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 첼시-토트넘전이 한국시각 30일 첼시의 홈구장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려 득점없이 0-0 무승부로 끝났다. 첼시는 60% 이상의 볼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수비를 굳힌 토트넘의 아성을 끝까지 무너뜨리지 못했다. 프랭크 램퍼드와 조제 무리뉴 감독의 사제 대결은 승점 1점씩을 가져갔고 토트넘이 하루만에 리그 선두에 복귀했다.
■ 첼시 경기만 지배했을뿐 실속은 없었다
첼시로서는 최근 몇 경기에서 티모 베르너를 왼쪽 윙으로 기용하는 ‘4-3-3’ 전형의 방향성은 잡혔지만, 아직 팀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결코 나쁜 결과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랭크 램퍼드 감독은 이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다. 시합 후 회견에서 “우리는 게임 대부분을 지배했고 상대 역습의 위협을 정말 잘 무효화했다고 생각한다. 이길 수 있었고, 아마 이겨야 할 경기였다”라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렇게 램퍼드 감독이 언급한 것처럼 첼시는 자기 진영 깊숙히 수비 라인을 낮춘 토트넘에 대해 경기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경기 내내 첼시 선수들의 빠르고 템포가 좋은 패스 교환은 상대에게 볼 탈취의 과녁을 좁히지 못하게 했다. 또 역습의 기점이 되는 손흥민에 대한 패스는 은골로 캉테가 차단하고 해리 케인에 대해서는 3명이 포위하는 등 앞서 라운드의 맨체스터 시티처럼 토트넘에 역습을 허용하지 않았다.
■ 토트넘 수비 무너뜨리려면 마법과 운 필요
그러나 한편으로 공간 창출이 여의치 않으면서 왼쪽 윙어 베르너가 살아나지 못했다. 대면한 SB 세르주 오리에에게 단단히 봉쇄되면서 독일 대표팀 공격수는 지난 24일 스타드 렌과의 경기(UEFA 챔피언스리그)처럼 약동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오른쪽 윙 하킴 지예흐도 아약스전에서 홀린 듯한 플레이를 발휘하지 못했다. 대해에서 좁은 수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제대로 수영을 못하는 물고기 같았다.
램퍼드 감독은 이 경기를 승리하기 위해서는 박스 안과 주위에서 좀 더 마법과 운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뭔가 돌발적인 사태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무리뉴의 수비 블로킹을 뚫을 수 없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최종 라인은 물론이고 후반 40분이 지나도 무사 시소코와 피에르 에밀 호이베르그의 ‘더블 볼란치’는 계속 강도를 높였고 손흥민은 끝까지 수비로 돌아와 대면하는 사이드백 벤 칠웰이 제대로 오버래핑을 하지 못하게 마크했다.
후반 36분엔 메이슨 마운트가 드리블에 이은 페널티 박스 밖에서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날렸지만 위고 요리스에게 막혔다. 램퍼드 감독은 이 슈퍼세이브를 월드 클래스라고 평가했지만, 사실은 토트넘 수비 전체가 월드 클래스였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유럽 어느 팀도 이날의 토트넘을 무너뜨리기 어렵지 않을까.
■ 실속을 챙긴 무리뉴의 노련한 전술운용
경기 후 무리뉴 감독은 “첼시는 보통 더 위험을 감수하지만, 오늘의 그들은 주의 깊었다. 좀 더 모험적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듯 첼시 역시 역습을 경계하며 경기를 진행했다. 그러나 만약 볼을 빼앗겼을 때를 고려하지 않은 개방적인 전개에 들어간다면 그야말로 무리뉴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첼시가 조금 더 모험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역시 스피드가 뛰어난 베르흐바인이나 손흥민의 역습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고, 이 같은 위협적인 역습이 갖춰졌기 때문에 토트넘의 수비 블록은 월드 클래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다고 해서 베르너를 왼쪽 윙에 두는 ‘4-3-3’의 가능성이 끊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후반 들어 크리스티안 풀리시치, 올리비에 지루, 카이 하베르츠로 선수가 바뀌어도 팀 전체의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시합에 한해서는 스코어 상으로는 0-0으로 비겼지만, 토트넘이 승점 1포인트를 챙기면서 정상을 지킨 것을 감안하면, 젊은 첼시의 지휘관에 비해 경험이 풍부한 무리뉴가 교묘하게 가져간 ‘승리’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