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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원전기술 갖고 '탈원전' 선언 국가는 한국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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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원전기술 갖고 '탈원전' 선언 국가는 한국뿐”

[기획] 그린뉴딜 덫에 걸린 한국 해외자원, 어디로-(하)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인터뷰
정부가 기술에 완전한 이해 없다보니 선진국 '기후위기' 주장 그대로 추종
태양광, 풍력, 수소는 개발 중인 기술...덜 익은 과실 따는 우 범하지 말아야
베트남 등 개도국 석탄발전은 필수불가결...한국 참여 막는 건 '선진국 횡포'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 커뮤니케이션). 사진=김철훈 기자 이미지 확대보기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 커뮤니케이션). 사진=김철훈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세계 흐름'에 발맞춰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정부는 탄소중립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를 아직 제시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정부는 국내에서는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해외에서는 원전 건설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국내 최대 에너지 기업 한국전력도 ‘국제사회 요구’에 따라 향후 해외 석탄발전 신규사업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국내에서는 강원 삼척 등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 중이다.

이처럼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모순되고 종잡을 수 없지만 그 정책결정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글로벌이코노믹은 전국 61개 대학 225명의 교수가 참여하고 있는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덕환(66)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와 인터뷰를 갖고 우리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난맥상을 보이는 원인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개인사무실에서 만난 이덕환 교수에게 먼저 문 대통령이 지난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밝힌 부분을 어떻게 평가하는 물었다.

이 교수는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우리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과 '에너지전환 정책'에 근본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언제까지 무슨 기술을 만들자고 하면 뚝딱 만들어지는 줄 안다. 새로운 기술은 개발과 상용화까지 엄청난 노력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는데, 지금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진단키트'를 개발했고, 이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K-방역'의 가장 큰 공신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외교부·보건복지부 장관 등은 국내외에서 'K-방역'의 성공비결에 대해 언급할 때 이점을 언급한 적이 없다. 기술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과학, 기술, 산업에 대한 완전한 이해 없이 부분적인 지식만 갖고 있다보니, 선진국 등 해외 목소리에 따르는데 급급하다.

정부와 환경단체들은 ‘유럽연합(EU)를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있으며, 유럽은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산업구조 개편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부가 아닌 일부만 알기 때문에 우리가 주체가 아니라 외국이 주체가 돼 외국의 주장을 옮기는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1990년대 세계화(신자유주의) 열풍 이후 우리는 우리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따르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이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전 두 정부에 비해 기술발전의 어려움에 대한 인식이 더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외국의 목소리를 따르는데 급급하다 보니 정책에 알맹이가 없는 것이다.”

이덕환 교수(앞줄 오른쪽 3번째)가 2019년 6월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 제6차 토론회에서 토론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철훈 기자 이미지 확대보기
이덕환 교수(앞줄 오른쪽 3번째)가 2019년 6월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 제6차 토론회에서 토론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철훈 기자


태양광·풍력은 개발 중인 기술…덜익은 과실 따지 말아야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 그린뉴딜, 에너지전환정책 등을 제시하며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의 알맹이를 태양광, 풍력,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로 채우고 있는 현실에도 이 교수는 이 역시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술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나와 더 이상 필요없는 과거 기술, 개발을 완료해 현재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기술, 개발 중인 미래 기술이 그것이다.

화력발전, 원자력발전은 개발을 완료해 현재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기술이고, 태양광, 풍력, 수소는 아직 개발 중인 미래 기술이다. 아직 개발과 투자가 더 필요한 기술을 실전에 확대하는 것은 덜 익은 과실을 따먹는 것이다.

가령, 태양광은 하루 3~4시간 밖에 발전할 수 없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해 잉여전력을 저장하면 '간헐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낮에 3~4시간 동안 생산하는 전력을 산업, 가정 등에서 소비하고 나면 언제 잉여전력을 저장할 것인가. 결국 필요 이상으로 많은 태양광설비와 ESS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현 정부 들어 태양광발전이 늘면서 전력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늘었다. LNG발전 역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런 이유로 현 정부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정부 출범 이전보다 더 늘었고, 그 결과로 지난해 11월 유엔환경프로그램(UNEP)은 오는 2030년 한국의 예상 온실가스 배출량이 기존 목표치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평가하며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는 불명예 딱지를 붙였다.

빛을 전기로 바꾸는 태양전지 효율은 현재 20% 수준인데, 자연에서 식물의 광합성도 그다지 효율이 높지 않다. 태양광은 본질적으로 효율을 높이기 어려운 발전원이라는 의미이다.

수소 역시 대부분 다른 원소와 결합된 상태로 존재해 이를 분리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부생수소 등 분리 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아직은 미래 기술이다.

이같은 발전 부문 외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철강, 석유화학 등 분야에서는 아직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없다.”

원자력은 완성된 기술…설계·시공·운전 능력 모두 갖추고 탈원전 선언한 국가는 한국뿐


이 교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현재 완성된 기술은 원자력발전이라고 강조했다.

“원전이 위험해서 안된다면 매년 수많은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는 자동차는 왜 계속 사용하는가. 원전 운영기간인 30~40년 동안의 자동차 사망자 수와 원전사고 사망자 수를 비교해 보라.

세계에서 원전의 설계·시공·운전을 모두 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 러시아, 중국 3개국뿐이다. 미국은 시공능력을 잃었고 프랑스, 일본은 시공능력에 신뢰를 잃었다.

영국은 1980년대 태양광발전 열풍이 불면서 원전산업이 붕괴돼 원자력 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로 불리는 핵폭탄 해체기술(원전 해체기술과 다름)까지 갖고 있으면서도 원전을 짓지 못한다.

우리가 개발한 'APR1400'과 'APR1400플러스'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안전성과 효율성을 가진 차세대 원전이다. 스위스, 대만 등 원전기술이 없는 국가 중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는 있지만 완전한 원전기술을 갖고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는 한국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26일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현장을 방문해 바라카 원전 1호기 앞에서 UAE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와 양국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미지 확대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26일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현장을 방문해 바라카 원전 1호기 앞에서 UAE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와 양국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후위기는 과학과 정치·사회가 결합된 복잡한 어젠다…‘우리 목소리’를 내야


그렇다면 현 시점의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이 교수는 과학계, 산업계,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우리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광우병 파동’ 때 유럽은 난리였지만, 미국은 별 관심도 없었다. 지금 유럽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미국은 파리협약조차 탈퇴했다. 2050년 탄소중립이 과학적으로 반드시 달성해야 할 당위라면 왜 미국 과학자들은 지금 조용한가. 왜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닌 유럽에 보조를 맞춰야 하는가.

광우병 파동처럼 ‘기후위기 어젠다’는 과학에 정치, 사회, 각국의 이해관계가 더해져 얽힌 지극히 복잡한 어젠다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선진국과 경쟁국의 엄청난 견제를 받고 있다. 우리가 우리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끌려다닌다면 선진국은 자신들이 하기 싫은 역할을 우리에게 떠넘길 것이다.

유럽은 지리적으로 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석탄발전사업에 별반 관심이 없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우리나라가 이 곳에서 석탄발전사업을 하려는 것은 견제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들은 석탄발전 아니면 대안이 없다. 이를 막는 것은 ‘선진국의 횡포’이다.

기후위기에 대처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 것은 맞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스토리’를 만들어 우리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스토리에 따라 우리가 먼저 2050년 이전에 탄소중립을 추구할 수도 있다.

우리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스토리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산업계의 어려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 Who's 이덕환
서울대 화학과 학사, 서울대 화학과 석사, 미국 코넬대 이론화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85년부터 서강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정년퇴직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 등 30여 권을 출간했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다. 2006년 과학기술부 ‘닮고싶고 되고싶은 과학기술인상’, 2008년 과학기술훈장 ‘웅비장’ 등을 수상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