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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먹을거리, 그리고 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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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먹을거리, 그리고 빅뱅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쓰는 대상이 '나'인 글에는 일기, 자서전 등이 있고, 대상이 '세상'인 글에는 신문 기사, 사설 등이 있으며, 쓰는 대상이 '나'와 '세상'인 글에는 수필 등이 있다. 그러면 쓰는 대상이 '나'도 '세상'도 아닌 글에는 어떤 글이 있을까? 우주나 신, 철학에 대한 글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식품칼럼에 주로 싣는 글의 대상은 무얼까? 아마도 대부분 '세상'이거나 '나'와 '세상'일 것이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대상이 '나'도 아니고 '세상'도 아닌 식품칼럼 글을 쓸 수는 없을까? 한번 시도해보기로 하자.
우리는 매일 먹는다. 먹어야 산다.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는 우리처럼 엄연히 살아있는 생명체다. 우리는 먹기 위해 생명체를 죽인다. 생명이 생명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가 먹이사슬 상부에 있더라도 생명의 원리를 벗어날 순 없다.

우리도 죽고 호랑이도 죽는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고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우리든, 호랑이든, 미생물이든 다른 유기체의 먹이가 되든가, 아니면 무기물이 되어 식물의 먹이가 될 것이다.

생명체는 이렇게 돌고 돈다. 돌고 돌면서도 질량보존의 법칙과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지구라는 '닫힌계' 안에서 그러하고, 태양계 안에서든 은하계 안에서든 그러할 것이다. 생명도 과학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김도현 교수의 최근 저서 '신학, 과학을 만나다'에 따르면, 우주 처음의 질량이나 에너지는 우주의 현재 질량이나 에너지와 같고, 우주의 기본입자들은 빅뱅 이후에 새롭게 생기거나 사라진 것은 전혀 없다고 한다. 즉 나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전자, 양성자, 중성자들은 138억 년 전 빅뱅 직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빅뱅 초기에 만들어진 원자들이 나의 몸을 구성하고 있고, 현재 나의 몸을 구성하는 그 원자들은 나의 죽음 이후 나의 몸으로부터 분해되어 언젠가 또 다른 존재의 몸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의 몸의 나이는 우주의 나이와 같은 138억 년이고, 나의 몸의 에너지는 138억 년 전 우주 탄생 때 에너지의 일부라는 것이다.

나의 몸만 그러하겠는가? 먹고 먹히면서 공존하는 모든 생명체의 몸이 그러할 것이다. ‘일미우주(一米宇宙)’ 즉 쌀 한 톨에 우주가 들어있다고 하지 않던가? 이 표현은 비유이기도 하지만, 위의 이론에 따르면 사실이기도 하지 않은가? 빅뱅 초기에 만들어진 원자들이 쌀 한 톨을 구성하고 있고, 현재 쌀 한 톨을 구성하는 그 원자들은 쌀 한 톨의 죽음, 즉 밥이 된 이후 분해되어 언젠가 또 다른 존재의 몸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신학, 과학을 만나다'에서 저자는, 우리가 죽음 이후 구성과 형태가 바뀌는 시간성을 지닌 존재면서, 우주에 물질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영원성을 지닌 존재라고 말한다. 어디 우리만 그러하겠는가? 모든 생명체가 그러할 것이고, 모든 먹을거리가 그러할 것이다. 우주의 관점에서 나와 먹을거리 사이에 차이는 없다. 모두 한 사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빅뱅'이다. 이제 먹을거리가 얼마나 위대한 우주의 산물인지 마음에 담고 먹을거리를 귀하게 대해야겠다.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