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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SH 직접시행에 서울 재건축단지들 '떨떠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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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SH 직접시행에 서울 재건축단지들 '떨떠름'

공공 주도에 "실익 적다" 거부감...강남권 "품질 저하, 집값 악영향" 외면 분위기
강북권도 "주민권리 침해" 부정적...초과이익환수‧의무거주 면제 파격조건엔 솔깃

정부가 지난주 발표한 2.4 주택공급대책의 핵심내용 중 하나인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을 놓고 서울 재건축단지들 반응이 미묘하게 온도차를 드러내고 있다.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재건축·재개발을 직접 시행하고, 사업·분양계획을 주도하는 방식이다. 도시정비사업의 시행 주체가 민간조합에서 공공기관으로 바뀌는 것이다.
정부는 2.4대책에서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물량 13만 6000가구를 제시하고, 이 가운데 서울에서 9만 3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9일 서울 도시정비업계에 따르면, 강남 일대 대규모 재건축단지들은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 시큰둥한 반응인 반면, 사업성 저하로 시행이 지지부진했던 강북권 재건축단지들은 규모별로 찬반 여론이 나뉘는 분위기다.

시공사 선정 권한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LH·SH에 넘겨줘야 한다는 점에서 재건축조합들은 내켜하지 않지만, 관리처분인가 생략·통합심의 적용 등 절차 단축, 조합원에 2년 실거주 의무 미적용과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 제외, 법적상한 용적률의 120% 적용 같은 파격 조건에 솔깃하는 분위기다..

우선 강남권 재건축단지들은 대체로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 강남구 A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대다수 주민은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것에 거부감이 크다”면서 “조합원의 재산권을 공공에 맡기란 얘긴데 향후 어떤 아파트가 지어질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어느 재건축단지가 선뜻 응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초구 B재건축조합 관계자도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으로 추진할 경우 가구 수만 늘어나 주거환경이 악화될뿐 주민 입장에서 실익이 없다”면서 “이미 사업성이 충분한데 굳이 공공에 맡겨 고급 아파트 이미지를 훼손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북권 정비사업장 분위기도 강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사업성 부족 등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한 사업장을 중심으로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에 긍정 입장을 내비치는 곳도 있다.

최근 공공재건축 사전컨설팅을 받은 서울 광진구 C아파트는 공공 직접시행 재건축 방식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C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관계자는 “최근 공공재건축 사전컨설팅 결과 용적률을 300%까지 올려주는 것으로 나왔지만, 늘어난 용적률의 절반을 임대가구로 조성해야 해 당초 예상보다 사업성이 떨어졌다”면서 “공공 직접시행 방식으로 추진 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와 의무거주 요건이 면제된다고 하니 일부 주민들도 긍정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강북권의 대규모 재건축단지들은 대체로 부정적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1300여 가구 규모의 은평구 D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관계자는 “정책이 추후에 더 나와 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선 주민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다”면서 “정부가 공공이란 이름을 붙여 주민들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시행으로 서울 강남‧강북 간 집값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LH와 SH 주도로 재건축사업이 추진되면 분양가 조정을 위해 저가 자재를 사용한 단지가 대거 들어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강남 재건축단지의 경우 비용을 더 내더라도 좋은 자재로 고급 아파트를 짓겠다는 정서가 강하다. 고급단지로 재건축한 뒤 집값 오름세가 조합원이 내야 할 분담금을 상쇄하기 때문”이라며 “강북 위주 단지들의 참여율이 높을 경우 강남과 강북 간 집값 격차는 지금보다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강남‧강북 간 집값 격차 우려에 정부는 토지주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으로도 고급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윤성원 국토교통부 1차관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설계·시공 업체 브랜드는 전적으로 주민들이 결정한다”면서 “다만, 고급자재를 쓰면 쓸수록 결국 사업비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설명한 다음 주민들이 동의하면 고급자재로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에 참여하는 조합원에게는 기존 정비계획보다 10~30%p(포인트) 추가 수익을 보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세부방안이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다 주민들과 정부가 측정한 수익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소유주들의 반발 이면에는 수익 보장의 문제가 깔려있다”면서 “추가수익 보장 규모가 아직 불명확한 상황에서 정부가 주민들과 조합원의 수익을 보장해줄 기준점을 명확히 제시해 소유주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김하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ski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