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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소년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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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소년과 개!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2월이다. 2021년 새해는 희망보다는 절망이, 기대보다는 체념이, 기쁨보다는 우울이 안개처럼 멀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떠돌며 답답하게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겨울은 눈도 잦고 한파가 맹위를 떨쳐 가뜩이나 지친 사람들의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게 했다.

우리가 이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려 만용을 부리기보다 어떻게든 견뎌내려 애쓰는 동안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2월에 다다른 것이다. 2월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입춘(2월 4일)이 들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입춘(立春)은 문자 그대로 봄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혹한의 겨울을 견디느라 잔뜩 움츠렸던 마음속의 봄이 비로소 기지개를 켜는 출발점이 바로 입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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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아침, 산에 갈까 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중랑천변을 달렸다. 바람도 차고 아직 녹지 않은 잔설과 응달진 곳의 군데군데 결빙 구간이 있어 자전거를 타기엔 위험 요소가 많지만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라이딩의 쾌감을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천변을 질주하다가 어로가 설치된 수중보 근처에 자전거를 세우고 물새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청둥오리와 가마우지, 쇠백로, 왜가리, 원앙까지… 식별 가능한 물새들의 이름을 하나씩 입속에 넣고 웅얼거리다 보면 문득 나도 한 마리 새가 되어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진다.

희끗한 눈을 묻힌 채 우뚝 솟아 있는 도봉의 흰 이마 위로 붉은 아침 햇살이 퍼지고 천변의 마른 억새들 사이로 물낯에 반사된 햇빛이 눈을 찔러온다. 아침 운동을 나온 일군의 사람들이 파워워킹을 하며 잰걸음으로 나를 스쳐 지나간다. 나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느리게 자전거 페달을 돌리며 입춘을 앞둔 아침 풍경을 만끽한다. 한결 밝아진 솔빛과 푸른 기운이 도는 수양버들가지, 마른풀 사이로 보이는 지면에 달라붙은 로제트 식물들의 붉은 빛이 도는 초록 잎사귀들을 눈여겨 바라보며 마음속의 봄을 일으켜 세워 보는 것이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온한 오늘을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는다. 독서와 음악 감상은 혼자 있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좋은 음악은 가슴에 이는 알 수 없는 분노를 삭여주고 우울감과 외로움을 달래주고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의 줄을 잡고 일어서는 방법을 일러준다. 독서는 비대면의 사회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독서를 통해 새로운 위대한 사상과 가르침을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성찰할 수도 있다. 감정소모가 쓸데없이 많은 TV 시청이나 게임에 빠지기보다는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가다 보면 보다 성숙한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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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하세 세이슈의 소설 ‘소년과 개’를 읽었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주인을 잃은 개 다몬이 친구인 소년 히카루와 재회하기 위해 5년 동안 일본 전역을 떠돌며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이와 상처를 주고받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슬픔과 외로움이 떠돌이 개 다몬으로 인해 치유되는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감명 깊게 그려진 수작이다.

애견 인구 1000만 명 시대. 이제 개는 단순히 집과 가축을 지키는 역할을 넘어 당당하게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배반을 모르고 애정을 쏟는 만큼 사랑과 충성을 보이는 충직한 개를 통해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사람과 더불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것 같아 좋은 현상으로 보인다. 반려(伴侶)란 짝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을 버리고 반려견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우리의 친구이고 반려라고 여길 때 생명사랑의 지구촌이 될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