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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 생산장비 '장악'...한·대만 따라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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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 생산장비 '장악'...한·대만 따라잡는다

경기도 기흥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사진=삼성전자이미지 확대보기
경기도 기흥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사진=삼성전자
전세계 반도체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국발 반도체 패권 전쟁이 시작될 조짐이라서다.

폭증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조업 중단까지 발생하게 할 정도로 심각한 전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현상의 여파로 어느 나라보다 큰 피해를 입은 미국이 반도체 수급망의 손질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 등 일부 아시아 업체들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을 전면적으로 재편하지 않는 한 미국 제조업이 아시아 업체들에 끌려다니는 일이 앞으로도 되풀이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서 미국 제조업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퍼진 결과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현재 아시아에 쏠려 있는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으로 옮기기 위한 노력이, 소수 아시아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문제를 해소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와 아시아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할 필요도 있지만 반도체 시장까지 중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나서 중국과 벌이고 있는 첨단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한때 강자였던 미국, 아시아 업체에 주도권 내줘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아시아업체들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반도체가 전세계에 공급되는 반도체 물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 미국도 한때 반도체 시장을 주도한 적이 있으나 주도권을 아시아 업체에 빼앗긴지 오래다.

CNBC에 따르면 과거 반도체 강국이었던 미국이 다시 반도체 패권 확보에 나선 결정적인 이유는 가깝게는 전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자동차업계를 비롯해 관련 업계가 현재진행형으로 타격을 입고 있는 점이다.

반도체는 점차 전자제품화 되고 있는 자동차에서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전자제품 관련 생산 분야에서 필수적인 부품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좀더 멀게 보면 중국 때문이다. 중국과 벌여왔고 지금도 벌이고 있고 앞으로도 기약없이 벌여야 하는 패권 경쟁 때문이다. 미국이 나서지 않으면 반도체 시장마저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미국에 깔려 있다는 얘기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미국 정부의 정책에 관해 도드라진 특징을 꼽으라면 중국을 매우 중시한다는 것”이라면서 “전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사태를 계기로, 중국과 진행 중인 첨단기술 패권 경쟁의 여파로 반도체 시장의 패권을 되찾는 일이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패권 잃은 이유는 사업모델 변화


미국이 애초에 반도체 시장에서 패권을 아시아 업체에 빼앗긴 배경은 반도체 사업모델의 변화에 있다.

사업모델의 변화란 지난 15년 사이 전세계 반도체 시장이 설계전문 업체(팹리스 기업)과 설계 업체로부터 위탁생산을 맡는 생산전문 업체(파운드리 기업)로 분화되는 과정을 겪었다는 뜻이다.

미국에는 인텔처럼 설계에서 생산설비인 팹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공정을 모두 갖춘 종합반도체기업(IDM)이 있다. 인텔은 자체적으로 설계한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생산까지 한다는 뜻이지만 인텔이 생산하는 물량이 전세계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반면, TSMC와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전문기업으로 방향을 정했고 막대한 투자를 통해 기술력을 강화한 결과 전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TSMC나 삼성전자가 실제로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주역이기 때문에 애플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전자제품 업체들이 이 두 기업에 의지하지 않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가 55%, 삼성전자가 18% 수준이다.

◇미국 반도체업체 인텔의 기술력


BoA가 최근 펴낸 반도체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반도체를 생산한 기업은 지난 2001년 30개에 달했으나 현재는 TSMC, 삼성전자, 인텔 등 3개 업체로 확 줄어든 상태.

미국 업체가 이 공급망에 들어있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는 다행일 수 있으나 문제는 기술력.

스위스 미라바우드증권의 닐 캠플링 IT 담당 선임 애널리스트는 “대만과 한국은 고숙련 생산인력을 갖추고 있고 최근 20년간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데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까지 더해져 팹(웨이퍼 생산)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가 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인텔의 기술력은 아직 TSMC와 삼성전자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믿는 구석은 미국이 경쟁력을 지닌 반도체 생산설비 분야다. TSMC나 삼성전자 같은 파운드리 선도업체들도 '세미캡‘으로 불리는 반도체 자본장비를 조달하지 않고는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없어서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반도체 자본장비 업체는 주로 미국, 유럽, 일본에 몰려 있다. BoA에 따르면 전세계 반도체 자본장비의 70%를 5개 업체가 공급하고 있고 이들 가운데 3곳이 미국 업체이고 나머지는 2곳은 유럽 업체와 일본 업체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