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EUV노광기 늘려 TSMC 제친다”

삼성전자가 유럽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와 협력을 강화해 경쟁업체 대만 TSMC를 앞지르는 ‘큰 그림’을 그린다.

이는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글로벌경영 첫 방문국으로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점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날 대한항공 전세기편에 네덜란드로 출국한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공급하는 장비업체 ASML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노광기(stepper)는 반도체, 박막트랜지스터(TFT), 액화표시장치(LCD) 등을 만드는 과정에 카메라처럼 빛을 보내 반도체 웨이퍼(반도체 재료가 되는 얇은 원판)나 TFT LCD 유리기판에 회로를 만드는 장비다.

EUV 노광기는 파장 길이가 짧은 극자외선을 이용해 반도체 회로를 보다 세밀하게 그릴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크기는 작지만 성능은 대폭 개선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EUV 노광기는 한 대당 2000억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EUV설비 확충해 2020년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 거머쥔다

기존 메모리 반도체 외에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에서 2030년까지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이 부회장의 경영전략을 감안한다면 EUV 노광 장비 확보는 필수다.
이에 따라 파운드리 사업에 주력하는 삼성전자는 ASML과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2030년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1위를 하기 위한 해법은 파운드리”라며 “파운드리 분야에서 최대 경쟁업체는 TSMC”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반도체는 웨이퍼를 미세하게 깎을수록 고품질 제품이 나오는데 EUV는 기존 불화아르곤(ArF)과 비교해 파장이 약 14배 짧아 미세한 회로를 그리기에 최적화됐다”고 평가했다.

이는 향후 글로벌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열쇠를 EUV 노광기가 쥐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TSMC, 트럼프 압박에 美공장 설립...삼성전자, EUV노광기 안정 확보 급선무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를 제치려면 EUV노광기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최근 EUV 장비 구매를 놓고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제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 정부가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한 TSMC에 미국 애리조나주(州)에 파운드리 공장을 설립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TSMC는 미국 공장 설립과 관련해 ASML에 EUV노광기 추가 공급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 세계 1위‘ 등극을 추진 중인 삼성전자로서는 TSMC의 ’보폭 넓히기‘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ASML이 지난해 EUV 노광기를 26대, 올해는 약 35대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TSMC가 기존 EUV노광기 외에 미국 공장에도 노광기 설비를 추가 확보하면 삼성전자로서는 EUV 노광기를 올해 신규 확보하는 데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삼성전자가 신규 노광기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보다 불리한 상황에 놓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유럽 첫 방문국으로 네덜란드를 택한 이유도 ASML과 EUV 노광기 확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EUV노광기 약 10대를 새로 구입했으며 올해 말까지 총 20여 대 노광 장비를 확보할 방침이다.


김민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entlemin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