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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스승과 제자로 이어가는 춤…백현순 무용단의 2020 한국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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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스승과 제자로 이어가는 춤…백현순 무용단의 2020 한국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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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춤
경자년 8월 8일(토) 오후 3시, 6시 춤전용 M극장에서 공연된 백현순 무용단의 2020 한국춤 시리즈는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비대면 공연을 겨우 피한 조촐한 무대였다. 한국체육대학교에 몸담고 있으면서 전통춤을 기반으로 우리 춤길을 같이 가고 있는 사제동행의 공연은 사랑과 열정의 춤판이었다. 춤 구성은 <무구춤>, <생명의 로켓, 정자>, <쟁강춤>, <소년감성>, <사도>, <舞勸; 춤을 권하다>, <신덧배기춤>, <부채춤>의 8개로 이루어졌다. 전통춤과 창작춤을 배합하고, 독무, 이인무, 군무로 완급을 조절해 내면서 펼친 공연은 풋풋한 이십대의 뜨거운 열정으로부터 육십대의 관조적 노련함을 관통하고 있었다.

2020 한국춤 시리즈에서 스승은 백현순(한체대 무용과 교수)을 지칭하고, 백현순의 제자들이 안무로 참여하거나 출연한다. 이번 공연은 살풀이춤, 승무, 검무 등 전통 필수군(群)에 속하는 춤들을 프로그램에서 배제하고 무구춤, 쟁강춤, 신덧배기춤, 부채춤을 선택하여 역동성, 대중성, 춤의 화사를 보여준다. 남성 독무인 <소년감성>, <사도>는 파격적 역동성과 표현력이 두드러진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여성 이인무 <舞勸; 춤을 권하다>, <생명의 로켓, 정자>는 한국 창작춤의 정묘함을 보여주었다. 독창적 춤 구성으로 관심을 끈 공연은 <무구춤>의 열정적 몸짓에서 <부채춤>의 낭만이 여운을 남기면서 종료된다.
춤판을 여는 의식, 백현순은 경쾌하며 심지어 코믹한 <무구춤>을 재구성하여 관객을 압도한다. <무구춤>(재구성안무: 백현순); 경고와 부채, 방울 등을 들고 추는 빠른 템포의 전통 창작춤으로 경을 읽으며 신을 부르던 무속에 기반 하여 구성한 춤이다. 빠른 템포의 춤은 최승희의 춤들을 연상시킨다. 군무의 춤꾼들은 일종의 무당 역을 소화해내며 서로 열을 지어 귀신의 환영처럼 움직이며 이 세상의 한 많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달랜다. <무구춤>의 장단, 진법, 복식을 살펴보면서 춤의 바다에 빠져들게 된다. (출연 : 김선진, 한지민, 이정연, 박진영, 임혜린, 정은빈, 박준엽, 박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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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로켓, 정자


<생명의 로켓, 정자>(안무 출연: 박승희, 김예원); 젊은 여성들의 정자에 관한 짤막한 춤 에세이는 호기심을 자아내면서 설득력을 얻는다. 「나는 긴 꼬리를 가지고 있어요. 제 특기는 수영이에요. 나는 친구가 많아요. 우리는 똑같이 생겼지만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 매일 힘자랑을 해요. 밖에 나오는 순간 굉장히 바쁘답니다. 매일 짝을 찾아 달리고, 달리고 있어요. 내 이름은 정자입니다.」 능청스럽게, 코믹하게, 풀어간 이 작품은 상모에 붙어있는 끈을 정자로 상징한다. 여성들은 남성이나 은유적 상징을 사용하는 대신 과감하게 남성이 그립다는 주장을 단편소설을 쓰듯 담백하게 담아낸다.

쟁강춤이미지 확대보기
쟁강춤

<쟁강춤>(재구성 안무: 백현순)은 신명을 끌어 올리며 장단 장단마다 몸짓이 바뀌는 역동성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최승희 원작인 <쟁강춤>은 분위기 전환용 춤 가치를 충분히 소지하고 있다. 이 춤이 한국에 들어온 이 후 많은 무용가들은 각자의 개성대로 춤을 재구성하여 무대화 시켰다. <쟁강춤>은 부채를 들고 ‘쟁강쟁강’하며 소리를 내는 방울을 양 손목에 차고 흔들며 추는 춤으로 배경음악은 진혼곡, 세레나데, 행진곡의 분위기를 오간다. 이번 <쟁강춤>은 1. 5인 무용수 부채 펴들고 무대를 장악한다. 2. 부채를 허리춤에 차고 타령장단에 맞추어 쟁강소리에 맞추어 춤춘다. 3. 이 땅의 운기를 품는다. 4. 엇모리장단의 쟁강춤 5. 빠른 부채춤에 이르는 5개 부분으로 나뉘어지고, 홀수 부분은 빠르고 짝수 부분은 느리다. 백현순은 무당들이 굿을 하며 추는 춤과 가락을 현대적 정서에 맞게 재구성한다. (출연: 김선진, 한지민, 조선아, 박진영, 정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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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감성

<소년감성>(안무: 송 설, 출연: 박준엽); 힘과 세기를 고루 갖춘 안무가 송 설의 지도력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불현듯 등장한 청년의 모습은 ‘청춘예찬’의 이름다움을 불러낸다. 티끌하나 없는 소년이 바다를 보고 너무 기쁜 마음에 달려간다. 조명과 의상이 바다적 그리움을 담는다. 소년은 일생이라는 바다에서 수영하지만 파도가 높아 부딪히고 치이며 더 멀리가려고 노력해본다. 검투사 같은 세기(細技)적 연기력이 두드러지게 깔리고 경연의 가파름 속으로 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푸른 소년은 바다로 나아가며 더 나아가며 희망을 본다. <소년감성>에 대한 춤 인상은 무엇이든 거칠 것 없는 소년을 구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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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사도>(안무: 이해준, 출연: 박준하(2020 신인콩쿨 수상작품); 청년 박준하의 심리연기가 적절하게 분배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죽음에 이르는 비장미를 보여준다. 뒤주에 갇힌 지 아흐레 만에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 왕과 세자로 만나 아버지 영조와 아들의 연을 잇지 못한 운명, 역사상 가장 비극적 가족사의 사도세자의 애통함과 아버지를 향한 분노, 왕위에 앉지 못하고 뒤주에 갇혀 죽은 비극의 감정을 잘 표현해낸 작품이다. 움직임은 간결하며, 꼭 필요한 부분에 강조를 둔다. 춤으로 비극적 인물의 정묘(整描)는 힘들건만 안무 이해준과 연기자 박준하는 조화적 상생을 실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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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권 춤을 권하다

<舞勸; 춤을 권하다>(안무 출연: 김선진, 신현지); 동시대 한국창작춤의 한 일면, 서서히 들려오는 장단 어찌 춤추지 않으랴 술을 권하듯 춤을 권하다 같이 추는 춤이다. 안무가는 제목을 비틀면서 한체대 출신 여성 안무가의 현재를 무대에 투영시킨다. 소녀적 감성이 물씬 풍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두고 작용과 반작용, 해체와 융합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비슷하지만 다른 생각으로 나선 세상이란 무대는 위험한 정글 같은 무서움으로 도포되어 있다. 그래도 그때, 그 울타리에서 어울려 춤출 때가 그리웠는데. 젊은 날의 초상은 푸른 초원에 피는 무지갯빛이었다. 이렇게 만났으니 춤추자. 춤은 서정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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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덧배기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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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덧배기춤

<신덧배기춤>(안무 출연: 백현순); 한량춤,·일춤,·놀이춤에 두루 걸쳐 있는 덧배기춤은 덧보기춤·덧뵈기춤·덧베기춤 등으로도 부른다. 굿거리와 덧배기 장단에 추는 춤이 덧배기춤이다. 이 춤은 부산, 경남 지방의 야류(들놀음)나 오광대놀이에서 추는 대표적인 춤이다. 동작 구성은 달아서 맺기, 배기고 어르기, 풀기로 이루어진다.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잡것을 베어버린다는 (신)덧배기춤은 달구벌에서 추던 허튼춤을 새롭게 재창작하여 구성한 춤이다. 춤의 핵심부분은 지신을 제압하는 듯한 배김새사위에 있다. 발달된 어깨춤과 배기는 춤사위가 독특하며, 백현순 특유의 연기력이 관중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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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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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춤

백현순은 마무리 춤으로 <부채춤>(안무: 백현순)을 선정했다. 최승희, 김백봉, 장금도 등이 발전시킨 <부채춤>, 복식은 화관에 당의를 입고 양손에 부채를 들고 펴고 접고 돌리고 뿌리면서 꽃이나 파도 등 여러 가지 모양을 구사한다. 〈창부타령〉의 굿거리장단과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부채를 펼쳐 들었을 때의 포물선과 머리 위에 화사한 족두리를 얹고 미색 바탕에 수련 꽃을 수놓은 당의풍(唐衣風)의 저고리와 진분홍색 통치마가 만들어 내는 곡선, 바람을 가르며 휘돌아 가는 꽃부채의 움직임 등이 화사하게 구사된다. 백현순의 <부채춤>은 보다 간결하게 등장인물의 가감과 진법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부채춤> 군무는 이 땅의 춤 스승들과 춤 맥을 잇는 제자들을 위한 평안을 염원하고 있었다. (출연: 김선진, 한지민, 조선아, 박진영, 이정연, 임혜린, 정은빈)

백현순 한체대 무용학과 교수
백현순 한체대 무용학과 교수

8월 8일은 조선이 낳은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1911년 11월 24일~1969년 8월 8일) 선생의 49주년 기일이었다. 이날 공연은 결과적으로 한국 춤의 큰 스승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류스타 최승희 선생의 기일을 기념하는 공연이 되기도 했다. 백현순 무용단의 2020 한국춤 시리즈의 여덟 춤판은 우정 있는 춤판과 즐거운 상상력으로 우리 춤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미래를 화려하게 만들자는 목표를 달성했다. 이번 공연은 한체대 한국무용의 특징과 발전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준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