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코로나 블루'에 빠진 대한민국, '신명DNA'로 극복할 때

공유
0

'코로나 블루'에 빠진 대한민국, '신명DNA'로 극복할 때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00)] 신명과 흥의 문화로 승화시키는 지혜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 본인의 한과 그 대상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공감이 묻어나오는 예술이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 본인의 한과 그 대상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공감이 묻어나오는 예술이다. 사진=뉴시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우울증을 의미하는 '코로나 블루'라는 명칭이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그 실체가 통계 수치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불안 장애 상담 건수가 올해 상반기 1만8931건으로 지난해 1만3067건에 비해 44.8% 늘어났다. 지난해는 한 달 평균 1089명이었지만 올해는 3155명으로 사실상 3배 증가했다. '블루(blue)'는 원래 푸른 색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은유적으로 침울(沈鬱)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침울은 말 그대로 '우울하여 가라앉아'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인 질병이지만 한국문화에서는 특히 심리적으로 강한 우울을 동반한다.

문화는 세상을 이해하는 틀과 소통하는 창(窓)의 역할을 한다.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恨)'이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한국인의 감정 및 심성의 특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과 함께 쓰이는 것이 '원(怨)'으로 대개는 '원한(怨恨) 맺힌 삼팔선'처럼 같이 쓰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 민속문학의 학문적 토대를 만들고 한국 문화의 원형에 대한 글을 많이 발표한 김열규 교수에 의하면, 한은 '신명'과 서로 양극을 이루는 심리상태라고 설명하면서, 이 사이를 '정'이 매개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정'이 파탄될 때 '한' 또는 '원한이 생기며, '정'이 회복될 때 '신명'이 난다고 보았다.
​恨이 가장 한국적이며 감정과 심성의 특질
'怨'은 '怨恨 맺힌 삼팔선'처럼 사용 많아

초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교수는 한극의 문화를 '한'을 푸는 문화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그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를 '원(怨)'과 '한(限)'의 문화로 대비시키면서, 일본문화는 빚이나 은혜를 갚는 문화로, 한국 문화는 푸는 문화로 비유하고 있다. 그는 원과 한을 구분하여 원은 직접적 보복의 형태로 풀고, 한은 복수보다는 좌절의 회복 그 자체로 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그는 한이 풀릴 때 신바람이 난다고 봄으로써 '한풀이는 곧 신명'이라는 김열규 교수의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수학자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문화 비교에도 큰 공헌을 한 김용운 교수는 '한'의 원형을 귀신에게 아내를 빼앗긴 처용에서 찾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아내를 범한 귀신과 맞싸우자니 힘이 없고, 울자니 자신의 신세가 안타깝다. 그는 화도 내고 웃기도 했으나 결국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그 자리에서 물러섰다. 그리면서도 그는 은근히 아내가 무사히 돌아올 날을 믿었다. 그의 울음 속에 '한'과 '원'이 함께 내포된 것이다. 그는 병신춤을 예술화시킨 민족은 한국인뿐일 것이며, 여기서 불쌍한 병신 거지가 명랑하게 노래하며 춤을 춘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웃음 속에는 눈물이 가려져 있으며, 이것을 '한'의 미묘한 심성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인의 한과 원에 대해 심리학적 연구를 한 문화심리학자 최상진 교수는 명저 『한국인의 심리』에서 한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하였다. 첫째, 부당한 차별을 받을 때다. 예를 들면, 국가나 기관 혹은 권력을 가진 이들로부터 부당한 핍박이나 피해를 당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내 땅에 군부대나 공공기관이 들어오게 되어 강제로 쫓겨나야 한다든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가해자가 배경깨나 가진 사람이라 그 손해를 고스란히 내가 입게 되는 경우다.

둘째,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심각하게 결핍되었거나 타인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결핍되었을 때 한이 생긴다. 이 경우는 주로 다른 이들과의 비교로 인해 어떠한 상황이나 조건이 '남 보기에 부끄러운' 상황에서 발생하는 한이다. 예를 들면, 지금도 한국인들은 '못 배운 것'이나 '못 가진 것'에 상당한 스트레스와 좌절감을 느낀다. 남 보기에 부끄럽고 가족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자기 자신의 지울 수 없는 실수 때문에 한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자기 자신에게 그 원인이 있는 경우다. 부모님 생전에는 불효하던 자식이 부모가 돌아가시고 후회하는 것이 하나의 예이다.

​신명과 양극을 이루는 심리상태…'정'이 매개
日은 원한 갚는 문화
…韓은 푸는 문화로 비유

위의 상황에서 생긴 억울하고 비참하고 절망스런 감정은 크게 세 단계를 거쳐 '한(恨)'이 된다. 첫 번째 단계는 억울함을 느끼고 발하는 당사자는 욕구 좌절과 분노, 적개심, 복수심과 같은 강력한 '원(怨)'의 감정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상대에게 직접적이고 공격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사회로부터 용인되지 않거나 상대로부터 보복을 받을 위험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해야만 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자기 자신에게도 억울함이나 불행의 책임이 부분적으로 있다고 여기면서 책임의 일부분을 자신이 지면서 '원'의 감정의 약화와 질적 전환을 가져오는 심리 내적 적응 과정이 일어난다. 원에서 한으로의 전환 과정은 힘이 없는 자신의 신세에 대한 비애(悲哀)의 감정과 더불어 대상 지향적 원망이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전환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팔자나 운명으로의 귀인과 같은 숙명론적 합리화 과정 등을 통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원망 대상의 전환과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으로의 전환은 강력한 원의 감정을 완화시키거나 약화시킨다. 따라서 분노는 슬픔으로, 욕구 좌절은 무력감으로, 복수심은 자기 원망과 신세타령으로 전환된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가라앉힌 분노의 감정과 자신의 처량한 신세에 대해 재정리하는 심리적 반성의 과정이 일어난다. 이 단계에서의 감정 상태는 슬픔, 흥분 등이 함유된 부정적 감정이 생기고 다시 가라앉고 하는 기복을 반복하면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안정된 한의 감정 상태로 침전(沈澱)된다. 이런 상태의 한은 적절한 사회적 통로를 통해 표출되기도 하며, 예술이나 문학과 같은 승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국가 등서 부당한 핍박 받을 때 恨 발생
욕구좌절, 무력감
…복수심은 신세타령 전환

마지막 네 번째 단계에서는 한은 자신의 감정적 관여로부터 분리되어 객관화되어진 상태의 한으로 전환된다. 즉 한이 '맺히는' 단계에 이른다. 이 단계에서의 감정 상태는 평온하며 조용하고 처연(悽然)하기까지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맺힘'은 기구한 운명을 감내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갖추는 한국 문화의 '집단적 방어기제'라고 할 수도 있다.

'맺힌' 한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풀릴' 수 있다. 첫째는 한의 원인을 제거하는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방법이다. 또 하나는 예술이나 스포츠 등 사회가 인정하는 방법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이다. 한이 승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감정이 '신명' 혹은 '흥(興)'이다. 신명이나 흥은 한이 승화되는 과정을 촉발하는 에너지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승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신나고 흥겨운 감정이기도 하다.

한과 신명이 감정의 양극단으로 서로 대척점에 있어서 신명이나 흥이 나기 위해서는 한이 풀려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이 신명과 흥의 원천(源泉)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이런 해석은 소위 '각설이 타령'이나 위대한 춤꾼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이 잘 보여준다. 용어 자체가 요즘에는 사용하기 적당하지 않지만, 공옥진 여사의 춤은 본인의 한과 그 대상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공감이 없었다면 탄생하기 어려운 예술이다. 공옥진 여사가 이 춤으로 한을 승화시켰다고 해서 그 분이 겪은 개인적인 한과 절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춤들로 인해 그의 한과 절망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하지만 그 한과 절망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예술로 승화시키는 에너지로 전환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19로 무기력에 빠지고 사회적 현실에 절망을 느끼는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설이 타령'의 지혜이다. 빌어먹는 처량한 신세를 흥겨운 타령으로 승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속으로는 울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며 춤출 수 있는 민족의 힘이 우리 각자에게 유전자로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어느 정치가가 말했듯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진리를 온갖 풍상을 겪고도 질긴 생명력을 유지해온 한민족은 다 알고 있다. 지금이 바로 신명과 흥이 필요한 때이고, 동시에 제일 승화시킬 수 있는 적기(適期)이기도 하다. <기생충>과 BTS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각설이보다는 낫지 않은가?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