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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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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며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일 년 중 햇빛이 가장 아름답다는 5월, 북한산을 찾았다. 며칠째 시계를 흐리게 하던 황사와 미세먼지도 비에 씻긴 쨍한 하늘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흰 구름이 점점이 떠 있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은 연인의 손길처럼 부드럽고 싱그러운 신록의 유혹이 산을 오르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화란춘성(花爛春城)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를 구경을 가세… 귓전을 간질이는 새 소리,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다 보면 '유산가(遊山歌)'가절로 흥얼거려진다.

가까이 있어 집을 나서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산이지만 바라만 보았을 뿐 정작 산을 오를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산행을 결심한 것은 코로나 선별검사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휴일에 아이들과 외식을 했는데 이틀이 지나 문자가 왔다. 우리가 다녀온 식당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여 선별검사를 받으라는 통보였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 된 지 오래지만, 코로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었던 게 사실인데 막상 선별검사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고 보니 마치 코로나에 감염이라도 된 것처럼 불안감이 엄습했다.
불안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특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오는 불안은 참아내기 힘들다. 장사진을 이룬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고 결과 자가격리 하며 통보를 기다리는 동안 좀처럼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하루가 지나 음성 통보를 받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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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주산인 북한산(해발 835.6m)은 서울과 고양·양주·의정부에 있는 수도권 서북부의 명산이다. 버스나 지하철로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가 모두 닿아 있어 오가기가 편하고, 주변으로는 먹거리도 풍부하여 매년 연인원 800여만 명 이상이 찾아 시계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산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북쪽 인수봉과 남쪽 만경대 등 3개의 봉우리가 삼각 모양을 이뤄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북서쪽 능선에는 조선 숙종 대에 쌓은 북한산성이 있으며, 대동문·대서문·대남문·대성문·보국문 등이 남아있다. 1983년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 78.5㎢가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아침 일찍 북한산 우이역 근처에 타고 간 자전거를 세워 두고 도선사 계곡을 따라 백운대를 향해 산행을 시작했다. 자주 내린 비로 수량이 늘어난 탓인지 계곡을 내려가는 물소리가 선별검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잠을 설쳐 멍해진 머릿속을 깨끗이 씻어주는 듯하다. 계류엔 원앙새가 노닐고 계곡 건너편 절벽으로는 보랏빛 등꽃도 보인다. 산길엔 드문드문 피어 있는 노랑제비꽃과 분홍색 병꽃이 산을 오르는 고단함을 잊게 해준다. 하루재를 지나니 신록 사이로 인수봉이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백운산장을 거쳐 위문까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쉬엄쉬엄 올랐다. 계단이 설치된 급경사 바윗길을 오른 후 거대하고 가파른 바위에 매달리듯 있는 힘을 다해 설치된 난간을 따라 조심조심 백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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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날씨 좋은 휴일이라서인지 등산객이 많아 백운대 정상엔 사람들로 붐볐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줄지어 선 사람들을 보니 선별검사소에서 장사진을 이뤘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져 떠올랐다. 선별검사소의 초조하던 사람들의 표정과 달리 산에 오른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오월의 꽃처럼 환하다. 발아래 펼쳐진 서울 시가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운대 정상에서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을 마음껏 감상하며 잠시나마 일상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다. 굳이 무리를 할 까닭은 없지만 어쩌다 한 번쯤은 일상의 따분함을 떨쳐 버리고 산에 올라 자연의 호사를 누려볼 일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