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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인생은 원래 짜거나 매운맛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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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인생은 원래 짜거나 매운맛이 아니다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언제였던가. '잘 먹고 잘살기가 정답은 아니다'라는 칼럼 글에서, "인생은 원래 짜거나 매운맛이 아니다."라고 마무리한 적이 있다. 이 글을 읽은 독자 한 분이 뜬금없이 "그러면 인생은 무슨 맛인가요?"하고 질문을 던졌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한동안 이 질문에 파묻혀 살았다. "인생은 과연 무슨 맛일까?" 이공계 식품학자에게는 너무 버거운 질문. 지혜로운 독자들의 답안을 곁눈질하고 싶을 정도다.

우리가 식생활에서 느끼는 맛에는 신맛, 쓴맛, 단맛, 짠맛, 떫은맛, 매운맛, 감칠맛 등이 있다. 음식재료별로 보면, 레몬의 신맛, 오이(꼭지)의 쓴맛, 바나나의 단맛, 함초의 짠맛, 재래종 감의 떫은맛, 고추의 매운맛, 다시마의 감칠맛처럼 재료와 주된 맛을 연관시킬 수 있다. 이 가운데 감칠맛은 입에 '감기는' 맛이다. 흔히 맛있는 음식은 입에 '감긴다' 즉 '감칠맛 있게 착착 달라붙는다'고 하지 않는가? 어쨌든 대부분의 음식재료는 신맛, 쓴맛, 단맛, 떫은맛, 감칠맛 등을 한두 가지 또는 그 이상 지니고 있으나, 짠맛과 매운맛을 지닌 재료는 어느 정도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음식재료 중에서 자체적으로 짠맛이나 매운맛이 나는 종류는 많지 않다. 전자에는 함초처럼 소금함량이 높은 것이 있고, 후자에는 고추처럼 캡사이신 함량이 높거나 마늘처럼 알리신 함량이 높은 것이 있다. 흔히 우리는 신맛, 쓴맛, 단맛, 떫은맛, 감칠맛 등을 지닌 주(major)재료가 싱거울 때, 간을 강하게 하기 위해, 즉 짜거나 맵게 하기 위해서, 소금이나 고추와 마늘 같은 부(minor)재료를 '첨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음식은 원래 짜거나 매운맛이 아니라, 그런 맛을 내는 재료를 첨가하거나 그런 재료가 첨가되어 그런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비를 인생살이에 적용해본다면 "인생은 원래 짜거나 매운맛이 아니라, 그런 맛을 첨가하거나 그런 맛이 첨가되어 그런 것이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흔히 인생살이를 '먹고 산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먹을 때와 비슷한 맛을 인생을 살면서 느끼게 되는데, 인생의 맛과 관련된 여러 가지 속담이 있다. 예를 들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단맛 쓴맛 다 보았다' '인절미에 조청 찍은 맛' '(시고 떫은) 개살구도 맛 들일 탓' '장은 묵은 장맛이 좋다' 등이 있다. 특히 짠맛과 매운맛에 관련된 속담은 인생살이의 어려움과 관련이 많은데, '남의 밥은 맵고도 짜다' '삼각산 밑에서 짠물 먹는 놈'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인생살이의 짠맛과 매운맛은 매일 매일의 삶의 맛에서 벗어나 있는 비일상적인 삶의 맛이라고 할 수 있다. 허구한 날 맵고 짜게 먹거나, 맵고 짜게 살 수는 없는 법. 인생살이의 짠맛과 매운맛은 내 삶의 외적인 고단함에서 비롯되는 맛일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인생의 짠맛과 매운맛은 우리의 일생 중에 한두 번 닥칠 수 있는 위기와 난관에서 드러나는 맛일지 모른다. 그래서 순풍에 돛 단 배처럼 순조롭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인생의 맵고 짠 맛을 아직 못 봐서 그래"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맵고 짠맛이 얼마나 힘든 맛이기에, 고문할 때 단골 메뉴가 고춧가루 섞은 물을 얼굴에 붓거나, 짜디짠 음식이나 소금물을 먹여 갈증을 유발하는 것이겠는가? 다시 말해 인생의 일상적인 맛은 신맛, 쓴맛, 단맛, 떫은맛, 감칠맛 등을 한두 가지 또는 그 이상 지니고 있는 맛이면서, 내 인생 본연의 맛에 기인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짠맛과 매운맛이 두드러진 인생의 맛은 비일상적이고, 외적이며, 예외적인 경우로 볼 수 있다.

생을 살면서 맛보는 인생의 맛 혹은 인생미(人生味)는, 인간미(人間味)라는 인생재료의 맛에서 출발한다. 인간미는 인간답고 따뜻한, 본연의 일상적인 맛이며, 신맛, 쓴맛, 단맛, 떫은맛, 감칠맛 등을 한두 가지 또는 그 이상 지니고 있는, 간이 적절한 맛이다. 인생미도 인간미가 바탕이기에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지난 칼럼 글처럼, "인생은 원래 짜거나 매운맛이 아니다."라고 마무리하고 싶다.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