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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최효진 안무의 '동행'…거대한 상상의 시적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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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최효진 안무의 '동행'…거대한 상상의 시적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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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Tomorrow'.
폭풍우가 밀려오는 줄 알았다/ 뜨거운 함성으로 커오는 젊음의 풋풋함/ 나름의 모습으로 햇 찻잎 같은 미소를 던진다/ 내일은 푸르렀고, 아침은 비둘기의 군무를 흥겨워했다/ 푸르러 가는 싱그러움이 굴렁쇠처럼 수레를 굴리다 보면/ 성큼 와 있는 늦여름/ 세월의 평형추는 삶의 시소를 조망하고/ 움직임이 불러낸 시제는 꿈을 변주한다/ 별이 빛나는 밤에 써낸 몸 시(詩)/ 배신의 계절에도 두텁게 피어난 우정과 사랑/ 생의 나침반은 희망을 가리킨다

12월 19일(토) 저녁 다섯 시,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최효진 현대무용단 주최·주관, 밀물예술진흥원 후원의 <동행>이 공연되었다. 현대무용가 최효진(한양대 무용예술학과 겸임교수) 안무·출연의 제7회 개인 공연 <동행>은 ‘Tomorrow’(내일)와 ‘Play Ground’(운동장)의 빛나는 두 편으로 구성되어 춤의 제전에 상제되었다. 코로나 환란으로 인해 타의적 공연 연기 끝에 다섯 번째로 공연이 확정, 성사된 작품은 상상을 훨씬 능가하는 성과물을 창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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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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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Play Ground'.

연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최효진의 작업을 두고 밀물예술진흥원 이숙재 이사장은 “도전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덕담을 건넨다. 안무가 최효진은 자신의 춤을 발아시킨 장연향 선생과 조련사 이숙재 교수를 사표로 삼아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다.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한 <동행>은 이정하의 시 ‘동행’의 결구 「같이 걸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처럼 내 삶에 절실한 것은 없다」와 궤를 같이한다.

<동행>은 춤에 굶주린 무리거나 로마 원형경기장의 검투사 같은 간절함으로 낭만을 뿜어내는 모습이었다. 역경의 시절에 집말기를 띄우고 거대한 움직임으로 감동을 만들어내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과 콜럼버스 적 실행에 해당한다. 한 치의 오차나 게으른 동작 없이 무대를 꽉 채운다는 것은 평양 대운동장에서 매스게임을 보는 것과 같은 섬뜩한 감동을 불러온다. 무서을 정도의 청춘의 자발적 의지는 아름다운 시절 인연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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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Play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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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Play Ground'.

‘Tomorrow’(’내일)는 대중가수 나훈아의 소크라테스에 관한 상상을 ‘테스 형’으로 친화하듯 신대성 작곡, 송대관의 노래 ‘해뜰날’의 경쾌함을 가지고 출발한다. 대중가요를 현대무용에 접목하는 발상에서 출발한 춤은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청춘의 의지력을 보여주었다. 일상에서 포착한 다양한 움직임은 유기적인 유닛의 조합과 진법을 운용하고 있었고, 덴마크의 체조 교육 방법 같은 일체감으로 놀라운 기량을 발산해내고 있었다.

말총머리와 원색의 스판덱스 치마가 인상적인 춤은 강강술래의 현대적 버전이 이루어질 때까지 쉼 없이 청춘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분주한 가운데 희극적 몸짓과 다양한 움직임, 출중한 능력의 개인이 무리의 일부로 참가한 자랑스러운 이름은 조환희, 서예진, 신현지, 권예진, 전서윤, 성해인, 김효민, 오지은, 한민주, 강다은, 권세진, 고유민, 박제우, 김준희, 박마린, 박한별, 이재정, 이정민, 장채원, 유지흔, 하지수, 김민지, 한효서, 김나경, 김주현, 김지우, 양정윤, 강희수였다. 이들은 국내외의 다양한 경연에서 수상한 미래의 춤 인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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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Play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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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Play Ground'.

대장정의 풍경; 도약을 꿈꾸는 자들은 뉴질랜드의 원시림 같은 한없이 너른 상상을 한다. 현대무용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빚은 ‘내일’과 ‘운동장’은 희망의 상징어이다. 문필가들이 기본 재료인 단어에 수식어와 움직씨를 보태 인상적 문장을 만들듯 안무가 최효진은 격정적 움직임과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이 시대 청춘의 찬란한 모습과 부모 세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단계의 놀이터에서 자신과 아이들의 발전을 지향하는 건강한 중년이 될 고뇌를 표현해낸다.

‘Play Ground’(운동장); 개인의 사유를 떠나 놀이터의 개념을 벗어난 경쟁 개념이 도입되고 삶의 균형에 관한 성찰이 시작된다. 움직임의 동인(動因)이 된 운동장은 미끄럼틀, 그네, 철봉, 시소가 놓여있는 곳이다. 움직임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안무가 최효진의 ‘Play Ground’는 시소를 무대의 도구로 삼아 춤을 전개 시킨다. 정제된 움직임으로 ‘운동장’이란 시적 은유를 ‘몸시(詩)’로 풀어내며 ‘삶은 수레바퀴와 같다“라는 것을 귀납법적으로 입증한다.

시소 위의 삶을 살아가는 여인, 주인공 최효진은 가야금 연주자이거나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Play Ground’의 지휘자이며 조정자이다. 여인의 인생 행로가 시소 위에 놓인다. 최효진의 ‘시소 위의 삶’은 ‘길’(La Strada)의 다른 표현이다. 그녀의 길은 미완의 ‘Yesterday’이며 화평과 희망을 기원하는 인생 예찬이다. 그녀가 만들어낸 움직임의 조각들은 육각의 나무 조각처럼 견고한 받침이 되어 후학들의 놀이터가 되고 운동장(도량, 道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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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Play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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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Play Ground'.

영원히 견고한 틀일 것 같던 시소도 축을 이동한다. 시대와 환경 변화에 따른 적응을 요구하는 장(場)이다. 메트로놈이 매트처럼 깔린 가운데 김재덕의 음악은 무용수들의 동선을 조절해내며 완벽한 조화를 인도한다. 솔로, 듀엣, 트리오, 군무로 장면구성 분할을 가능하게 만드는 동작과 적절한 질감의 조명은 경연 같은 분위기에서 양질의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었다. 무대가 있다면 춤출 수 있다는 자신감은 분주한 조합 가운데 수레바퀴(타이어)를 굴리고 있었다.

삶은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반복되고, 움직임이 만들어낸 무수한 조형이 별처럼 빛나는 가운데, 관악·타악·현악을 오간 음악이 인간이 유희에 탐닉하도록 유혹하지만, 안무가는 ”인간이 수레바퀴의 순응자가 아니고, 수레바퀴를 타고 놀아야 한다.”라는 주장을 한다. 봉(棒)에 관한 사유가 움직임으로 표현되어 끼어든다. 이곳저곳의 타인의 시소에서도 입장을 달리하는 경쟁이 번지고, 새로운 정형의 모습으로 맵시 있는 이미지들이 지속해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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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Play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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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Play Ground'.

여인은 삶이라는 ‘Play Ground’(운동장)에 관한 사유를 샤막 뒤로 내보내고 의지 앞에 선다. 그리 멀지 않은 지극히 낮은 곳에서의 평화는 감동을 불러온다. 그녀의 상상 속에 성탄절을 맞은 어린이(태헌, 태윤) 형제가 동화적 분위기 속에 그려진다. 여인은 의미적 예술발전과 행복한 가정 지킴이라는 책무를 다할 것을 다짐한다. 안무가 최효진의 무체(舞體)는 중언(重言)의 의미를 지닌다. 그녀의 몸 시는 행복을 나누며 움직임의 의미를 회피하지 않는다.

몸으로 기억하며 동행의 축성을 쌓은 사람들은 최은지(한국무용학회 차세대안무가상), 박관정(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 대상), 이화선(PADAF 최우수안무상), 이현진(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 대상), 김정규(한국현대무용콩쿠르 듀엣부문 대상), 윤희섭(한국현대무용콩쿠르 듀엣부문 대상), 오신영(PADAF 최우수연기상), 최정원(한국현대무용협회 신인상), 김혜미(코리아국제현대무용콩쿠르 시니어 1위). 이상엽(한국현대무용협회 콩쿠르 시니어부문 금상)이다.

최효진 안무의 'Play Ground'.이미지 확대보기
최효진 안무의 'Play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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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진 안무의 'Play Ground'.

<동행>은 어제와의 약속, 오늘의 망설임, 내일에 대한 희망의 3중주를 그리움, 마음가짐, 기원의 명제로 변주하며 성숙으로 가는 느긋한 몸짓을 보여준다. 최효진의 장점은 무수한 현대적 이미지 위에 한국적 서정성을 듬뿍 뿌리는 것이다. 안무가의 전작들이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자신에 대한 성찰,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주조로 한 것이었다면, ‘운동장’의 삶은 시소게임이거나 실존의 경쟁터에서의 승자가 될 것을 다짐하고 기원한다.

최효진, 안무가로서 그녀가 움직이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 명료하지만, 그녀가 만들어내는 무수한 조합은 문학적 상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풀어내는 것이어서 신비평의 대상이 된다. 그녀의 비유와 움직임이라는 도식적 행위는 총체적이어서 세부적 항목에 관한 담론은 방대해진다. 그녀의 상상계에 연계된 <동행>의 ‘Tomorrow’(내일)와 ‘Play Ground’(운동장)는 2020년 경자년을 마무리 짓는 신나고 아름답고 따스한 공연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