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공연리뷰] ‘용서’와 ‘사랑’에 걸친 창작발레…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공유
5

[공연리뷰] ‘용서’와 ‘사랑’에 걸친 창작발레…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이미지 확대보기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코로나 창궐 시대에 공연하는 예술가나 관람하는 관객은 모두 행운을 잡은 것이다. 공연이 연기되고 비대면 공연이 빈번한 가운데, 서울의 북동부에 자리한 도봉구민회관은 무용공간으로는 열악해서 발레 공연은 주최 당사자의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빅토르 마리 위고(Victor-Marie Hugo) 대표작 '레 미제라블'을 각색한 발레를 본다는 것은 더더욱 호기심을 고조시키고 흥분이 일게 만드는 일이다. 주최 댄스시어터샤하르(DTS)발레단(대표, 지우영 예술감독), 후원 도봉문화재단(이사장, 이동진 도봉구청장) 의 저돌적 추진력이 결실의 산물로 나타난 것이다.

작품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예술성과 상업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세월이 가도 평가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시대가 지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작품도 있기 마련이다. 바람직한 경우는 현대무용의 한 갈래인 라스베가스의 '태양의 서커스'류나 숱한 볼쇼이 발레 같은 예술성을 띤 작품이 대중적 선호도를 견지할 때이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거친 안무 경험이 쌓이고, 풍부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창작 발레가 주변 예술과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발레의 '격'은 돋보인다. 발레의 수준과 에피소드는 세상 이치를 대변한다.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이미지 확대보기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이미지 확대보기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레 미제라블'은 안무가 지우영이 세계 최초로 각색, 제작, 안무, 연출한 창작 발레이다. '레 미제라블'의 월드 프리미어는 9월 23일(수), 24일(목)까지 7시 30분 도봉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이루어졌다. 대사와 노래를 생략한 이 작품은 디테일이 촘촘했고, 음악・무용・영상만으로 이루어졌다. 극성이 강화된 '레 미제라블'은 혁명보다는 사랑과 용서에 주목하면서 기교가 출중한 춤 연기자들을 선정, 발레적 몸 언어에 집중했다. 지우영은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불쌍히 긍휼히 여기면서 자비를 신봉하는 예술적 삶을 추구해 왔다.

'레 미제라블'의 '격'은 지우영의 인격에서 출발한다. 지우영은 작품을 통해 두드러진 인류애와 기독 정신을 실천해왔다. 그녀가 예술을 대하는 자세, 작품과 현재의 삶 속에서 접하는 인간과 사물, 주변을 존중하는 태도가 작품을 통해 반영되고 있다.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보듬어 가는 세상은 아름답다. 인류애를 가르친 스승에 대한 존중, 가족 구성원에 대한 깊숙한 이해, 예닮의 삶을 추구하는 경전 재해석의 발레 구축, 지속적 창작활동 등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아가는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이미지 확대보기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이미지 확대보기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레 미제라블'의 변주는 시적 은유와 함께 연극, 영화, 뮤지컬을 거쳐 발레에 이르렀다. 안무가는 시대적 서사를 넘어 장발장과 자베르의 다른 듯하지만 같은 '죄'를 공용재로 사용한다. 죄인을 동정하고 응원하는 세상은 명백히 잘못된 세상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전을 읽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일상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지우영은 미리엘 주교의 '사랑의 실천'과 장발장의 이타적 '인간다운 삶'을 사유한다. 발레는 주제의 강조인 하수도 장면을 007 영화의 콘셉트처럼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프롤로그로 사용한다.

빅토르 위고의 참으로 불쌍하고 가련하고 '징한 것들'은 콜레라의 창궐로 나라가 어수선했고, 백성들이 권력에 휘둘리고,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던 때의 울분을 사랑으로 감싸 안은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빵 한 조각에 걸친 장발장 같은 생존형 잡범에게 19년을 옥살이시키는 권력,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사회, 범죄자를 양산하는 사회의 민망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종교와 실존 사이에 가벼운 풍랑이 인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인상이 가볍게 오버랩된다. 드러내지 않아도 혁명은 필연적 과정이었다.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이미지 확대보기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이미지 확대보기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작가는 비참한 시대적 상황에 처한 인간 군상들의 처절한 현실을 다루면서 인간 개개인에 대한 작가의 깊숙한 애정이 스며든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포함한 비참한 삶을 영위해오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시대의 한국에도 감옥에 간 장발장, 미혼모로 아이를 버린 팡틴, 고아가 된 고제트가 즐비하다. 작가의 통찰력은 사회개혁 의지에 이르러 있고, 안무가는 '용서'와 '사랑'을 무용언어로 표현한다. 압권은 자베르의 신념이 사랑과 용서 앞에 무너질 때이다. 그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업보를 털었다.

발레 '레 미제라블'에는 연기력과 기교가 출중한 발레 연기자들이 즐비하다. 강준하(장발장 역); (전)국립발레단 주역무용수, 러시아 바가노바 스쿨(메쏘드 과정) 이수. 신인무용콩쿠르 금상, 올해의 당쉐르 노브르 상(한국발레협회) 수상했다. 상대역으로는 서울무용제 연기상·안무상·대상 경력의 현대무용가 손관중 한양대 무용학과 교수가 쟈베르 경감 역을 맡아 자베르 특유의 형사 셈법과 반성, 고뇌에 찬 인간 변모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의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가 테나르디에 부인 역을 맡아 역할에 충실하며 발레 연기를 조율해내며 두드러진 연기력을 보였다. 윤전일(젊은 장발장 역); 한예종 재학 중 국내외 콩쿠르를 석권하면서 국립발레단에 입단, 루마니아 국립오페라발레단 수석무용수. '댄싱9'과 '한여름 밤의 호두까기인형'에 출연했다.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이미지 확대보기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이미지 확대보기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스테파니 킴(코제트 역); 한예종 무용원 졸업, '한여름 밤의 호두까기인형' 주역, 걸그룹 '천상지희' 멤버, '한국을 빛낸 해외무용스타'의 LA발레단 대표(2011)였다. 윤 별(마리우스 역); 선화예중·고, 한예종 무용원 졸업, 발레협회 콩쿠르 전체 대상(2011), 동아무용콩쿠르 2위(2012), 시칠리아 국제 발레 콩쿠르 1위(2013), 잭슨 국제 발레 콩쿠르 2위(2014), 비엔나 국제 발레 콩쿠르 파드되 부문 1위(2016), 헬싱키 국제 발레 콩쿠르 2위(2016) 수상의 발레리노 이다. 정민찬(젊은 쟈베르 역); 한예종 무용원 졸업, (전)국립발레단 무용수, 예그린 뮤지컬어워즈 앙상블상(2017), 제2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앙상블상을 수상(2018), '댄싱9' 시즌2 및 뮤지컬 '뮤지컬 팬텀' '맘마미아' '벤허' '안나카레니나' '시카고' '한여름밤의 호두까기 인형' 등에 출연했다.

장발장은 코제트와 마리우스에게 사랑의 소중함을 유언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증표였던 십자가와 은촛대가 용서의 상징으로 강조된다. 팡틴과 장발장의 희생으로 싹을 틔운 코제트와 마리우스는 모두의 '나'가 된다. 주제에 부합되는 영국 리베라 소년합창단의 음악이 들리는 가운데 '레 미제라블'의 커튼 콜은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된다. 파사드 멥핑으로 세느강과 거리가 연출된 극장은 감동을 창출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 작품은 경계선지능 아동청소년 예술학교인 '예하', '예룸'을 위한 값진 선물이 되었다. '레 미제라블'은 아름다운 음악이 여운을 남기는 작품으로 각인되면서 '한여름밤의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베스트 레퍼토리로 기능한다. 이 작품은 순회할수록 빛을 발하며, 댄스시어터샤하르의 영광을 이어가는 명작 반열에 우뚝 설 것 같다.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이미지 확대보기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이미지 확대보기
지우영 안무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