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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 24] 일본, '반갑지 않은' 29년 연속 세계 최대 채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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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 24] 일본, '반갑지 않은' 29년 연속 세계 최대 채권국

일본내에서 고수익 투자처 없어 해외 증권과 직접투자로 눈돌려…최근 10년간 직접투자 급증

일본이 29년 연속 세계최대채권국의 자리를 유지한 것은 ‘잃어버린 20년 불황’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마스크를 쓴 채 도쿄시민들이 귀가하는 모습. 사진=비지니스인사이더 캡처이미지 확대보기
일본이 29년 연속 세계최대채권국의 자리를 유지한 것은 ‘잃어버린 20년 불황’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마스크를 쓴 채 도쿄시민들이 귀가하는 모습. 사진=비지니스인사이더 캡처
일본이 30년 가까이 세계 최대 대외순자산국이 된 것은 거품경제가 붕괴된 이후 1990년부터 20년 이상 경제가 침체된 ‘헤이세이(平成) 불황’에 따라 일본내에서는 더 이상 투자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해외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즈호은행의 카다카마 다이스케(唐鎌大輔) 수석 시장이코노미스트는 비즈니스인사이더 기록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외환시장에서 엔은 점차 ‘안전자산’ 또는 ‘도피치’로 표현된다. 실제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국면에서 볼만한 정도의 박력도 느낄 수 없지만 ‘분위기가 위험하게 된다면 엔이 강세를 보인다’라는 인식은 아직도 남아있다.

이는 정확한 지적이라 할 수 있다. 5월말 재무성이 발표한 ‘일본 대외자산부채 잔액상황(2019년말 현재)에 따르면 일본의 대외순자산 잔액은 지난해와 비교헤 23조 엔이나 증가한 364조5250억 엔을 기록해 2년 연속 증가했으며 29년 연속으로 세계 최대 대외채권국의 자리를 유지하는 결과가 됐다. 금액적으로는 5년 만에 과거 최고치를 경신했다.

◇ 최근 10년간 해외 직접투자 급증


안전자산으로서 엔매수에 과거보다 힘이 없지만 이는 대외순자산의 구조가 크게 바뀐 것과 관계가 있다.

대외순자산에서 차지하는 각 항목의 비율은 직접투자가 지난해보다 2.1%포인트 증가한 46.4%로 과거 최대치를 기록한 반면 증권투자는 0.1%포인트 높아진 29.3%로 거의 횡보추세에 머물렀다.

2000~2010년 평균으로 보면 증권투자 41.6%, 직접투자 18.0%로 이전에는 압도적으로 증권투자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2011~2019년 평균으로 보면 증권투자 32.8%, 직접투자 35.8%로 거의 비슷한 양상이지만 직접투자 비율이 높아져가는 상황이다. 리먼브라더스 파산후 세계에서는 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에 증권투자보다도 직접투자의 편이 높은 기대수익을 예상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기업으로부터 본다면 ‘축소하는 국내시장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라는 절박한 판단도 있었다고 보인다.

이 같은 기업행동의 변화가 지난 10년간을 통해 일본의 대외경제부분에 극적인 구조변화를 가져온 것은 틀림없다.

◇ 안전자산으로서 엔매수가 감소한 이유


그렇다면 이같은 변화가 왜 ‘안전자산으로서 엔매수’를 약화시킨 것일까. 사실은 잘 생각해보면 곧바로 이해할 수 있다.

시장에서 리스크 회피 분위기가 강해질 때 ‘해외채권을 내던지고 엔화표시 자산으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이 대두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시장분위기가 위기상황이 됐을 때에는 우선 유동성이 높은 자산, 될 수 있다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자국통화표시의 자산을 확보해두고 싶은 것이다.

일본의 대외순자산은 2000년대 전반까지 증권투자, 특히 미국채를 중심으로 한 해외채권이 과반을 차지해왔다. 그러한 구조인 까닭에 위험하게 되면 해외채권을 내던지고 안전자산으로서 엔을 매수하는 움직임이 만들어지기 쉬웠다.

그러나 지금에서는 일본의 대외순자산의 절반 가까이는 직접투자가 차지하면서 증권투자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축소됐다. 리스크 회피 분위기가 강해질 때 ‘해외채권을 내던지고 엔표시자산으로 되돌아간다’라는 움직임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해도 ‘(직접투자의 대상인) 매수한 외국기업을 내던지고 엔표시 자산으로 되돌아간다’라는 움직임이 대두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이같은 직접투자의 증가라는 대외순자산의 구성변화야 말로 ‘안전자산으로서 엔 매수’를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판단된다.

◇ ‘잃어버린 20년’ 산물


역시 ‘세계최대의 대외순자산국’이라는 위상은 그 반향만큼 멋진 것은 아니다.

대외순자산이 증가하는 것은 결국 국내로부터 국외로의 증권투자와 직접투자(단적으로 얘기하면 외국기업 매수·합병(M&A))가 활발하다라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국내에의 투자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경제의 1990~2010년은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지만 이 기간동안 한번도 바뀌지 않고 ‘세계 최대의 대외순자산국’으로 계속 유지해왔다는 것은 ‘잃어버린 20년’의 산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직접투자의 급증은 최근 10년이 채 안된 기간동안 진행되고 있는 추세다. ‘잃어버린 20년’을 거쳐 많은 일본기업들이 ‘국내시장에서는 기대수익이 높은 투자기회가 없다’라고 판단한 결과일 것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계속 위축되고 있는 일본 국내시장에 투자하기보다 해외기업의 매수와 출자를 통해 시간과 시장을 사는 편이 중장기적인 성장으로 이어진다라고 판단한 결과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10~2020년 10년간 ‘일본의 기업부문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포기하기 시작한 기간’이라는 해석은 대외순자산의 내역을 보는 한 결코 빗나갔다라고 말할 수 없는 현상이다. 앞으로 1990~2020년이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날도 다가올지도 모른다.

◇ 세계 최대의 대외채권국에 가까워진 독일


‘세계 최대의 대외순자산국’이라는 위상은 엔이 안전자산으로 불리는 가장 정확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일본정부 채무는 대명목GDP(국내총생산)와 비교해 선진국 중 최악인데도 불구하고 엔 가치가 높고 저금리로 안정된 것은 이같은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물론 일본은행이 대량으로 국채를 매입하고 있는 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최대의 대외 순자산국’이라는 위상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엔 시세는 그렇더라도 안전자산으로 받아들여질까.

이 점에서 최근 약간 걱정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 대외순자산국’인 독일의 약진이다.

독일도 또한 저출산·고령화로 내수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경상적자가 쌓여져 대외채권국으로서 굳건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만약 독일 마르크가 건재하다면 필경 엔에 필적할 강세를 유지해 독일의 수출기업을 어렵게하는 상황이 상정된다. 독일은 일본에 육박해오고 있다.

‘영원히 평가절하된 통화’인 유로를 보유한 독일은 매년 세계 최대급의 무역흑자를 벌어들이며 이에 따라 대외순자산을 쌓아오고 있다.

한편 일본은 반복되는 가혹한 엔고와 지진 등을 경험하며 해외생산 이전을 진행한 결과 이미 국내수출 거점이 부족하게 됐으며 무역수지는 대략 균형을 보이는 이미지를 보이고 있다. 독일과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독일은 아무리 무역흑자를 기록해도 통화유로가 독일의 실력에 상승할 정도로 강하게 되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대외순자산은 지금부터도 지속적으로 쌓여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외순자산국으로서 일본과 독일의 순위가 어쨌든 역전되고 이상하지 않다.

물론 세계최대이든 세계2위든 거대한 대외채권국의 통화는 다른 통화와 비교해 수급면에서 선호될 이유가 있다. 때문에 ‘세계2위의 대외순자산국’이어도 엔은 안전자산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외환시장은 때때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세계 최대의 대외 순자산국이 아니다’라는 사실이 엔을 매도하는 한가지 계기가 될 가능성이 부정되지 않는다.

이는 최근 수년동안 일어난 것과 같은 우려는 아니지만 엔 시세의 중장기 전망을 고려하는데 중요한 논점이다.


박경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jcho101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