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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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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은 없다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얼마 전 모르는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낯선 전화번호라 잠시 망설이다 받았는데 나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대뜸 '산딸나무 꽃'이란 시의 저자가 맞느냐고 물었다. 습관처럼 꽃에 대한 시를 써 온 탓에 불행히도 나는 내가 쓴 시를 다 기억하지 못한다. 제목만으로는 알 수 없으니 시를 한 번 들려주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시는 내가 쓴 시가 틀림없었다. 일일이 기억은 못 해도 읽어보면 용케도 내가 쓴 시는 알아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봄이 깊어지면/ 산딸나무 꽃이 핀다// 흰 나비 떼 내려앉은 듯/초록 위에 수를 놓는 산딸나무 꽃// 눈길 사로잡는 네 장의 흰 꽃잎은/ 실은 꽃이 아니다// 작은 꽃 돋보이게 하려고/ 스스로 몸을 바꾼 꽃받침이다// 보잘것없는 나를 위해/ 스스로 꽃잎이 된 사람이 있다/ 산딸나무 꽃을 닮은" -나의 졸시 '산딸나무 꽃' -
산딸나무 꽃.이미지 확대보기
산딸나무 꽃.

괭이밥.이미지 확대보기
괭이밥.

족두리풀.이미지 확대보기
족두리풀.

요즘 산딸나무 꽃이 한창이다. 소공원이나 천변의 산책로를 거닐다 보면 흰 나비뗴가 내려앉은 듯 눈부신 자태로 우리의 눈길을 잡아끈다. 이곳 칼럼에도 소개한 적 있는 산딸나무 꽃은 멀리서 바라보면 온통 흰 빛이지만 꽃 속엔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흔히 꽃으로 여기는 네 장의 흰 꽃잎은 꽃차례를 싸고 있는 포라는 식물기관이 변한 것이고 실제의 꽃은 한가운데 동그랗게 모여 있다. 꽃 하나하나는 매우 작아 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공모양의 좀 더 큰 꽃을 이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껏 우거진 초록숲속에서 그 꽃만으로는 곤충들을 유혹하기엔 힘에 부치는 터라 다시 한 번 꽃차례를 싸고 있던 포(苞)라는 부분을 꽃잎처럼 변신 시켜 곤충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희고 큰 꽃 모양을 이룬 것이다.

자연은 이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게 자연이다. 요즘 길가에서 쉽게 만나지는 괭이밥만 해도 알고 보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주변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에나 널리 퍼져 있어서 매우 친숙한 풀이다. 고양이가 배탈이 나면 이 풀을 뜯어 먹어 '괭이밥'이란 이름이 붙었으니 고양이에겐 귀한 약이 되는 풀이기도 하다. 흔하기도 하고 줄기가 가늘고 연약해 보이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여러해살이풀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노란 괭이밥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다.

아카시아.이미지 확대보기
아카시아.

찔레꽃.이미지 확대보기
찔레꽃.

족두리풀.이미지 확대보기
족두리풀.

환삼덩굴은 농부들에게 제거해야할 대표적인 잡초로 꼽힌다. 생명력이 강해서 숲 가장자리, 빈터, 개천 둔치 같은 곳은 순식간에 환삼덩굴로 뒤덮이고 만다. 줄기며 잎이 온통 가시투성이라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는 가시에 긁혀 상처입기 십상이다. 이처럼 성가시고 제거해야 할 잡초 취급을 받는 환삼덩굴도 네발나비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풀이다. 날개 뒷면 가운데 알파벳 무늬가 있어서 '남방씨-알붐나비'라고도 불리는 네발나비는 환삼덩굴이나 삼 같은 삼과식물에다 알을 낳고 애벌레가 그 잎을 먹고 자란다. 우리가 네발나비를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환삼덩굴 덕분이다. 그런가하면 고리명주나비는 쥐방울덩굴에 산란을 하고 독초로 불리는 족두리풀엔 애호랑나비가 알을 낳고 애벌레는 그 잎을 먹고 자란다.
'위대한 상인의 비밀'의 저자 오그 만디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빛을 사랑할 것이다. 빛이 나에게 길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어둠도 참아낼 것이다. 어둠이 나에게 별을 보여줄 테니까." 그러므로 세상에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우리가 잡초라 여기며 함부로 대하는 풀들도 실은 아직 그 가치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 모두 이 세상의 귀한 존재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