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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현대사 산증인' 아웅산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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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현대사 산증인' 아웅산 수치

태국 거주 미얀마 사람들이 1일(현지시간) 방콕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미얀마 지도자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의 사진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태국 거주 미얀마 사람들이 1일(현지시간) 방콕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미얀마 지도자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의 사진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와 이로 인해 전격 구금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처한 상황은 미얀마 현대사를 압축한 모습이다.

미얀마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여당 고위 인사들이 1일(현지시간) 아침 미얀마 군부에 의해 기습적으로 구금됐다.
앞서 지난해 11월 실시된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자 군부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와 아웅산 수치 가문은 대립적으로 미얀마 현대사를 구성하는 요소다.

군부의 정치 개입 역사는 1962년으로 올라간다.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때는 한국 등 개발도상국 곳곳에서 군사군데타가 일어나던 시기와 비슷하다.

간단히 요약하면 1962년 네윈 육군 총사령관 쿠데타→1988년 민주화 요구 시위에 유혈탄압→1990년 민주진영의 총선 승리 불인정→2021년 군부 쿠데타, 수치 재구금으로 정리된다.

군부의 반대편엔 아웅산 수치와 그의 집안이 있다. 수치는 1945년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의 딸로 태어났다.

그 2년 뒤 아버지 아웅산의 암살을 시작으로 1948년 미얀마 독립→1988년 수치 ‘양곤 연설’→1989년 수치 가택연급→1991년 수치, 노벨평화상 수상→2010년 수치 연금 해제→2015년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총선 승리→2019년 수치, 로힝야족 집단학살을 부정했다.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반복되는 와중에 수치는 석방과 가택연금을 오간 것이다. 가택 연금 15년만인 2010년 자유의 몸이 됐다가 11년만에 다시 구금되고 말았다.

질곡의 미얀마 현대사와 영욕을 함께했던 수치는 이제 또다른 역사 페이지에 어떻게 무엇을 기록할까.


유명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mhyo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