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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정부의 반도체 ‘뒷북 대책’이 미덥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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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정부의 반도체 ‘뒷북 대책’이 미덥지 않은 이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및 공급망 복원 최고경영자 서밋’ 화상회의에 참석해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및 공급망 복원 최고경영자 서밋’ 화상회의에 참석해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반도체가 국가 안보 사안으로 떠오르자 위기를 의식한 우리 정부도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뒷북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가운데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 효용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이후 반도체는 단순한 첨단 산업을 넘어 각국 제조업 생존이 걸린 핵심 전략물자로 격상된 가운데 주요국들 사이에서는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안보와 첨단 산업 우위 확보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항전이 전개되는 중이다.

정부는 지난 15일 ‘K-반도체 벨트 전략’을 통해 학사급, 석·박사급, 실무인력 양성에 팔을 걷어붙이겠다고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향후 2년간 총 4800여 명의 반도체 인력을 배출한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또 세제지원의 경우 정부는 미국 수준(40%) 이상으로 세금을 깎아주는 파격 인센티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이미 가능한 세액공제율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세액공제란 기업의 투자자금 관련 세금 중 일정 금액을 감해 주는 것을 말한다. 기업으로서는 세금으로 내야 할 자금을 그만큼 되돌려 받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미국 연방의회는 반도체 산업 지원에 초당적 협력을 시작했다. 의회는 올 초 ‘칩스 포 아메리카(CHIPS for America Act·반도체생산촉진법)’를 통과시켰다. 연방하원에서 발의된 이 법은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장려하기 위한 100억 달러(약 11조2000억 원)의 연방 보조금과 최대 40%의 세액공제를 비롯한 각종 인센티브를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당장 올해부터 미국 내 지어질 반도체 공장들에 혜택을 줄 것이 예상된다.

미국 반도체 업계는 이 같은 반도체 산업 지원책이 천문학적 규모의 경제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총 200억 달러의 연방정부 지원(보조금·세액공제 등)이 10년간 시행되면 미국 내 첨단 반도체 공장이 14곳 신설되며, 반도체 분야에 민간 투자가 1740억 달러 유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지원 규모가 500억 달러로 늘면 반도체 공장 신설은 19개, 민간 투자 규모는 2790억 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공정 기술 보유기업과 사업 기간 15년 이상 기업에 대해 최대 10년간 소득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1500억 유로(약 200조 원)를 투입해 오는 2030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디지털 전환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렇다면 국내 반도체 업계 상황은 어떤가? 업계는 연초부터 지속적으로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정부에 건의했지만 “어렵다”라는 답변만 들었다. 한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관련 법이 이미 통과된 사실을 얘기해도 정부는 예산이 없다거나,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을 들먹이며 부정적 태도로 보였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나머지 반도체 수탁 생산(파운드리),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은 투자 여력도 없고 인력도 턱없이 부족해 고사 직전 상황”이라고 탄식했다.

반도체 실무인력 양성전략도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몇 명 배출’에 집착하지 말고 교육과 현장 간 괴리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특히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이론뿐만 아니라 장비 ‘노하우’를 익히는 설계 능력이 중요한 만큼 경험 많은 교수진과 수백억 원에 달하는 장비 지원 또한 필요한 데 이를 정부가 지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장비가 없는 학교에서 배운 이론만으론 실무가 연계되지 않아 외부에서 단기교육을 받아야 하는 실정에서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만드는 데도 시간이 많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뒤늦은 호들갑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완성차 기업 경영진과 만나 ‘미국 반도체 굴기’를 강조하며 현지 투자를 종용하면서 비롯됐다.문재인 대통령도 15일 확대 경제장관회의에서 “반도체 산업은 우리 경제의 현재와 미래가 걸린 핵심 국가전략 산업이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우리가 계속 주도해 나가야 한다”며 특별법 제정 의지를 내비쳤다.
정부가 전향적 자세로 특별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지만, 성공적으로 완수될지는 미지수다. 문 정부는 이미 임기 말에 접어들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해 내년 5월 9일 임기가 끝난다. 이미 임기 말에 접어든 정부는 특별법을 추진할 동력과 시간이 부족하다. 특별법 제정에 대한 여야 정치권 시각차도 관건이다. 정부 관계자는 “당초 이런 상황을 고려해 법 제정보다 시행령 등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하위 법령을 통한 ‘패스트트랙’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자동차와 정유‧화학, 조선, 해운, 철강 같은 다른 주력 산업보다 규모도 크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정보기술(IT) 호황을 맞이한 반도체 산업에 굳이 정부 지원을 집중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이 상대적으로 잘 나가는 것은 맞지만, 글로벌 기술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업종"이라며 "미국과 중국, EU가 온 역량을 다해 반도체 산업 키우기에 나선 상황에서 정부 지원의 형평성을 논할 때가 아니다”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반도체 산업이 미‧중 양국이 만들어 내는 국제 정세의 격랑 속에 휩쓸리고 있다. 이 변화는 앞으로 상당 기간 세계의 흐름을 좌우할 중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올 수도 있다. 단지 미국 현지에 반도체 라인 건설 투자를 할 것이냐의 문제를 넘어서는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정부는 깨닫길 바란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