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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역사적 회화공간에 실존을 이식하는 작업…김주빈 안무의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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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역사적 회화공간에 실존을 이식하는 작업…김주빈 안무의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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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
2020년 8월 8일(토) 오후2시, 5시 대전 소제동 아트벨트에서 모더레이터를 겸한 김주빈 안무의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이 공연되었다. 프로들은 컨셉만 알아도 내용을 구성한다. 이 작품은 과거의 삶을 연상시키는 옛집에 현대인들이 찾아가 예 기억을 연상시키게 하고 그들과 어울려 춤을 춘다는 식이다. 순수로 찾는 과정 속에는 사물과 인간에 대한 존중이 들어 있다. 삼 주 동안 단 세 번의 만남으로써 만들어진 프로젝트는 사전에 숙지한 익숙한 루트를 타고 막힘이 없이 익숙하게 모든 갈래의 예술가들이 작품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유다정, 권미정, 임세미가 공동창작한 이 작품은 자연 친화적이다. 서투름에 대한 은근한 시선, 싹터오는 것에 대한 기다림, 작은 역사를 남긴 서민들의 삶들을 자기화시키면서 애틋한 정감을 표현해낸다. 이정섭이 뉴미디어를 담당했고, 김보연이 협력 안무를 맡았다. 뉴미디어는 농경사회의 기억에서 현대화된 도시의 감각을 넘어오면서 망설임이 없다. 이 작품은 비접촉시대의 대안적 모색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관객은 장소를 이동하면서 춤을 관람해야 한다. 공연형식은 프로미나드(Promenade) 공간구성 방식으로 연계퍼포먼스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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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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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

공간구성의 중요성이 강조된 ‘Play Bauhaus’의 제작과정이 원용된다. 관객은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선택하여 관람하고, 스스로 내러티브를 찾아 작품을 이해한다. 공간구성에 따라 관객의 움직임 공간은 한정된다. 관객은 자신이 선택한 공간에 맞추어 움직인다. 작가는 작품의 의도를 더 많은 관객에게 이해시키고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구성은 촘촘하게 내러티브를 떠받히고 있으며, 빨간 구두와 피아노, 현(絃)이 사운드와 시각적 이미지를 창출해낸다. 시계태엽과 초인종은 실내와 자연을 혼동시키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끈다.

철학과 회화에서 끌고 온 공존 불가한 시간과의 만남, 이 개념은 경험과 시간성의 재조합이다. 도자 그림 위에 사과나 돛단배를 던지듯이 그린 그림처럼 극사실의 희비(喜悲)와 관계없이 과거가 숙성되면 역사가 되고, 역사는 현재를 떠나 미래로 향한다. 그 흐름에 따라 인간들의 삶과 환경, 모든 것이 변화하고 흐른다. 흐름과 변화 속에 참여자의 경험이 존재하고 그 경험은 다른 참여자에게 이질적 경험으로 기억된다. 하이퍼 리얼리즘의 오묘한 미학적 즐거움을 속으로 즐기며 작업에 임하는 공간 설계의 김익환과 심성혜의 드로잉이 빛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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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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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은 역사적 시간 속에서 함께 흐르고 있는 개인의 시간성, 거대한 굴레 안에서 보이지 않지만, 더 돋보이는 작은 기억들에 대한 시각적 은유이다. 과거-현재-미래,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 지나간 ‘역사’와 지금의 ‘현재’가 공존하는 역설적인 순간의 존재에 대한 사유이다. 동시에 지금의 삶을 살아오고 있는 우리의 터전 속에서 지속해서 소비되고 있는 ‘현재’의 장소와 삶의 유동을 강조한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 현재의 풍경 안으로 과거의 풍경이 소환된 이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 낯선 풍경’ 자체로 다가온다.

작품에서 과거와 현재의 역설적인 묘한 공존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의 일률적인 흐름, 과거와 현재, 다시 이어질 미래의 진행을 암시한다. 마치 앞을 향해서 직진하고 있는 단선적 흐름으로서의 시간 같은 것이다. 경험, 시간성의 재조합, 각기 다른 시간 속의 파편들을 모으고 결합시켜 또 다른 이질적 시간성의 순간을 만들어 버리는 사실 대서사의 흐름은 개인의 작은 경험과 시간의 흐름이 하나둘 모이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역사적 시간과 개인의 경험은 분리되지 않고 함께 흐른다. 그런 시간성은 직렬적 시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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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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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빈 안무의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

같은 벽면에서 어항과 자연이 어우러지고 영상이 합성됨으로써 신비감은 가중되고, 새소리와 인간의 소리가 어우러져 남미 정글 속 영령의 분위기까지로 접근한다. 분할된 공간에서의 춤을 전자음이 돕고, 안과 밖을 구분하고 하나로 만든다. 여성 3인무는 붉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가 퍼져 오면서 격렬해지고, 유리면에 영어로 글이 쓰인다. 정제된 화면이 잡히고 실내는 반복적 사운드가 번져온다. 영상은 비를 스케치한다. <공존할 수 없는 시간의 만남>은 무수한 짜임새 있는 세묘(細描)로 기교적 융복합 예작(藝作)을 감상하는 신선한 기회를 제공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