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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폭풍’ 몰고 오는 제주항공 ‘노딜’ 선언…항공업계 또다른 ‘쓰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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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폭풍’ 몰고 오는 제주항공 ‘노딜’ 선언…항공업계 또다른 ‘쓰나미’

제주항공 23일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 너무 커” 인수 포기
코로나19 직격탄에 인수 무산까지, 벼랑 끝 ‘이스타’ 어디로?
제주-이스타, ‘셧다운·구조조정·선행조건’ 등 책임공방 예고
항공업계 재편 한 축 무산…HDC현산, 아시아나 결론낼까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애경본사 앞에서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주최로 진행된 '이스타 항공 인수 촉구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애경본사 앞에서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 주최로 진행된 '이스타 항공 인수 촉구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가 결국 무산됐다. ‘불확실성’ 확대라는 이유로 제주항공이 인수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지난 12월부터 진행됐던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간 인수합병(M&A)은 무위로 돌아가게 됐다.

그러나 인수 무산으로 인한 후폭풍은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스타항공의 거취 문제와 16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의 대규모 실직 사태가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인수 무산 책임론을 놓고 법적 다툼으로 확대될 공산이 크다. 또 항공업계 재편에 제동이 걸린데다, 이로인한 여파가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인수 무산 마침표 찍은 제주항공 “인수 강행 시 불확실성 너무 크다”


제주항공은 23일 이스타항공 경영권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해제한다고 공시했다.

제주항공은 이날 오전 공시를 통해 “진술보장의 중요한 위반 미시정 및 거래종결기한 도과(徒過)로 인한 주식매매계약을 해제했다”고 밝혔다.

제주항공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와 중재 노력에도 현재 상황에서 인수를 강행하기에는 제주항공이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고 주주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의 피해에 대한 우려도 큰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M&A가 결실을 거두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SPA체결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지 8개월 만으로 지난 3월 SPA를 맺은 지 4개월 만의 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에 제주항공뿐 아니라 이스타항공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3월 SPA 체결 이후 코로나19 변수로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이스타항공의 미지급금과 체불임금 등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제주항공은 지난 1일 이스타항공에 10영업일 이내로 선결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최후통첩을 보냈고, 같은 달 16일 제주항공은 “(마감 시한인) 15일 자정까지 이스타홀딩스가 주식매매계약의 선행 조건을 완결하지 못해 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됐다”며 인수 여부 최종 결과를 조만간 내놓겠다고 밝혔었다.

이와는 달리 이스타항공은 이미 선결 조건을 충족했다며 제주항공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16일 계약 해제 조건이 충족됐단 제주항공 측의 발표에 “미지급금 해소는 당초 선결조건이 아니었다”면서 사실상 법적 대응에 나설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제주-이스타, 인수 무산 책임 공방 후폭풍 예고


제주항공의 ‘노딜’ 선언으로 양측간 인수무산 책임 공방이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간 ‘셧다운’ ‘구조조정’ 책임론을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다. 이스타항공 측은 셧다운과 구조조정이 제주항공의 지시에 의해 진행됐다고 주장한 데 대해 제주항공은 이와는 무관하다고 반박하는 등 진실공방을 벌여왔다.

녹취록 공개와 비공개 정보 공개 등을 놓고 거칠게 맞섰던 양측은 최근 이스타항공 노조의 제주항공 운수권 배분 특혜 논란까지 제기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게 파였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한다고 하더라도 양사간 ‘화합적 결합’이 가능하겠느냐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감정싸움은 심각한 상태다.

인수 무산으로 ‘셧다운’ ‘구조조정’ 등 책임 논란은 법적 다툼으로 확전될 공산이 크다. 책임 여하에 따라 이스타항공은 인수 무산에 따라 손실분을 청구할 수 있고,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에 지급한 이행보증금 115억 원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타항공은 23일 “제주항공의 주장은 주식매매계약서에서 합의한 바와 다르고 제주항공은 계약을 해제할 권한이 없다”며 “오히려 제주항공이 주식매매계약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제주항공의 주식매매계약 이행을 촉구하며 계약 위반·불이행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제주항공에게 있다”며 “이스타는 1500여 명의 임직원과 회사의 생존을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 회복 불능 이스타, 정부 지원책 나올까?


제주항공의 인수 포기로 회복 불능 상태인 이스타항공의 거취에도 시선이 쏠린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항공업황 개선이 요원한 상태여서 새로운 인수자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법정관리를 신청하더라도 기업회생보다는 청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올해 1분기 당기순손실 410억 원을 기록한 이스타항공은 3월 말 기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1042억 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운항 재개에 필요한 항공운항증명(AOC) 효력도 회복되지 않아 노선 운항 또한 불가능하다.

통상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을 경우에 한해 법원이 기업회생 결정을 내리지만 이스타항공의 재정악화를 비롯해 항공업 회복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스타항공이 파산하면 6개월 넘게 임금을 받지 못하면서도 임금 반납에 동의했던 직원 1600명은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다만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국내 항공사 첫 파산과 대량 실질 사태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이미 정부는 제주항공에 이스타항공 인수를 전제로 1700억 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한 상황이다.

정치권도 이스타항공 파산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정부가 추가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에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항공사에 별도의 자금 지원이 특혜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이스타항공 한 관계자는 “제주항공에 1700억 원을 지원키로 한 것을 일부만이라도 이스타항공에 지원을 한다면 회복할 수 있다”면서 “직원들이 이미 임금 반납하기로 했고 협력사들과 채무 유예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500억 원이면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제주항공 ‘노딜’에 HDC현산 ‘노딜’ 결정으로 기우나?


항공업계 M&A 한 축이던 이스타항공 인수가 무산됨에 따라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영향을 미칠지에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아시아나항공 인수 협상 원점 재검토를 선언한 HDC현산과 채권단인 산업은행 간 협상은 한 달이 지나도록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규 HDC현산 회장이 만났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나서 인수 성사에 힘을 실어 줬지만, 가시적 결과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달 초 러시아를 끝으로 해외 기업결합승인 절차가 마무리됐으나 HDC현산은 선행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로 아시아나항공 또한 직격탄을 맞으면서 ‘동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이로인해 HDC현산이 인수 포기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여기에 제주항공의 ‘노딜’ 선언으로 사실상 물꼬를 트면서 HDC현산도 같은 결정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인수 무산 책임을 비롯해 M&A 성사에 정부가 공을 들여왔던 점이 제주항공이나 HDC현산 입장에선 큰 부담이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부의 노력에도 제주항공이 처음으로 인수 포기를 결정함에 따라 HDC현산의 ‘노딜’ 결정에 다소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제주항공이 미래 불확실성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듯이 심각한 항공업 상황을 보여준 한 단면”이라며 “정부의 거듭된 중재 노력에도 제주항공의 결정은 그간 눈치를 보고 있던 HDC현산도 이제는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minc0716@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