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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서투른 식품의 재포장금지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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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서투른 식품의 재포장금지 법안

노봉수 서울여대 명예교수
노봉수 서울여대 명예교수
분리수거의 날이 되면 아파트 각 동 앞에는 쓰레기들이 분리되어 쌓이기 시작한다. 우리 동만 하더라도 엄청난데 여러 동까지 합치면 보통이 아니다. 이것이 동네 나아가 구, 시, 대한민국 전체로 따지면 상당한 양의 쓰레기가 유발된다. 재생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재생을 못 하는 것들도 엄청 많아 결국 지구 환경 차원에서 우리가 모두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를 해결하고자 환경부가 재포장 금지 법안을 시행하려고 하였지만 여러 문제를 덮어두고 밀어붙이기 형식의 칼을 빼든 것이 아닌가 싶다. 포장은 식품 가공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단순히 판촉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용물이 손상되지 않고 안전하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 재포장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고 오랜 기간 보관을 위해 보존성을 해결해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더군다나 최근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 국민의 30%를 웃돌 정도가 되다 보니 식품 구입에 있어 소규모 포장을 원하고 있으며 이들 소규모 포장이 여러 개로 재포장된 것을 사려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HMR 식품의 경우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런 사회적 변화 추세를 고려할 때 재포장 금지 법안을 실시하는 데 보다 신중한 접근과 다양한 분야에서의 요구를 충분히 고려했어야 한다고 본다.

한때 식약처가 여러 법규를 수시로 바꾸는 바람에 미리 만들어 놓은 상당 부분의 포장재를 사용하지 못하고 폐기 처분하는 바람에 발생한 피해 금액이 연간 600여 억 원을 넘었던 적이 있다. 이런 피해가 매년 반복되자 식약처에 요청하여 법의 개정을 최소 2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확보할 수 있게 조처한 바 있다. 이제 식약처에 의한 포장재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즈음 또다시 환경부가 법을 들고나오면 이런 피해는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부처간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상호 의견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3년 전 계란 파동을 겪으면서 식약처와 농림부가 서로 교차검증과 의견 교환이 이루어졌다면 농가의 피해는 물론 국민들의 불안 요소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는 데 말이다. 또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정부 부처간 상호 의견교환이 왜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이번 일은 소비자들로부터도 환영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환경부가 뒤로 물러섰다고 한다. 보다 세심한 검토가 있어야 하며 소비자들로 하여금 포장재 쓰레기 유발에 따른 환경적 피해를 충분히 인식시키지 못하였다고 본다. 왜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았는지 사전에 다양한 채널을 통하여 파악하고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를 조성하는 일이 또한 필요한 데 말이다.

몇 년 전 BBC TV가 여러 명의 스태프를 이끌고 동료 교수를 찾아와 취재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생선에서 얻어지는 잉여 부산물을 이용하여 생분해성과 항균성의 특성을 함께 지닌 플라스틱 유사포장재를 만들어 채소나 족발 등을 포장하여 판매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인터뷰였다. 그들은 소비자들이 이런 방식의 포장재에 익숙해진다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 환경부도 왜 우리가 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도 함께 고려하면서 국민적 공감대와 산업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빨리 빨리 문화가 좋은 점도 있지만 때로는 미처 고려하지 못한 요소들을 남긴 채 서두르다 보면 낭패를 맛볼 수도 있어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 속에 소비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법안으로 재탄생되기를 기대한다.

노봉수 서울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