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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조금씩 제도권으로 침투하고 있는 가상화폐…투자 수단 인정과 규제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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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분석] 조금씩 제도권으로 침투하고 있는 가상화폐…투자 수단 인정과 규제의 갈림길

우리 정부가 가상화폐 투자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중국은 20일부터 개막되는 아시아판 다보스포럼 ‘보아오포럼’ 사전 컨퍼런스에서 이를 투자자산으로 공식 인정하고 나섰다.이미지 확대보기
우리 정부가 가상화폐 투자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중국은 20일부터 개막되는 아시아판 다보스포럼 ‘보아오포럼’ 사전 컨퍼런스에서 이를 투자자산으로 공식 인정하고 나섰다.

중국 정부가 20일부터 개막되는 아시아판 다보스포럼 ‘보아오포럼’ 사전 컨퍼런스에서 가상자산을 투자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최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가상화폐는 투기 수단으로 결제 수단 지위에는 아직 오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과 배치되는 것으로 미‧중 간 패권경쟁에서 기존 시장경제에 얽매지 않는 가상자산 분야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로 읽혀진다.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코인 수×가격)이 2조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지만, 당국 규제는 언제나 가장 큰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비트코인 가격은 18일 5만9000달러대에서 한 시간도 안 돼 5만1000달러대로 14% 폭락했다. 미국 재무부가 금융권을 대상으로 암호화폐를 이용한 돈세탁을 조사할 것이라는 미확인 소문이 SNS로 번진 여파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코인을 어떻게 다룰지를 놓고 갈팡질팡하기는 해외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업계는 비트코인이 “가치저장 기능이 있는 디지털 금(金)”이라고 주장하고, 정부와 중앙은행은 “내재가치가 없는 투기적 자산”으로 판단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다만 미국은 은행이 ‘스테이블 코인(가격 변동성을 줄인 코인)’으로 지급 결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허용했고, 일본은 암호화폐거래소의 이용자 보호 의무를 법에 담는 등 일부 전향적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최근 아슬아슬한 수위를 넘나드는 암호화폐(가상화폐) 투자 광풍에 대응 ‘특별단속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불법 거래 연루가 의심되는 이상 거래를 잡아내고, 암호화폐거래소의 이용약관이 공정한지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19일 국내 암호화폐 거래대금은 20조 원을 넘어서 유가증권시장을 또다시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굳이 특별단속이란 이름을 붙일 것도 없는 ‘맹탕’이란 반응이다. ‘불법 행위는 처벌한다’는 원론적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 없이 24시간 거래되는 암호화폐 시장의 특성상 자발적으로 고위험을 감수하며 뛰어드는 개인들을 정부가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현재 암호화폐와 관련한 법 규정은 지난달 25일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유일하다. 특금법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지침에 따라 암호화폐거래소에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지운 수준이다.

암호화폐거래소 모임인 한국블록체인협회는 특금법에 이어 ‘업권 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암호화폐의 법적 개념을 명확히 하고, 소비자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보호장치를 법에 담아 제대로 규제해 달라는 것이다. 협회는 지난 9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공동으로 암호 화폐 업권법의 구체적 방향을 제안하는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에 참석한 금융위원회 관계자가 “업권 법을 만들 계획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맥 빠지게 끝났다.

정부는 이런 조치가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한국뿐 아니라 주요국 정부의 공통된 딜레마다. 코인에 대한 정부의 어정쩡한 입장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암호화폐 거래를 양성화하면 투기 열풍이 더 거세지고, 강하게 억누르면 정치적 후폭풍을 감수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암호화폐 투자자의 60%는 20~30대로, 이들은 코인 투자를 ‘계층 이동의 마지막 사다리’로 여기며 절실하게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고민도 이해는 된다. 암호화폐 거래를 어떻게 감독하고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가 아직 없다 보니 우리가 먼저 방침을 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가상자산 거래를 직접 감독·규제하겠다고 방침을 정하면 곧 가상자산 시장을 제도권으로 정식으로 인정하겠다는 신호가 될 수 있으며 투기거래가 급속히 늘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우려다.

정부가 이런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암호화폐 투자에 뛰어들며 계좌와 예탁금은 급증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실명계좌는 250만 개를 넘어섰고 투자자 예탁금만 4조6000억 원에 이른다. 게다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들 암호화폐로 돈을 벌고 있는데 나만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인 이른바 포모(FOMOㆍ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의 확산도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화폐는 아니지만, 투자 수단으로 인정하고 나섰다. 반면 미국은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불확실성이 단시간에 해소되기 힘들다며 각국 정부의 엄중한 단속을 예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시장은 곳곳에 ‘빈틈’이 노출되고 있다. 암호화폐 상장은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진행한다. 미국에선 지난해의 경우 230개의 암호화폐가 새로 상장됐고 97개가 상장 폐지됐다. 일본은 금융당국의 ‘화이트 리스트’ 코인심사를 통과하면, 상장이 가능하다.

조금씩 제도권 진입이 가시화되고 있는 암호화폐 투자를 마냔 금기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투자자가 늘어난 만큼 부분적 양성화를 통해 제도권 안에서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정부가 향후 부분적인 제도화와 규제 강화 중 어떤 포지션을 취할지 주목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