는 뜻이고, 왼손으로 하면 ‘당신과 친해지고 싶어요’를 의미했다. 또 왼손으로 부채를 만지작거리면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어요’, 왼손에 부채를 들고 펼치면 ‘이리로 와서 얘기 좀 해요’라는 뜻이었다니, 당시 무도회장에 나선 여인들은 오른손 왼손 번갈아가며 부채를 오므렸다 폈다 엄청 부산했을 게 눈에 선하다. 또 여인들의 손동작과 부채의 복잡다단한 의미를 행여나 놓칠세라 부지런히 눈을 굴려야했던 남자들은 얼마나 고단했을까.(유아정 <아름다운 것들의 역사>, 168~171쪽)

동양에서 서양으로 넘어간 부채가 참 다양한 의사 표현을 했다, 라는 사실에 누군가 코로나19 퇴치용 부채를 개발한다면 대박날 것 같다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 어쨌든 손에 쥐고 있는 부채로 여인들은 다양한 의사를 표현했다. 이 점에서 시와 그림의 역사는 흥미롭기 그지없다. 아름답다!

다시 안도현의 ‘수제비’로 돌아가자. 이 시를 읽으면 나는 자꾸만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의 그림 한 점 <연꽃과 개구리>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뇌리에 스친다.

가난한 시골 목수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거장의 화가로 우뚝 선 그가 우리 나이로 97세(1957년)까지 존경을 받고 장수를 누린 복은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을 잘 찾은 덕분’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장수(長壽)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처음부터 지독하게 악랄한 사람이거나, 끝까지 공부하는 것을 매우 즐기는 사람이 참, 오래 산다.

그것은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는다. 돈 많은 부자인데 악랄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장수할 가능성이 높다. 돈은 없어도 자기 일을 즐기는 사람 또한 장수의 복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이를 옛말로는 ‘모기(耄期)’라고 했다. 여든부터 ‘모’가 시작된다. 100세를 다 채우면 ‘기’가 끝난다. 역사적인 우리네 인생살이 모습이다.

미술평론가 손철주는<인생이 그림 같다>(생각의나무, 2005년)에서 치바이스의 그림을 두고 이렇게 기막히게 평한 바 있다. 다음이 그것이다.

치바이스가 그린 ‘시골풍의 옛 그림’은 그러나 배부른 추억을 가진 자는 결코 그릴 수 없는, 빈천한 자를 위로하는 그림이다. 그가 94세에 그린 <연꽃과 개구리>를 보자. 때는 가을, 폭염 속에 짙푸름을 뽐내던 연잎은 시절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하지만 선홍빛 연꽃은 가버린 여름을 짝사랑했는지 여지껏 단심(丹心)이다. 연밥은 농익어 건드리면 ‘톡’ 하고 구를 것 같다. 개구리 세 마리가 그 아래서 머리를 바짝 치켜든 채 회담 중이다. 그들은 한 시절 울어예며 잘 보냈지만 다가올 가을살이가 걱정이다. 치바이스는 선홍색, 갈색, 노란색, 회색, 검은색, 연녹색을 죽 펼쳐 놓으며 사연 많은 생명의 기억들을 일깨운다. 삶의 순환도 계절의 무상함처럼 영고성쇠의 가두리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만 추억은 지워지지 않아 뒤에 올 사람을 따스하게 쓰다듬는.(같은 책, 104~105쪽)

안도현의 시의 화자는 아낙네 차림이다. 남편이란 작자가 집에 없다. 그날은 마침 비가 왔다. 마땅한 찬도 없고 김치만 달랑인가 보다. “온다간다 말없다”는 서방에게 원망하는 마음은 “처마 끝엔 낙숫물/ 헛발 짚는 낙숫물”로 실컷 씻어내 위안을 삼는다.

자식을 의인화 한 “개구리들 밥상가에”는 입만 쩍쩍 벌려 기다리는데, 막내가 배고프다고 “왁자하게 울건 말건/ 밀가루반죽 쳐대는/ 조강지처 손바닥”은 아름다운 미인의 역사가 모두 다 뒤로 사라졌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땀투성이 밴 옷은 밀가루가 “하얗게 쇠든 말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저렇듯 묵묵히 한 끼니를 해결하려는 저 뜨거운 모성애(母性愛)가 1970년대의 30대 중반~40대 초반의 어머니들 그림으로 펼쳐진다. 영화처럼 오버랩이 된다.

농촌. 장맛비가 쏟아지는 절기가 닥치면, 아버지들은 삼삼오오 마을회관이나 이장집에 모여서 화투를 쳤다. “저녁 빗소리”가 시작되는 때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도시에 사는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들도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섰다 패를 돌리”시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아버지들의 마흔 심리였다. 막걸리 한 잔하는 술추렴이 있어 왁자하게 떠들고 웃으며 육자배기 가락과 유행가 뽕짝이 흐르는 골방. 그곳의 시큼하고 털털하고 퀴퀴한 냄새가 해마다 이맘때면 사무치게 그립다.

요사이 3040세대 아줌마들은 수제비를 만들 줄 모른다. 칼국수도 못 만든다. 대신에 집 앞 편의점에 앉아 자식에게 컵라면, 떡볶이, 피자를 주로 사준다. 2020년, 우리네 사는 동네의 풍속화 그림이다. 체험,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아무튼 하지와 소서 사이에 먹어 보는 수제비 맛이란 이때가 최고이다.

◆ 참고문헌

안도현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 2008)

치바이스 지음, 김남희 옮김 <쇠똥 화로에서 향내 나다> (학고재, 2003)

손철주 <인생이 그림 같다> (생각의나무, 2005)

주조모 엮음, 이동향 역주 <송사삼백수(宋詞三百首)> (문학과지성사, 2011)

유아정 <아름다운 것들의 역사> (에이엠스토리, 2018)

이어령 외 <인문학콘서트2> (이숲, 2010)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심상훈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ylmfa97@naver.com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