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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당 이전투구 싸움에 죽음에 직면한 미국 민주주의…유권자들 ‘제3당 대망론’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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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당 이전투구 싸움에 죽음에 직면한 미국 민주주의…유권자들 ‘제3당 대망론’ 확산

2020 미국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미국이 둘로 쪼개지면서 유권자들 사이 제3정당 대망론이 확산되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2020 미국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미국이 둘로 쪼개지면서 유권자들 사이 제3정당 대망론이 확산되고 있다.

■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 고조되는 제3당 대망론

세계인들은 줄곧 미국이 민주주의의 표본이라고 가르쳐 왔다. 특히 양대 정당제는 본받아야 할 부분으로 꼽혀 왔다. 하지만 미국의 현실은 2대 정당제는 기능하지 않고 정치적 대립은 극한에까지 이르고 있다. 협상과 타협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면 이제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이념 차이는 모든 정치적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정치적 현실을 앞에 두고, 미국 국민도 양대 정당제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며 제3당의 등장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지시각 15일 갤럽이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의 정당에 대한 의식 조사로 보고서의 제목은 ‘Support for the Third Party at High Point’이며, 국민은 민주당과 공화당 이외의 제3정당을 원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결과에 따르면 제3정당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응답은 6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존 정당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응답은 33%에 그쳤다. 이 회사가 제3당에 관한 조사를 시작한 것은 2003년으로 그때는 제3당이 필요하다는 회답은 40%였다. 이 조사는 “2012년 이후 미국인은 일관해서 제3당을 지지하고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욱 특징적인 것은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제3당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 18일 조사에서는 36%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단숨에 63%로 상승했다. 제3당에 대한 급격한 상승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대선 이후 조성된 공화당의 혼란에 실망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민주당 지지자도 46%가 제3당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지난 1월 21일 조사 결과인 52%보다 낮아졌다. 이는 바이든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무당파에선 제3당 지지가 70%로 월등히 높다. 무당층은 민주당에도, 공화당에도 불만이 있어 이는 당연한 결과다.

다만 공화당 지지자들의 공화당에 대한 실망감이 높아졌지만, 의외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지도자로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답한 비율은 68%로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새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31%에 불과했다. 하지만 공화당 성향의 무당층은 47%가 트럼프 지지, 51%가 새 지도자를 찾는다고 응답했다. 어쨌든 공화당 지지자들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남아 있는 셈이다. 제3당을 지지하는 공화당 지지자들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신당을 창당하기보다는 공화당 지도자로 남기를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애국당(Patriot Party)을 결성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이 조사는 또 하나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공화당의 장래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서 ‘보다 보수적으로 될 것’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44%, ‘현 노선을 계속’이 35%, ‘보다 온건하게 될 것’이라는 비율은 최저로 21%였다. 현재의 공화당은 ‘충분히 보수적’이지만 지지자는 더 보수적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보수적인 정책을 원할까.

민주당 지지자들은 어떤가. 민주당 내에서 진보파와 중도파의 대립이 논란이 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조사는 “온건파와 진보파의 내부 대립은 진정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보다 진보적으로’의 비율은 34%, ‘현 노선 그대로’가 40%, ‘보다 온건하게’가 25%였다. 방향성은 크게 갈라져 있지만, 그것이 내부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로 이 조사는 대선에서 승리해 상원 다수를 탈환하고 하원 다수파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만약 2022년 중간선거에서 패하면 당내 갈등은 일시에 터져 나올 것이다.

■ 민주-공화 양당 고정표 이탈 현상 가속화

하나 더 미국 정치의 동향을 나타내는 조사를 소개한다. 이것도 갤럽의 조사로 지지 정당의 동향을 나타내는 정당 고정표(Party Affiliation) 조사다 (조사 기간은 2021년 1월 21일 2월 2일). 옛날 정당별 지지도는 공화당 40%, 민주당 40%, 무당파 20%라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조사 결과에서는, 공화당은 25%, 민주당은 25%, 무당파는 50%였다.

이 조사가 시작된 것은 2004년으로 최초의 조사 결과에서는, 공화당이 32%, 민주당이 28%, 무당파가 40%였다. 그러나 17년 만에 무당파는 10%포인트 상승하고 공화당은 7%포인트, 민주당은 3%포인트가 저하하고 있다. 정당 이탈은 공화당 민주당 모두 공통적이지만 공화당 이탈이 더 크다. 이렇듯 유권자의 ‘탈 정당’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 역사로 살펴본 미국 제3정당의 존재와 역할

역사적으로도 제3의 정당은 존재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정당정치를 상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워싱턴 행정부가 들어서자 양대 정당제의 첫 모습이 드러났다. 중앙집권적 국가건설을 지향하는 ‘연방당(Federalist Party)’이 결성됐고, 이에 대항하는 국민주권 위주의 ‘민주 공화당(Democratic Republican Party)’이 결성됐다. 연방당을 이끈 사람은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이고, 민주공화당을 이끈 사람은 초대 국무장관인 토머스 제퍼슨이었다. 하지만 친영파인 연방당은 마침내 국민의 지지를 잃고 자연 소멸한다. 그 결과 오랫동안 민주 공화당에 의한 일당 지배시대가 이어졌다. 이 시대는 ‘좋은 시절(Era of Good Feeling)’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강한 중앙 집권 국가와 산업 진흥을 목표로 하는 일파가 민주 공화당으로부터 결별해 1824년에 ‘국민 공화당(National Republican Party)’을 창당한다. 같은 당에서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이 탄생했다. 이에 대응해 정권을 빼앗긴 민주 공화당의 개혁을 주장하는 앤드루 잭슨이 1828년에 ‘민주당’을 창당한다. 그리고 이 당은 현재의 민주당으로 연결되어 간다.

하지만 잭슨의 민주당이 전제적이라고 반발해 1834년 ‘휘그당(Whig Party)’이 결성된다. 그리고 1828년 창당된 프리메이슨의 음모론에 반대하는 ‘반 메이슨당(Anti-Masonic Party)’이 휘그당에 흡수된다. 민주당은 노예 제도를 지지하고 주권을 중시하는 정당이었고, 휘그당은 반노예를 주장하며 중앙집권적 국가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후 민주당과 휘그당이 번갈아 대선에서 승리하는 시대가 이어졌다.

이런 정당의 재편성 과정 속 제3당이 창당된다. 하나는 주권을 가장 중시하며 주 정부는 연방정부가 결정한 법률을 무효화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재정리당(Nullifier Party)’으로 1832년 대선에서 잭슨 민주당 후보에 도전해 11명의 선거인을 얻었다. 반 메이슨당도 대선에서 선거인 7명을 얻었다.

■ 민주-공화 양당제 성립 배경이 된 역사

1848년 ‘자유 토지당(Free Soil Party)’이 창당돼 그해 치러진 대선에서 같은 당 후보자는 일반투표에서 10%를 얻었지만, 선거인은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 당은 1854년에 해체하고 공화당 창당에 합류했다. 그 결과 현재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대 정당제가 만들어졌다.

요컨대 미국민주주의 초기에도 반 메이슨당, 재정리당, 자유토지당과 제3당이 존재하며 나름대로 영향력을 가졌던 것이다. 다른 당으로는 ‘아메리카당(American Party)’으로 일명 ‘아무것도 모르는 당(Know-nothing Party)’으로 불렸다. 이 당은 천주교 이민을 반대하는 정당으로 1856년 대선에서 후보를 내세워 21%의 표를 얻었지만, 선거인은 단 한 명이었다. 1860년에는 남부의 연방 이탈에 반대하는 ‘입헌연합당(Constitutional Union Party)’이 결성되었다. 1860년 대선에서 후보자를 옹립해 득표율은 12.6%, 선거 인원은 1명이었다.

■주목받는 '인민당'

이후 남북전쟁 승리로 동부를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이 큰 힘을 얻는다. 노예 제도에 찬성하고 있던 민주당은 남부를 지반으로 하는 정당이 된다. 그 구조는 1960년대까지 계속된다. 양대 정당이 지배하는 가운데 1891년 ‘인민당(Peoples Party)’이 결성된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 산업혁명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노동자 계급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시장경제의 발전은 농산물 가격의 심한 변동을 불렀다. 여기에 농기계의 도입으로 농민들은 많은 빚을 지고 곤경에 빠지며 농지를 잃었다. 산업화에 따른 노동수요 증가는 이민을 늘렸지만, 이민은 열악한 주택환경과 근로조건을 강요당했다. 빈부격차는 극한까지 확대됐다.

인민당은 그런 하층계급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 당이 주장한 것은 ‘반엘리트’ ‘반특권’이었다. 당원들은 자신들을 ‘포퓰리스트’라고 불렀다. 이른바 포퓰리즘의 탄생이다. 현재 미국의 상황과 흡사하다. 이 정당은 대선에서 22명의 선거인과 일반투표 8.5%의 득표를 얻으며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최종적으로 이 당은 민주당에 흡수된다. 남부를 기반으로 노예 제도를 찬성하던 민주당은 그렇게 노동자와 소수자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현대의 민주당으로 탈바꿈했다.

■ 루스벨트 진보당 20세기 들어 최고의 성적

20세기 들어 등장한 제3당은 ‘진보당(Progress Party)’이다. 공화당 대통령이자 반기업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후임자인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이 친기업 정책을 펴자 1912년 다시 대선에 도전한다.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태프트에 패배하자, 스스로 진보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했다. 이른바 루스벨트 개인 정당이며 별명은 ‘불-무스 당(Bull Moose Party)’이라고 불렸다. 이 같은 당명의 유래는 루스벨트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황소(bull)나 말코사슴(moose) 처럼 준비된 사람”이라고 한 데서 연유한다.

선거는 루스벨트와 태프트, 민주당 우드로 윌슨의 3파전으로 진행됐고 공화당 지지층이 루스벨트와 태프트로 갈라지면서 어부지리를 얻어 윌슨이 불과 41%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하지만 제3당인 진보당 루스벨트는 공화당 태프트의 득표율을 앞섰다. 제3당 후보자가 양당 후보자의 득표율을 앞지른 것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여기에 ‘사회당(Socialist Party)’ 후보자도 출마해 6%의 표를 얻었다.

■ 전후 실패로 점철된 제3당의 역사

전후에도 제3당은 존재했다. 앨라배마 주지사 조지 월리스가 연방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독립당(American Independence Party)’ 후보자로 대선에 출마했다. 득표율은 13.5%, 5개 주에서 승리해 56명의 선거인을 얻었다. 이것이 제3당의 대통령 후보가 선거인을 얻은 마지막 대선이다. 한편 부자 로스 페로는 1996년 감세를 호소하며 ‘개혁당(Reform Party)’을 창당했고 대선에 출마해 8.4%의 표를 얻었지만 선거인은 한 명도 얻지 못했다.

이후 1972년에 ‘자유당(Libertarian Party)’이 대통령 후보를 옹립했다. 하지만 획득 표수는 불과 3,674표였다. 이 당은 경제의 자유 방임, 자기 결정이라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당이다. 현재 자유당은 제3당이 돼 있다. 2020년 대선에서 같은 당 후보는 186만 표를 얻었다. 이 밖에 변호사 랠프 네이더가 이끄는 ‘녹색당(Green Party)’ 등 7개당이 대선후보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제3당’이라고 부를 만한 지지기반을 갖지는 못했다. 전쟁 전까지 미국 정치에서 제3당이 한 역할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후가 되자 그 존재는 희미해져 갔다. 지금도 제3당은 존재하지만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 타협 여지 없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

현재의 미국 정치에는 ‘중용’은 기대할 수 없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세계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는 전 정권의 부정에서 시작된다. 4년마다 무혈 쿠데타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정책의 계속성은 기대할 수 없다. 국내정책뿐 아니라 외교정책도 정권교체로 완전히 바뀌게 된다.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두 정당이 의회에서 대치하고 있어 법안조차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미국 정치의 실정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으며 ‘제로 섬’의 정치 투쟁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농담이 아니라 민주당 성향의 젊은 층 상당수는 공화당 성향의 이성과는 데이트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퓨 리서치의 조사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사회의 분열은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정당 간의 대립은 사회분열을 재촉하고 있다. 1950, 60년대에는 민주당 의원과 공화당 의원이 주말에 함께 골프를 치러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의사당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다.

한때는 민주당도 공화당도 당내 다양성이 있었다. 그러나 차츰 이념에 치우친 정당으로 변해갔다. 특히 공화당의 변화는 컸다. 보수주의자들이 공화당을 점령하고 1964년 대선에서 보수주의자인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것을 계기로 온건파를 축출해 나간다. 에반젤리카르(기독교 원리주의자)와 손을 잡음으로써, 보수적인 사회 윤리를 강조하게 되면서 한층 더 당의 경직화가 진행됐다.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 밑에서 반트럼프파의 당내에서 축출이 행해져 공화당은 ‘컬트당’으로 변질됐다. 공화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의 견책, 지위 박탈, 경선 대항마를 내세워 제거하려 했다. 민주당도 클린턴 행정부에서 중도우파로 돌아섰지만 급진적 진보주의자가 득세했다. 두 당의 거리는 더 이상 메울 수 없는 상황이다.

■ 양대 정당제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죽인다

2대 존 애덤스 대통령은 공화국을 2개의 큰 당으로 분할하는 것은 큰 정치적 악으로 두려워해야 한다며 양당제에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건국의 아버지’들의 두려움이 미국의 현실이 되고 있다.

씽크탱크 ‘뉴 아메리카’의 선임연구원인 리 드러트먼은 “현재 우리는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정당이 국가에 대한 다른 비전 아래 조직되는 시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 오어 나싱의 초당적 정치가 민주적 안정과 상호 인내와 관용이라는 민주주의 규범을 파괴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는 죽은 것”이라고 양당제의 폐해를 밝히고 있다(The two-party system is killing our democracy Vox20년 1월 23일). 더욱이 민주주의는 패자가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가 패자에게 이의를 제기하며 비판의 자유를 주고 있다. 현재의 양당제 아래서는 그것을 기대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는 2대 정당제가 아닌 ‘복수 정당제(multiparty system)’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주는 것이 더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더 나은 정치적 시스템이라는 주장이다. 더구나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간접선거로 선출되는 제도도 같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득표율이 높은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제도는 민주주의의 정당성이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미국 국민이 제3당에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양대 정당제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의 선거 제도에서는 힘이 있는 제3당이 탄생하는 것은 어렵다. 또 민의가 반영되지 않은 정치는 유권자의 이반과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민주주의와 효율성은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소수 의견을 버리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원래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것이다. 독재정권이 효율적 측면에서 말하면 가장 효율적인 정치제도다. 그것은 다양한 민의를 반영한 제도라고 할 수 없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