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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의 디자인 인사이트(23)] 언택트 시대의 돌파구 4차 산업과 디자인 혁신…산업 혁명과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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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의 디자인 인사이트(23)] 언택트 시대의 돌파구 4차 산업과 디자인 혁신…산업 혁명과 디자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의 미술공예운동은 당시의 열악한 양산 체계와 재료의 한계에 부딪혀 대량 생산 제품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으며 가격적인 측면에서도 저렴하지 않아 대중과는 괴리가 있었다. 도덕적 동기와 더불어 가치 있는 예술을 생산한다는 신념과 무엇보다 근대적 생산 방식을 반대하는 사조가 당시의 거대한 산업화 경향과도 거리가 있어 도태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분명한 운동이었다.

산업디자인으로서의 미술 사조는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Adolph Georg Gropius)가 설립한 바우하우스(Staatliches Bauhaus)에서 본격적인 태동에 이르게 된다. 건축을 중심으로 조형 분야 전반을 통합하여 다양한 산업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그로피우스 이후의 바우하우스는 기하학적 형상보다 기능주의를 추구한 나머지 재료와 구조, 기술에 의해 형태가 결정되어 조형 중심의 디자인 교육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 당시 산업계는 인류가 처음 겪는 대량 생산의 혁명적 시기여서 조형적인 구조나 심미적인 형태를 다룰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산업화 시대의 중심인 대량 생산에 적합한 산업 미술은 형태 보다 생산이 맞춰진 양산 중심 철학으로 단순하지만 기능에 충실한 제품이 주류를 이뤘다.

포디즘(좌) ⓒ britannica, 바우하우스(우) ⓒ floornature이미지 확대보기
포디즘(좌) ⓒ britannica, 바우하우스(우) ⓒ floornature

이러한 대량 생산 디자인은 이른바 포드주의(Fordism)와 맥을 같이 한다. 컨베이어 시스템을 통해 순차적으로 부품이 조립되고 노동자의 작업 시간을 최소화하여 생산 효율화, 고임금, 업무시간 단축 등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전후 30년간 서구의 지배적인 생산 체계가 되었다.

조형 사조 또한 기능주의가 여전한 대세였다. 1896년 리핀코트(Rippincott) 3월호에 처음 등장했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ever follows Function)”는 건축가 루이스 헨리 설리번(Louis Henry Sullivan)의 대표적인 에세이였다. 바우하우스의 다소 극단적인 기능주의와 더불어 회자되는 설리반의 기능 우선적 사고는 현대 건축 디자인의 원칙과도 같은 바이블이 되었고 제품디자인 전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편의성과 사용성이 강조된 현대 제품 디자인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기능을 중심으로 조형을 설계하는 기본적인 방법론 측면에서는 여전한 툴 킷(Tool Kit)에 속한다.

이러한 기능주의 이면에는 제한적인 양산 체계와 그에 따른 제조비용 역시 무시 못 할 요소였고 3차원 설계가 가능해진 90년대까지 거의 모든 디자인 제조 분야에서 예외 없이 상당한 기능주의적 폐해를 겪었던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헨리 드레이퍼스의 기관차 디자인과 전화기 디자인 ⓒ britannica이미지 확대보기
헨리 드레이퍼스의 기관차 디자인과 전화기 디자인 ⓒ britannica

김정한 계원예술대 겸임교수
김정한 계원예술대 겸임교수

이 시기 대표적인 디자인중 하나인 머큐리(Mercury) 기관차는 뉴욕 중앙 철도(New York Central Railroad)에서 1936년 개통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1세대 제품 디자이너인 헨리 드레이퍼스의 디자인인데 그는 1930년대에 산업디자인의 부흥기를 이끈 전문적인 디자인 서비스의 창시자였으며 특히 가정용 수화기 모델의 기준이 된 벨 연구소의 모델 302와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인간 공학의 개념을 정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정한 씽크디자인연구소 대표(계원예술대 산업디자인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