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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총괄안무의 '감괘'…삶의 진리 찾아가는 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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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총괄안무의 '감괘'…삶의 진리 찾아가는 물의 미학

위기의 시대 격려의 춤(激勵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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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총괄안무의 '감괘'.
신축년 4월 16일(금) 여덟 시 17일(토) 다섯 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시무용단(단장, 예술감독 및 총괄안무 정혜진)의 정기공연, 전진희·한수문·김성훈 공동안무의 「감괘」(坎卦)가 공연되었다. 감(坎)은 물이다. 물은 과거와 연관된 ‘물의 정령’(김경애, 이해선)과 ‘새’(강대현)를 불러내고 원시적 신비를 창출한다. 괘(卦)는 처한 상황, 「감괘」는 물이 중심이 되는 여덟 개의 ‘괘’를 엉클어진 현상에 대한 방책으로 삼아 극복의 의지를 강표(强表)한다.

지난해 12월, S 씨어터에서 「감괘」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 「더 토핑」이 선보였다. 물과 함께한 움직임은 놀라운 미학적 성취를 이루어내었었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고 중극장 개념의 소극장에서 대극장으로 이동된 「감괘」는 볼살을 불려 물(水)로 상상할 수 있는 철학적 편린들을 무용으로 엮어내었다. 오랜만에 서울 중심부의 높고 너른 대극장에서 물의 정화의식, 인간이 퍼질러 놓은 죄의 사함을 간구하는 행위는 시대를 관통하는 제천의 통과의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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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총괄안무의 '감괘'.


다섯 주 원소 가운데 물은 마음먹기에 따라 작지만 크고, 다양한 용기에 담기기도 하고 바다를 포용하기도 하면서, 낭만적 친근감에서부터 공포감에 이르기까지의 스펙트럼을 두른다. 작품의 음악과 사운드는 정형이 없이 이미지와 움직임에 따라 만들어지는 즉흥성을 띤다. 작은 조각이 모여 조각보가 되듯 물의 정령과 떠난 여행은 수행으로 자유를 얻고 전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어쨌건 물 살풀이춤은 거대한 공감을 얻으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감괘」는 변화무쌍을 조절한다. 건(하늘) 곤(땅) 감(물) 리(불) 손(바람) 간(산) 태(연못) 진(우뢰)의 8괘 가운데 감(물)이 인간의 삶과 가장 닮아있다. 감(坎)은 프롤로그를 거쳐 1장 수풍정(水風井)-만물의 놀이, 2장 수택절(水澤節)-고통의 시작, 3장 수산건(水山蹇)-얼어붙은 그리움, 4장 수뢰둔(水雷屯)-내면의 응시, 5장 수천수(水天需)-만겁의 기다림, 6장 중수감(重水坎)-운명의 폭풍, 7장 수지비(水地比)-연민의 중력, 8장 수화기제(水火旣濟)-필연적 상생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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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기억속의 남자’(장동호, 신동엽)와 ‘살아남은 여자’(홍연지, 김하연)를 조형한다. 물에 관한 상상은 무한이며, 거듭된 물은 과하지 않으면 축복이고 넘치면 재앙이다. 인간의 탐욕이 저지른 죄, 자연에 대한 정복적 파괴에서 비롯된 현재의 우주적 재앙에 대한 경건한 반성의 씻어냄에 걸친 의식은 상처 같은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긴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잘 굴리면 평화가 오고, 수레바퀴 아래의 삶은 평온하다. 마음을 수양하면 빛의 수레는 나와 함께 한다.

물의 의미와 정신을 생각하는 미래의 진리 탐구의 모습에는 ‘꿈속의 남자’(조황경, 최태헌)와 ‘꿈속의 여자’(김지은, 오정윤)가 조우하면서 빛을 발한다. 무대 위 거대한 수조(水槽, 가로 18m, 세로 12m)에서 펼쳐지는 1막 8장의 옴니버스 스타일의 대형 창작무용극은 오십여 무용수의 완벽한 호흡, 역동적이고 세련된 군무는 수류(水流)처럼 상황이 험해도 마음의 평정으로 고난 극복의 의지를 보이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형식으로 보여준다.

총괄 안무가 정혜진은 2000년 「무애」로 서울무용제 대상과 안무상을 수상했고,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무용부문 ‘올해의 최우수예술가’로 선정된 바 있다. 그녀는 3인 안무가와 더불어 자연계와 인간계의 본질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기호로 팔괘(八卦), 「감괘」는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거듭 날갯짓하여 끝내 비상하는 어린 새를 바라보면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위기를 극복하는 인간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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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국제문화교류에 이바지해온 서울시무용단(1974년 창단)의 품격을 격상시킨 부문별 주인공들은 인간 본질 탐구의 연출가 오경택, 동서양 감성의 공감대를 조절해내는 작곡가 김철환, 섬세한 색(色) 배치와 조합으로 마술적 신비감을 창출하는 조명디자이너 신호, 움직임과 시각적 비주얼을 계산한 무대디자이너 오필영, 미니멀리즘과 단순함을 견지하며 심리적 연기 표출이 두드러지게 하는 방수용 의상까지 고려한 디자이너 이호준 등이다.

글쓴이에게도 「더 토핑」에서 「감괘」까지 느낌을 공유하는 글 작업에 이르기까지 5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감괘」는 그만큼 소중한 뜻이 담긴 작품이 되었고, 다시 보고 싶은 명작 반열에 올랐다. 서울시무용단은 ‘미래의 꿈과 희망을 지향하는 무용단으로서 국민에게 한발 다가서는 예술 활동을 펼쳐 나갈 것이며, 우리 문화 속에 뿌리를 둔 세계적인 무용단으로 거듭날 것이다. 「감괘」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타고난 재능과 기교가 모여 전 세계 초연인 독창적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은 세계적인 일이며 내놓고 자랑해도 좋을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