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오스카 작품상 후보 ‘미나리’ ‘노마드 랜드’ 한국-중국계 감독 모국 반응 ‘극과 극’ 이유는?

공유
0

오스카 작품상 후보 ‘미나리’ ‘노마드 랜드’ 한국-중국계 감독 모국 반응 ‘극과 극’ 이유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이미지 확대보기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장기화 영향으로 올해 아카데미상 레이스는 예년과 달리 수수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가운데 확고한 수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노마드 랜드’다. 베네치아, 토론토라는 2개의 중요한 영화제에서 최고상에 빛나고 그 후도 많은 비평가상 등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얼마 전 골든 글로브상에서도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받으며, 아카데미상 수상의 길을 단숨에 달리고 있는 인상이다.

만약 아카데미상에서 ‘노마드 랜드’가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에 받게 된다면 디즈니의 배급 작품으로서 첫 쾌거 달성이 된다. ‘노마드 랜드’는 서치라이트 픽처스가 제작했다. 이 회사는 2018년 작품상을 받은 ‘셰이프 오브 워터’ 등 매년 상 레이스에 관련되는 수작을 내보내고 있지만, 2019년의 디즈니에 의한 폭스 인수에 의해 써치라이트도 디즈니 산하에 들어갔다. 요컨대 ‘노마드 랜드’는 디즈니가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아카데미상의 오랜 역사에서 작품상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디즈니에게는 비원 달성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 ‘노마드 랜드’를 쫓는 작품은 여럿이지만 ‘미나리’도 그중 하나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노마드 랜드’의 클로에 자오 감독이 중국 출신이고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 즉 올해 아카데미상은 다른 유망작도 있지만, 중국과 한국계의 대결이라는 구도도 떠오르고 있다.

‘미나리’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가족들의 이야기로 감독 자신의 정체성도 짙게 전해주는 작품이지만 ‘노마드 랜드’는 미국을 떠돌며 생활하는 이동노동자의 이야기로 중국계라는 것은 작품과 무관하다. 어디까지나 감독의 뿌리를 비교한 것이지만 인종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상 레이스임에는 분명하다. 덧붙여 말하면, 클로에 자오 감독은 마블의 ‘이터널즈’ 정이삭 감독은 ‘너의 이름은’의 할리우드 실사 리메이크라는 차기작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당연히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영화 팬들은 자국의 뿌리를 갖는 감독이 아카데미 상에서 영광을 차지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만약 ‘미나리’가 작품상을 받는다면 ‘기생충’에 이어 또다시 한국은 열광할 것이다. 일본으로 치환하면, 일본인, 혹은 일본에 뿌리를 둔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어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받게 된다면 역시 국민적 관심사가 될 것이다.

골든글러브 작품상을 차지한 ‘노마드 랜드’도 중국에선 2월 국립영화예술동맹을 통해 4월 23일부터 국내 극장 개봉을 승인받았다. 클로에 자오는 골든글러브에서 아시아계 여성 최초로 감독상을 받으면서 중국에서도 큰 화제가 돼 개봉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져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화제가 되면서 클로에 자오 감독의 과거 발언이 중국의 국수주의자, 애국주의자들 사이에 회자 되고 있다고 ‘버라이어티’ ‘뉴욕타임스’ 등이 전했다.

‘노마드 랜드’의 클로에 자오 감독.이미지 확대보기
‘노마드 랜드’의 클로에 자오 감독.

클로에 자오 감독은 베이징 태생으로 런던의 기숙 학교를 거쳐 로스앤젤레스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영화 제작을 공부했다. 아버지는 국영 철강회사의 전직 총수 중 한 명으로 그가 재혼한 상대가 중국의 인기 여배우로 중국에서는 그녀의 의붓딸로도 알려져 있으며 정식 국적도 중국 그대로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미국 영화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클로에 자오는 “미국 중심의 작품에 영감이 솟는 것은 내가 자란 곳에는 곳곳에 거짓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인터뷰의 해당 부분은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호주 사이트에서 “중국은 내 나라가 아니다”고 말한 대목이 발췌돼 떠돌면서 중국 애국주의자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이후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화 사이트 ‘Douban’에서 ‘노마드 랜드’의 새로운 포스터 이미지가 삭제되기도 했다. (현재 원본 사진은 남아 있지만, 중국에서의 공개 날짜 표기는 삭제 된 상태) 그리고 최근 새로 올린 포스터에는 ‘중국 감독의 작품!’이라고 큼직하게 표기한 것으로, 골든 글러브 수상 직후에 만들어진 것 같다.

또 ‘노마드 랜드’ 관련 기사 조회를 해본 결과 ‘관리규칙 위반’ 의 메시지가 뜨며 당국의 검열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다. 중국의 트위터인 웨이보에서도 ‘#Nomadland’ ‘# NomadlandReleaseDate (노마드 랜드 게시 날짜) 등으로 검색하면 ’표시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자가 뜬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4월 23일 중국에서의 개봉이 중지된 것은 아닌 것 같고, 원래 ’노마드 랜드‘는 극장이 한정적이어서 중국에서는 일반적인 대 히트를 목표로 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 다시 클로에 자오 감독에 대한 반응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고, 그의 차기작 ’이터널스‘는 세계시장을 겨냥한 초대작으로 중국에서도 흥행 돌풍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출신의 감독이 마블의 대작을 찍는다고 하는 포인트는 확실히 ‘중국 감독’ 연출작으로 중국에서 최대의 흥행이 될 가능성도 크지만, 반대로 사소한 문제가 상처를 크게 덧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노마드 랜드’가 예습시킨 것 같기도 하다.

‘버라이어티’가 전하는 웨이보의 영화 팬 코멘트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그녀를 중국인으로 보지 않고, 미국에서는 그녀를 미국인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노마드 랜드’의 주인공 같은 유랑민일 뿐이다”라며 빈정거리고 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는, 베이징 외국어 대학 전직 교수의 말을 인용해 “노마드 랜드는 미국 저소득층의 삶의 어려움을 그리고 있으며, 이는 우리 중국의 사회주의 방식이 옳다고 볼 수 있다. 클로에 자오는 중국의 자랑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반응은 모국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영화감독에 대해 솔직하게 칭찬하고 싶은 마음과 중국의 자존심을 손상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거하는 것으로 매우 흥미롭다. 아카데미상의 노미네이트 발표는 3월 15일(현지시각), 수상식은 한국시각 4월 26일에 열린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