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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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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사이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온통 뿌연 하늘이다. 도봉산과 북한산의 암봉들이 미세먼지에 가려 윤곽만 흐릿하다.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하던 전통적 겨울 날씨인 '삼한사온(三寒四溫)' 은 이젠 옛말이 되었다. 대신 미세먼지를 뜻하는 '삼한사미( 三寒四微)'가 일상화된 듯 추위가 누그러지면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댄다. 머리카락 굵기의 20분의 1수준인 초미세먼지는 기관지나 폐 등으로 들어가면 건강에 치명적이다. 이런 날은 되도록이면 외출을 삼가는 게 상책이지만 부득이 외출해야 한다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마스크 착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런데도 파주 감악산 출렁다리를 찾아 나선 것은 오랜 거리두기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미세먼지보다 더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감악산은 경기 오악(五岳)중 하나로 바위 사이로 검푸른 빛이 나는 감색 바위산이란 뜻이다. 감악산 둘레길의 시작점에 위치한 출렁다리는 도로로 인해 잘려져 나간 설마리 골짜기를 연결하여 감악산을 온전한 하나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다리다. 전국 최장 150m의 무주탑 산악 현수교인 출렁다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2016년 시공되었다. 지친 심신을 달래기엔 자연보다 좋은 장소는 없다. 모두가 자연인처럼 살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자연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새로운 힘을 충전할 수는 있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철이나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에 찾아왔다면 훨씬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었겠지만,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 끝이 매운 겨울산행도 나쁘진 않다. 천천히 걸어도 입구에서 15분 정도면 너끈히 출렁다리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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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에서 바라보는 감악산의 풍경은 아름답다. 도심의 잿빛 하늘과는 달리 파란 하늘, 확 트인 전망에 산 정상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단숨에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쾌감을 준다. 양쪽 골짜기에 걸쳐진 출렁다리는 마치 차 안에서 피안에 이르는 통로처럼 느껴진다. 산크리스트에서 유래된 불교 용어 '피안(彼岸)'은 '강 저쪽 둔덕'이란 뜻으로, '이쪽 둔덕'을 뜻하는 '차안(此岸)'의 상대어다. 현세를 차안(此岸)이라 한다면 피안은 현세를 벗어난 경지, 즉 해탈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늘 힘겨운 게 우리네 삶이긴 해도 올해는 유난히 힘들었지 싶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에 갇혀 사느라 관계도 소원해지고 사람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은근히 후회도 된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불어오는 회한의 바람이 가슴을 칠 때마다 나는 비탈에 선 나무들을 보며 위로를 받곤 한다. 가파른 비탈에서 평생을 위태롭게 서서 살아야 하는 나무에 비하면 나의 삶은 축복 받은 삶이 아니던가. 한 곳에 붙박인 채로 형벌 같은 삶을 살면서도 철 따라 꽃 피우고 초록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에 비하면 수시로 투덜거리는 나의 소소한 불평들은 오히려 사치에 가깝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일본 에도시대의 무장이자 정치가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삶이 그러하다면 무턱대고 불평하기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긍정의 자세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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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에서 자라는 벚나무를 가리켜 피안앵(彼岸櫻)이라고 한다. 고단한 현실의 강 너머 피안의 세계로 이끄는 나무란 뜻이다. 화창한 봄날, 적요한 절집에서 만개한 꽃송이를 가득 달고 선 벚나무를 마주치면 정말 이승이 이승 같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인 황홀경에 빠져들게 된다. 화양연화(花樣年華)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화려한 꽃 시절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라 해도 영원한 것은 없다. 억수로 퍼붓던 소나기도, 휘몰아치는 눈보라도 언젠가는 그치게 마련이듯이 시간의 강물은 그 모든 것을 품고 흘러가기 때문이다. 코로나 대확산으로 모두가 힘든 가운데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