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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북풍' 늪에 빠진 공기업 대북사업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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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북풍' 늪에 빠진 공기업 대북사업 '딜레마'

한수원 '월성 원전'에서 산업부 '북한 원전'으로 옮겨붙어 정쟁 확산
가스공사·광물자원공사도 논란 휩싸여..."대북사업 특수성 감안해야" 곤혹

2019년 4월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개최된 '제34차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사장단 전체회의' 모습. 사진=한국철도 이미지 확대보기
2019년 4월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개최된 '제34차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사장단 전체회의' 모습. 사진=한국철도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주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북한 원전 건설' 논란이 공기업계를 '신 북풍'의 늪에 빠뜨리고 있는 양상이다.

17일 공기업계에 따르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 직·간접으로 연관된 자료 530개를 삭제해 감사원 감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이 오는 3월 9일 첫 재판을 받는다.
앞서 검찰은 산업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자료파일을 복원했고, 여기에 '북한 원전 추진' 관련 문건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져 '월성 원전'보다 '북한 원전'이 더 큰 이슈로 부각됐다.

산업부에 따르면, 논란이 된 북한 원전 관련 자료 중 산업부가 작성한 자료는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과 '에너지분야 남북 경협 전문가' 등 총 2건뿐이다.

나머지 자료들은 북한 비핵화의 대가로 지난 1995년부터 추진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원전 건설 관련 자료 등 이전 정부에서 작성된 자료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전 정부와 달리 현 정부가 남한에서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에서 원전 건설 추진이 이율배반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어 논란이 커졌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더욱이 삭제됐다 복원된 자료에는 현 정부가 건설을 중단시킨 경북 울진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 여기서 생산한 전력을 북한으로 송전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야당과 탈원전 반대진영의 거센 공격을 받았다.

문제는 이 때문에 그동안 북한과 에너지·인프라 협력 방안을 다양하게 추진해 오던 다른 공기업들까지 '북한 불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같은 해 5월 '전략경영처 남북 에너지협력 추진반'을 구성하고 국민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북한의 에너지 현황 및 천연가스 사업 협력방안 연구'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에 가스발전소를 포함해 도시가스·액화천연가스(LNG) 기지 등을 구축하는 가능성과 전략들을 분석했지만, 구체적인 사업자와 예상사업비·사업기간 등은 다루지 않았다.

보고서에는 "북한에 UN 제재가 계속되고 있어 현 시점에서는 북한과 교역이나 투자가 가능하지 않다"고 언급한 뒤 "북한은 가스(협력)에 관심은 높으나 가스(산업)의 이해도는 낮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경제제재 기간에는 북한이 참가하는 국제학술세미나 등 학술 교류부터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는 북한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기초조사'였을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 "북핵 해결과 UN 제재 해제 이후 정부 정책에 따라 남북 가스협력사업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에 무연탄·석유·가스 외에 '원전' 검토 내용도 담겨있다는 점, 2019년 가스공사 직원이 통일부 허가를 받아 북한 고위급 인사와 러시아에서 만남을 가졌다는 점 등을 야당 등이 부각시키자 가스공사도 '북풍'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가스공사가 2018년 국민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작성한 '북한의 에너지 현황 및 천연가스 사업 협력방안 연구' 최종 보고서 안에 수록된 '북한 동부 및 서부 공단의 가스발전소 건설안 개요도. 사진=정유섭 의원실이미지 확대보기
한국가스공사가 2018년 국민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작성한 '북한의 에너지 현황 및 천연가스 사업 협력방안 연구' 최종 보고서 안에 수록된 '북한 동부 및 서부 공단의 가스발전소 건설안 개요도. 사진=정유섭 의원실


한국광물자원공사 역시 2018년 10월 공사 직원들이 통일부 허가를 받아 중국에서 북한 관계자들과 만나 황해도 흑연광산 사업을 논의했다는 이유로 '북풍' 논란에 휘말렸다.

그러나, 광물자원공사는 본사 조직에 '남북자원실'을 두고 있으며, 이미 2011년부터 매년 서울에서 정부·국회·학계·기업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북한광물자원개발포럼'을 개최해 북한 자원개발과 남북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던 점을 '북풍 피하기'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광물자원공사 직원이 북한 관계자와 만나 광물자원 개발사업을 논의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는 주장인 셈이다.

한국수자원공사도 2015년부터 매년 12월께 남북 물환경 협력을 위한 '워터 데탕트 대토론회'를 열어 왔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3차 대유행 시기에 맞물려 개최일 직전에 토론회를 취소했지만, 매년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남북 물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주최할 만큼, 대북 교류가 수자원공사의 주요사업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철도는 2018년 11월 공사 직원들이 국가철도공단·통일부·국토교통부 관계자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해 동해선 북측구간 현지 공동조사를 벌였다.

앞서 2014년 최연혜 전 한국철도 사장은 북한을 방문해 평양에서 열린 제29차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사장단 전체회의에 참석했고, 이어 2019년 서울에서 열린 OSJD 사장단 전체회의에서 손병석 한국철도 사장은 "OSJD 회원국 모두 남북철도 연결과 한국의 대륙철도 진출에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다"고 밝히며 남북간 철도 연결사업에 의지를 드러냈다.

2019년 김정은-트럼프 간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경제협력사업이 진전을 보지 못한 가운데 정부의 대북사업에 자의반 타의반 참여해온 공기업으로선 '북한 원전 추진'발 신북풍 논란에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철도·도로·자원·에너지 분야의 공기업들은 북한과 협력이 원래부터 주요 사업 중 하나"였음을 강조하며 "지금은 기존에 해오던 사업마저도 계속하기도, 취소하기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국제 정세와 국내 정쟁에 휘둘리는 공기업 대북사업의 취약한 현주소를 전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