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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희망으로 다가올 새 시대를 염원하는 몸짓…정보경 안무의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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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희망으로 다가올 새 시대를 염원하는 몸짓…정보경 안무의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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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 안무의 '다가오는 것들'.
코로나 팬데믹(전세계 대유행)에도 정보경의 춤은 진전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사업인 ‘2020 아르코 파트너’(2020 ARCO Partner)에 선정된 한국무용가 정보경이 공연연기 끝에 지난 9월 28일(수) 저녁 7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신작 <다가오는 것들>을 발표했다. 정보경은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아르코영아트프론티어(AYAF)로 선정된 이래 눈부신 성과를 보여 왔다.

‘우리 공연예술계에서 두루 인정받은 주목할만한 창작자들과 동행하여 우수한 창작 작품을 기획·제작해 관객에게 소개하는 아르코예술극장의 기획 프로그램’으로써 ‘뚜렷한 작품세계를 꾸려온 안무가’ 정보경은 거대한 슬픔을 털고 다가오는 희망을 보여주는 ‘씻김’ 의식을 현대적 감각에 담아 선보였다. 한국 창작무용의 현재는 현대무용의 한국적 취향과 맥을 같이 한다.
장엄한 바다, 강렬한 태양이 내리고 묵상이 일상처럼 자리 잡는다. 바다를 일군 사람들은 슬픔을 양식처럼 받아들이고, 슬픔은 모여 소금꽃이 된다. 소금창고에서는 노닌다. 안무가는 노동과 슬픔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던 모든 생명의 흔적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이끼로(いきる)>의 ‘태어나 보았지만’의 중간 단계가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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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 안무의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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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 안무의 '다가오는 것들'.


공연은 안무가의 의식과 맞닿아 있었다. 빵부스러기처럼 흩어져 되돌릴 수 없는 추억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짠 바다 고기들을 먹고 살아 숨 쉬는 갈매기, 기꺼이 한 끼가 되어준 바닷고기는 모두의 삶이었음을 무용수들의 분주한 몸짓이 증거한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고, 미래는 이미 다가와 있다. 미디어디렉터 강낙현과의 작업은 시너지를 창출하는 조합이다.

안무가 정보경은 공연계에 불어닥친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고, 전쟁이라고 단정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배달겨레가 경험한 전쟁이 트라우마로 존재하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잘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연은 커다란 응원이며, 관객과의 동행은 삶을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의지의 표시이다. 슬픔을 상징하는 여인들이 과거와 현재에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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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 안무의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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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 안무의 '다가오는 것들'.

예수와 뜻을 같이한 열두 제자처럼 정보경 외 무용수도 열두 명, 그들의 재즈풍의 낭만 서사를 타고 느릿한 첼로가 파고들수록 슬픔은 배가 된다. 무대에 선 무용수들의 이름이 외워지고, 회화적 영상이 이미지를 가중하면 그 춤판은 인상적으로 된다. 선배에서 후배까지 골고루 층을 이룬 팀은 항구의 불안과 안정 속에 무수한 조합을 만들어 내며 희로애락을 담당한다.

<다가오는 것들>은 1. 파도, 2. 기억, 3. 표류, 4. 항해의 네 개의 장(場)으로 구성된다. 작품은 아름다운 시절을 기억하며, 시대의 암울과 침통함이 사라지고, 희망찬 세상이 오기를 희구하면서 협업 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놀라운 성취를 이룬다. 무랑루주나 나이트클럽의 분위기는 물론 뮤지컬을 수용한 대중성은 안무가의 의도에 부합되는 의도된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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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 안무의 '다가오는 것들'.

암전 속에 무대가 꽉 차도록 갈매기 소리가 깔리고 바다에 나갔던 크고 작은 배들이 고동 소리를 울리며 부산을 떨면 항구는 생기가 돈다. 갈매기가 날고, 견주고, 따라가는 모습들이 정겹다. 비움과 채움을 오가며, 갈매기, 항구의 여인, 에너지원,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춤 연기자들은 엄청난 활동량을 보인다. 그 기억 속에 젊은 날의 초상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부지런한 움직임이 안개처럼 피어나고/ 밴드연주는 항구로 발을 옮긴다/ 갈매기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때의 추억을 두루마리에 담고/ 푸른 비를 맞으며 떠밀려와/ 항구를 응시하는 여인이 있다/ 붉은 열정이 튀어 오르고/ 느리게 다가오는 파도 소리/ 씻김이다/ 비 멈춘 항구에 갈매기가 다시 난다/ 무리는 노래를 실은 춤을 춘다/ 이별을 위한 춤이다/ 제주는 역신의 분노를 달래는 춤을 춘다/ 다가오는 것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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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 안무의 '다가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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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별들이 나이테를 두른다. 정보경, 조인호, 김주빈, 이혜준, 박철순, 김현우, 김시원, 송윤주, 김효준, 박헤리, 황서영, 윤혜진은 섬세한 몸짓과 동작을 담은 움직임, 감정을 살리는 진지한 눈빛의 표정 연기, 충만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존재가 되어 구월의 마지막 주를 생동감이 넘치게 했다. 영상감독 강낙현은 미니멀리즘 기법으로 바다와 표류된 상태를 표현하는 등 영상을 통한 춤과 시각적 비주얼과의 조화를 꿰한다. 구상과 추상을 적절히 배합시켜 우수적 분위기와 경쾌함을 자아내는 김재억 조명과 작곡과 편곡에서 감각적 코드를 작동시키며, 감정선을 연결시키는 고지인이 연출한 생음악은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다가오는 것들>은 악조건 속에서 다가올 춤의 향방을 가늠할 정보경의 소중한 안무작으로 각인된다.


글 장석용 문화전문위원/사진 옥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