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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책 수행하느라 ‘빚더미’ 덫 걸린 공기업 자율경영 '머나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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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책 수행하느라 ‘빚더미’ 덫 걸린 공기업 자율경영 '머나먼 길'

KDI "비금융 공기업 부채 GDP 23.5%로 OECD 2위"...기재부 "채무분담 능력 있어 단순비교 곤란" 반박
자원개발·에너지전환·공공요금 억제 등 공익 역할 확대에 CEO 선임·경영평가 '정부 개입' 빌미 작용
학계 "공기업도 기업...일자리 창출 등 정부 노선 외 경영진 자율경영, 효율 경영 중시돼야"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국판뉴딜 2차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국판뉴딜 2차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 공기업들이 부채를 많이 지고 있음에도 국민 세금 지원이라는 뒷배경 때문에 기업 신용도를 국가신용도와 같은 최상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 공기업들이 정부 정책을 수행하느라 부채가 늘어나고, 그에 따른 정부 지원이 '관치 개입' 의존도를 높인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공기업 자율경영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KDI "우리나라 공기업 부채, 사실상 OECD 1위"...기재부 "단순비교 곤란" 반박


2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와 공기업계에 따르면, KDI는 최근 '공기업 재무건전성 강화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공개하고, 지난 2017년 기준 우리나라 비(非)금융 공기업 부채 규모가 국내총샌산(GDP)의 23.5%를 차지해 금융자산이 많아 비교가 어려운 노르웨이를 제외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라고 발표했다.

OECD 회원국의 비금융 공기업 부채 평균이 12.8%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평균치의 2배 수준에 이른다. 2019년의 경우 우리나라의 일반정부 부채 대비 비금융 공기업 부채 비중은 48.8%로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기업의 신용도는 부채비중이나 재정건전성과 상관없이 우리나라 국가신용도와 같은 최상의 등급을 인정받고 있다고 KDI는 지적했다. 공기업이 파산할 것 같으면 정부가 미리 나서서 채권 원리금을 대신 지급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라는 것이 KDI의 설명이다.

실제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있는 한국광물자원공사가 이달 초 발행에 성공한 5억 달러(약 5500억 원) 규모의 해외 채권에 대해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각각 A1, A 등급을 부여했다

지난해 처음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간 한국석유공사가 이달 초 발행한 4억 달러(약 4400억 원) 규모의 해외 채권에 대해서도 무디스는 'Aaa2'의 신용등급을 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KDI의 발표에 기획재정부는 여러 조건이 다른 상황에서 단순 비교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우리나라는 에너지, 철도, 의료 등 국민생활에 밀접한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주요국 대비 보다 광범위한 영역을 공공기관이 담당하고 있어 GDP 대비 공기업 부채 비중이 높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공기업 공익 역할 막중...CEO 선임, 경영평가 등에 독립성, 자율성 높여야

문제는 이러한 공기업의 광범위한 역할과 부채 증가, 정부의 '암묵적 지급 보증'에 따른 높은 신용도가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공기업의 경영 자율성이 취약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광물자원공사나 석유공사의 재정악화는 경영진의 경영 실패 탓도 있겠지만, 이전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정책에 상당부분 기인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 들어선 이후에는 에너지전환, 탈석탄,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석탄발전 비중이 높은 발전5사의 경영실적이 4년째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6년 발전5사는 총 3조 22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에는 총 15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발전5사의 부채비율도 4년째 꾸준히 증가 추세다.

한국전력은 올해부터 전기요금에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정부는 도입 3개월만인 지난달 올해 2분기 전기요금에 연료비 인상분 반영을 유보하기로 해 지난해까지의 전기요금 인상 억제와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적으로 공기업의 자율경영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다고 보고 있다.

공기업 CEO 인선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독립기관이 아닌 기획재정부 소속이라는 점, 공기업 CEO에 내부 승진보다 관료 또는 여권 정치인 출신 인사가 앞도적으로 많이 선임된다는 점 등이 그 예로 지적된다.

공기업 CEO의 거취나 임직원 성과급에 큰 영향을 미쳐 '공기업의 수학능력시험'이라 불리는 공공기관 경영평가(경평)도 기재부가 평가항목이나 배점을 쉽게 변경할 수 있다.

일부 학계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예산관리 등 경영지표보다 일자리 창출 등 현 정부가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가 경영평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졌고, 공기업의 자율 경영보다 정부 정책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냐가 더 중시되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수년간 참여했던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부)는 "공기업도 엄연히 경영진의 자율 경영권이 보장돼야 하는 '기업'"이라며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공기업 CEO의 자율성과 혁신성을 보호하는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