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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베트남의 히딩크' 박항서 감독, '지도자의 길'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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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베트남의 히딩크' 박항서 감독, '지도자의 길'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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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디제이매니지먼트
'베트남의 히딩크'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한국조폐공사의 기념메달 주인공이 됐다.

조폐공사는 각 분야에서 국위를 선양한 인물을 대상으로 기념메달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존 인물 중 조폐공사 기념메달 주인공으로는 '가왕(歌王)' 조용필, 'K-팝 스타' 엑소(EXO), '피겨여왕' 김연아 등이 있다.
박항서 감독이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가 어느 정도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글로벌이코노믹은 조폐공사 기념메달 공개 기념행사 후 베트남 대표팀으로 복귀한 박항서 감독과 비대면(서면) 인터뷰를 갖고 조폐공사 기념메달 주인공이 된 소감과 함께 베트남 축구 신화를 일군 지도자로서 성취와 앞으로 계획, 한국-베트남 간 민간 외교사절 역할의 자부심 등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 대표팀 선수에게 정확한 슈팅을 직접 시연해 보이고 있다. 사진=디제이매니지먼트이미지 확대보기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 대표팀 선수에게 정확한 슈팅을 직접 시연해 보이고 있다. 사진=디제이매니지먼트


이달 초 한국조폐공사가 대한민국 국가브랜드를 선양한 업적을 기려 '박항서 감독 기념 메달'을 제작했는데 주인공이 되신 소감은.


“국내 축구계 인물 처음으로 기념메달 주인공이 돼 큰 영광이다.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많은 분들의 조력에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 다만, 이번 기념메달의 의미는 제 개인의 성취를 기념하기보다는 한국-베트남 간 우호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향이 되길 희망한다.

지난 2017년 베트남 축구대표 감독 부임 뒤 약 3년 동안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국과 베트남이 화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과정 속에서 많은 분들이 저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상징으로 봐 주셨기에 이번 기념메달은 그 역할을 더 열심히 수행해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고,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2017년 한국 내셔널리그(현 K3) 창원시청 축구단 감독생활을 하던 중에 디제이매니지먼트 이동준 대표와 소통을 하는 것을 계기로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 과정이 시작됐다.

당시 국제대회 성적 부진으로 코너에 몰려 있던 베트남축구협회가 이동준 대표에게 '한국인 감독 추천'을 의뢰했고, 이 대표는 저의 지도자 경력과 성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베트남 축구협회에 추천했고, 베트남축구협회가 수용하면서 대표팀 감독에 부임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기억나는 게 있다면 추천부터 부임에 이르는 모든 과정들이 '단기간 내에 진행됐다'는 점이다. 처음 베트남축구협회가 저에게 관심이 있다는 전화를 받은 지 약 열흘 만에 베트남축구협회 수뇌부가 직접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면접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길게 진행됐고, 모든 조율이 하루 만에 이뤄진 셈이었다.

감독 계약 완료 뒤 이영진 수석코치와 처음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비행기 안에서 했던 대화 내용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한국에서는 저와 같은 세대의 지도자들은 하나 둘씩 은퇴하기 시작해 사실상 한국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은퇴를 하거나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베트남행 비행기 안에서 이영진 코치와 함께 "우리 한국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성실함이고, 우리가 처음 고생하더라도 현지에서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국인 지도자의 인식을 좋게 심어 놓을 수 있다.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우리 후배들의 길을 막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며 서로 다짐을 했다.

이후 운 좋게 성공 경험을 했지만 이같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이코치와 다짐했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현지 인기를 반영하듯 베트남 어린이팬들도 박 감독에게 사인을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디제이매니지먼트이미지 확대보기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현지 인기를 반영하듯 베트남 어린이팬들도 박 감독에게 사인을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디제이매니지먼트

베트남에서 높은 인기를 실감한 사례를 들려 주신다면.


“저는 항상 '인기는 연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베트남 국민들의 응원과 사랑에 항상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국가대표팀 감독은 필연적으로 성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인기에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저 같은 경우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에 더더욱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베트남 축구팬들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답례라는 게 제가 베트남 언어가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사진 촬영이나 사인을 해 드리는 정도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어서 최대한 요청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성의껏 감사를 표시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인기와 관련된 기억으로 굳이 소개한다면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에서 치러진 아시아축구연맹 23세 이하(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거둔 뒤 베트남으로 돌아와 카퍼레이드 환영을 받은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디어에도 많이 알려졌지만 베트남 국민들이 그동안 얼마나 축구 승전보에 목말라 했는지를 피부로 체험한 순간이었다.

당시 수많은 군중들이 대표팀 차량을 에워싸고 격려해 주면서 옥수수나 간식거리를 선수들에게 던져주는 등 한국의 '정(情) 문화'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박 감독님의 승리 신화 이후 베트남에서 변화된 한국의 이미지를 체감하시는지.


“몇몇 대회 우승과 좋은 성적을 낼 때마다 한국 교민이나 여행객들이 베트남 현지 식당이나 여행지에서 베트남 국민들로부터 서비스를 받거나 호의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전해들었다.

그럴 때마다 한국과 베트남 교류에 있어 긍정의 영향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축구라는 매개가 사회·경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관계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기쁘게 생각한다.

다만, 승리의 스포트라이트를 항상 저 혼자만 받는 것 같아 늘 함께 고생한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앞으로도 양국간 민간외교 발전에 제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언제든지 흔쾌히 동참할 것이다.”

벌써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생활도 4년째 접어드는데 현지 음식·문화차이 등 실생활에서 애로사항은 없는지.

“베트남 현지 생활에서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현재 베트남축구협회가 위치해 있는 미딩(My Dinh)이라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근방에 한인타운이 있어 음식과 생필품 구매 같은 사소한 일상생활을 해결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

음식을 크게 가리는 편이 아니다보니 베트남 음식도 곧잘 즐겨먹는다. 업무가 바빠 바깥 식당을 가지 못할 땐 주로 베트남축구협회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편이다.

특히, 베트남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교민들과 현지 관계자들이 세심하게 챙겨주셔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대표선수들에게 '아버지' 같은 소통의 훈련으로 선수팀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있다. 사진은 박 감독이 베트남 선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하고 있는 모습. 사진=디제이매니지먼트이미지 확대보기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대표선수들에게 '아버지' 같은 소통의 훈련으로 선수팀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있다. 사진은 박 감독이 베트남 선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하고 있는 모습. 사진=디제이매니지먼트


한국과 베트남 간 축구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감독 입장에서 평가해 주신다면.


“우선 축구문화를 비교한다면 베트남에는 축구 관련 기자들이 굉장히 많다. 베트남에도 온라인 언론사가 상당히 많고, 스포츠 기사를 많이 비중있게 다루는데 다른 종목에 비해 축구의 인기가 월등히 높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축구 기사와 관련 인터뷰에 현지인의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정도이다.

그러나, 여론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늘 말이나 행동에 신경을 쓰고 있다.

베트남의 축구팬 문화도 한국 못지 않게 상당히 열정적이다. 프로팀 서포터즈의 조직이 잘 돼 있는 편이고, 국가대표팀 경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방불케 할 정도로 팬들의 응원이 굉장히 열광적이고 인상적이다.

베트남 축구 정책은 기본적으로 국가대표팀의 업무를 책임지고 있어 다른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굳이 베트남만의 특별한 정책으로 소개한다면 국가대표 소집기간 중 차출된 일부 로컬 코치들은 각자 소속 프로축구팀의 지도자라는 지위를 부여받는다는 점 정도이다.

소집기간 동안 대표선수들을 지도하고, 소집 해제 뒤에는 다시 소속팀으로 복귀해 자기팀 선수들을 지도하는 특별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올해 계획과 앞으로 장기 계획을 알고 싶으며, 한국축구 발전을 위한 조언도 부탁드린다


“올해 가장 가까운 일정은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 2차 예선이 있다. 베트남 축구팀은 현재 3승 2무로 조1위를 유지 중이며,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최종 예선에 진출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다만, 코로나19 때문에 오는 3월로 예정된 말레이시아 원정 경기부터 남은 조별 예선 경기 일정이 변경됐다. 그래서 6월 중에 한 국가에서 잔여 경기를 한 번에 치르는 일정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올해 하반기인 11월 동남아시안(SEA)게임과 이어 12월 AFF 스즈키컵(스즈키컵)이라는 큰 대회가 예정돼 있다.

이 두 대회는 베트남 대표팀이 모두 지난 대회 우승을 차지한데다, 특히 SEA게임은 베트남에서 열리기 때문에 베트남 국민과 축구팬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하루 아침에 경질될 수 있는 게 감독의 위치다. 장기 계획을 짜기보다는 항상 눈 앞의 목표를 위해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금까지 제가 취해 왔던 전략이다.

개인 거취는 회사(디제이매니지먼트)에 일임하고 있는 만큼 '현재에 집중하자'는 게 좌우명인 만큼 특별히 장기계획이라고 소개할 부분은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가 한국 축구계를 떠난 지도 벌써 4년이 됐다. 그 사이 한국축구의 트렌드와 축구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현장에 있지 않은 사람이 조언을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2002 월드컵 4강 주역 세대들이 K리그 내 감독과 축구협회에서 일을 시작하고 있다. 다양한 현장 경험과 외국에서 공부해 전문지식도 풍부한 젊은 인재들이기에 국민들과 축구팬들이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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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디제이매니지먼트


◇ 박항서 감독 Who's Who


박항서 감독은 1959년 1월 4일 경남 산청 출생으로, 1981~1988년 제일은행과 럭키금성 황소(현 FC서울) 등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1981년 한국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됐다.

국내 지도자 생활 후, 2017년부터 베트남 국가대표팀(A대표팀) 감독과 U23국가대표팀 감독을 겸직하고 있으며, 베트남 대표팀을 맡아 ▲2018년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8년 아시안게임 축구 4위 ▲2018년 AFF 스즈키컵 우승 ▲2019년 킹스컵 준우승 ▲2019년 아시안컵 8강 ▲2019년 동아시아게임(SEA Game) 우승 등의 성과를 거뒀다.

박항서 감독은 수석코치로 참여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에서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고, 2020년 베트남 정부로부터 외국인 최초로 2급 노동훈장을 받았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