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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아직도 방황하고 있었다’ 내가 내려야할 결정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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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아직도 방황하고 있었다’ 내가 내려야할 결정 앞에서

대학에서 끝인 줄 안 방황, 해외 직장에서 극복한 사례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부총장(전무)이미지 확대보기
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부총장(전무)
처음 받은 김민지 주임(가명)이 보내온 스케치 글의 제목이었다. 제목이 심상치 않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읽어가니 방황을 극복한 성장통이라 마음이 놓였다.

김 주임이 겪은 일은 입사 1년차가 작업물량이 90%나 급감하는 상황에서 외주 협력업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애쓴 이야기이다. 다행히 3개월이 지나면서 수주, 생산이 회복돼 한숨을 돌린 믿기 어려운 사례이다.
김 주임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의 글로벌 신발 제조회사에서 근무중이다. 글로벌 브랜드의 신발을 생산자개발방식(ODM)으로 제조, 공급하는 ‘KH사(가칭)’이다. 직원수는 2만 명 규모이며 한국인 직원은 50여 명이다. 지난해 7월에 입사해 구매,자재부의 매니저급으로 신발 제조공정의 핵심인 합포 자재와 외주관리 업무를 맡고있다. 부하 직원은 약 400명이며 전원 현지인이다.

1년간의 글로벌청년양성과정(GYBM)연수를 마치고 지난해 7월에 입사해 6개월 여가 되는 시점인 올해 1월에 들면서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았다. 수주가 감소돼 작업량이 10분의 1가량으로 줄어들었다. 미국, 유럽등의 소비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생산량이 줄면 외주업체는 인건비 부담이 커지는 고충을 호소했다. 영업 절벽의 상황으로만 돌리면서 설득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발주를 중단하면 쉽겠지만 향후 반등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외주업체의 생존과 유지라는 큰 위기에서 김 주임은 방황하는 대학생 때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꿈꿔온 해외취업 현장에서 아무 손도 못쓰는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본인 업무의 핵심인 신발 합포업무를 전면 재검토했다. 여러 가지 자재를 합쳐 하나의 자재로 만드는 공정인 합포는 기본 자재를 협력업체로 보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기존 방식대로 만들어 보내니 협력사도 동일하게 가동이 됐다. 유심히 지켜보며 현지인 담당자들과 수차례 머리를 맞대며 논의한 결과, KH사가 야간 특근을 없애 비용을 줄이는 만큼 외주업체 작업물량을 배정하면공존할 수 있겠다는 결론이 섰다. 생산 중단에 대한 야간 작업조의 동의를 구했다. 상사에게 보고하고 승락을 받았다.

회사내 야간 작업조를 없애고 사내 합포와 5개 회사의 외주 합포를 동시에 진행해 나갔다. 3개월이 지난 7월이 되니 코로나사태에 따른 보상소비로 이해가 되는 주문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이전의 생산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3개월 전의 결정이 없었다면 회사는 특근수당의 부담이 컸을 것이고 외주업체는 고정 인건비의 부담으로 자칫 파산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 수주가 회복됐으면 더 크게 낭패를 당했을 아찔한 순간이었다.

뭔가를 해야 할 상황에서 방황을 극복하고 이룬 성취는 많은 교훈이 있었다. 본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앞으로도 이런 결정적인 순간은 수없이 다가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기 앞에서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중요했습니다. 회사의 위기에서 주저앉으면 제 인생의 방향성까지 흔들리는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남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마음 한 켠에는 감당치 못하고 도망치려고 하는 생각도 싹트고 있었습니다. 해외 직장생활을 만만하게 본 심리가 깔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개 신입사원이 외주생산 시스템과 운영에 변화를 주는 큰 결정을 한 경험은 흔치 않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기 앞에서 방황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하겠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향후에 닥칠 더 큰 위기에도 좋은 결정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의 성장이 대견해서 직접 통화로 몇 가지 격려를 해주었다.

"첫째는 대학에서 공부한 물류전공이 큰 힘이 된 듯하다. 업무의 방향성이라는 프로세스에 충실한 공부를 한 덕분일 것이다.

둘째는 협력업체나 현지인의 생존에 관한 걱정을 했다는 것만으로 고맙고 잘 배웠다고 생각한다. 연수기간 중에 보여준 김 주임의 천성이 반영된 것이다.

셋째는 방황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도전정신’이다. 방황을 넘어 도전을 수차례 하다 보면 패턴이 나온다. 그 패턴을 몸에 익히기 바란다. 신발의 패턴이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전세계의 신발 장인들이 수백 년간 방황하며 도전했기에 지금 내 손으로 생산한 신발,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이 있는것이다."

통화를 마치고, 글을 마무리하는 이 순간에 지금 한국에서 코로나19로 몸 사리며 안정된 것만 찾는 한국의 청년들이 눈앞에 겹친다.

이제 열흘 후면 다음 기수의 연수가 시작된다. 좋은 인재 한 명을 키우면 본인 회사만이 아니라 연결된 수많은 협력업체도 살리고 현지인들에게도 일자리를 준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1년간 치열하게 도전할 것이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