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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성미정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와 빈센트 반 고흐 ‘구두 한 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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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훈의 금상첨화(金相添畵)-성미정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와 빈센트 반 고흐 ‘구두 한 켤레’

■ 금요일에 만나는 詩와 그림
성미정의 시는 여성적인 화자의 목소리를 취하고 있다. 남성적인, 즉 이성(異性)을 향한 수줍은 사랑의 고백이다. 그것도 아주 낮은 자세의 시선으로 시작하는 사랑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렇게 해서 여성의 시선은 사모하는 남성을 향한다. 다 낡고 해진 구두가 보이는 아래 땅바닥에서 차츰차츰 위로 치솟아 올라가 하늘 아래에 곱슬머리까지 뻗는다. 다만 문제는 남성은 전혀 눈치를 못 챈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여성 혼자만이 아는 ‘몰래 한 사랑’의 변주(變奏)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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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 성미정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당신도 언젠가 모든 걸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구두 한 켤레’,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이미지 확대보기
빈센트 반 고흐 ‘구두 한 켤레’,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흔하게 본 아줌마처럼 보이는, 성미정(成美旌, 1967~ ) 시인의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라는 시를 나는, 세 번쯤이나 마주친 것 같다. 처음은 10여 년 전, 부처님 오신 날에 이르러서 청계천을 산책하다 배낭에서 꺼내든 책들에서 우연히 봤을 테다.

두 번째 마주침은 작년 봄이었다. 수원 광교 교보문고에서 덥석 집어든 한 책에서 얼핏 또 스치면서 보았다. 세 번째 마주침은 올해 일이다. 민음사에서 펴낸 시집 <사랑은 야채 같은 것>을 하릴없이 해찰하다가 벌어진 사건이었다. 문득 시가 간절히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작년 초여름에 산,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다는 김경민 작가의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를 다시 책꽂이에서 찾아 꺼내들었다. 그런지 한 1주일쯤 되었을 테다.

첫 만남은 ‘좋다’라는 오직 그것 뿐! 성미정의 시는 화가의 그림을 차마 만나진 않았다. 그런데 두 번째부터 달라졌다. 시를 읽으면서 그림이 하나 떠올랐다. 그것은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 한 켤레>(1886년 作)라는 명화(名畵)였다.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에 전시가 되었다는 그 유명한, 명화 속으로 성미정의 시가 무시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 기분이란, 아주 짜릿했다. 운우지정(雲雨之情)처럼 매우 황홀했고 감미로웠다.

몰래 한 사랑, 화자(話者)의 짝사랑


성미정의 시는 여성적인 화자의 목소리를 취하고 있다. 남성적인, 즉 이성(異性)을 향한 수줍은 사랑의 고백이다. 그것도 아주 낮은 자세의 시선으로 시작하는 사랑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렇게 해서 여성의 시선은 사모하는 남성을 향한다. 다 낡고 해진 구두가 보이는 아래 땅바닥에서 차츰차츰 위로 치솟아 올라가 하늘 아래에 곱슬머리까지 뻗는다. 다만 문제는 남성은 전혀 눈치를 못 챈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여성 혼자만이 아는 ‘몰래 한 사랑’의 변주(變奏)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한쪽만 상대방을 좋아하는 짝사랑이란 언제나 조용한 일이 된다. 그것이 설사, 시적 화자로서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한시(漢詩)가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이백이 쓴 시로 제목이 <원정(怨情)>인데, 우리말로 옮기자면 ‘몰래 한 사랑’이나 ‘짝사랑’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음이 그 한시다.

美人捲珠簾 (미인권주렴)

深坐嚬蛾眉 (심좌빈아미)

但見淚痕濕 (단견누흔습)

不知心恨誰 (부지심한수)

아름다운 여인이 주렴을 쥐고

깊이 앉은 채 이미를 찡그리네

보이는 건 젖은 눈물 자국 뿐

누굴 마음에 둔 슬픔인지 몰라라

(이상국 <옛 詩속에 숨은 인문학>, 222쪽 참조)

구슬이 달린 발, 주렴에 미인의 얼굴을 살짝 감추는 이백의 솜씨처럼 성미정은 남자의 얼굴이 미남인지 추남인지를 독자가 함부로 가늠하고 상상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다만 “착한 구두를 사랑했”다거나 남자의 구두 속 “안에 숨겨진 발”과 “다리도 발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라고 고백함과 동시에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로 얼굴을 지울 뿐이다. 다시 말해 착한(?) 구두를 신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남자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주렴에 슬쩍 가려진 미인처럼 안개 속 세상으로 뿌옇다. 선명하지가 않다. 마치 안경을 벗고서 앞을 보는 것처럼 흐릿할 뿐이다.

스무 글자로 이백이 짝사랑을 돌올하게 표현하면서 적었다고 한다면, 성미정의 시는 비교적 호흡이 긴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우표를 부치지 않은 편지에다 자기 이야기를 맘껏 담담하게 적어내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시의 2연과 3연의 내용은 언뜻 구차한 구애(求愛)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은 독백(獨白)인 셈이다. ‘몰래 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짝사랑! 그것이다. 그렇다. 여기서 나타나는 사랑이란 여성적인 화자의 의지이고 소망이자 다짐일 뿐이다. 도무지 이룰 수 없는 사랑인 것을 전제로 말하고 있음이다. 이런 까닭에 이백이 한 글자로 표현한 ‘한(恨)’과 성미정의 ‘사랑’은 맥락에서 일치를 이룩한다.

다 알고 있다. 나이 열다섯, 사춘기가 막 지나고 이성에 대해서 처음 눈을 뜨게 되는 날이 오면 누구든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돌진한다는 것을. 그렇다. 좋은 날(?)이다. 굿데이가 인생에서 비로소 출발하는 것이다. 또한 출발의 에너지는 사람을 살게 이끈다. 다만 문제는 그의 성격과 기질에 따라서 발산(發散) 혹은 수렴(收斂) 식으로 양극단에 치우침일 것이다.

시로, 명화를 보노라니 대화가 술술


성미정의 시를 가까이 하면서 버킷 리스트가 추가 되었다. 처음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의 작품, <구두 한 켤레>를 미술관으로 찾아가서 직접 보고픈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죽기 전에 네덜란드로 여행을 떠나 꼭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전문가이자 이안아트컨설팅 김영애 대표가 쓴 책, 《나는 미술관에 간다》(마로니에북스, 2020년)를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했다.

<구두 한 켤레>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대목이 책에 보인다. 다음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고흐의 그림 중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작품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누구의 신발일까? 바로 그 점이 논란의 초점이었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궂은 날도 가리지 않고 한없이 밭고랑을 수도 없이 밟고 지나갔을 그녀의 강인한 발걸음이 응축되어 있는 낡아 떨어져 버린 구두’라고 표현하며 이 신발이 한 여성 농부의 것이라는 가정하에 글을 썼다. 화면 속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신발 주인의 삶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하이데거는 예술은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숨겨진 존재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1904~1996)는 증거를 대며 조목조목 철학자 하이데거의 이론을 반박한다. 우선 이것이 농부의 아내가 신던 구두라는 출발점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당시 네덜란드 농부들은 주로 나막신을 신었고, 고흐의 다른 그림에도 농부는 대부분 나막신을 신고 있다. 샤피로는 그래서 이 구두가 고흐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략) 여기에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가 끼어들어 반전을 일으킨다. 그는 이 구두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화면의 오른쪽 신발이 조금 더 커보이는데 과연 이 구두가 한 켤레의 구두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영애 <나는 미술관에 간다>, 388쪽 참조)

나는 개인적으로 하이데거의 주장을 지지하고 싶다. 이유가 있다. 그의 논리가 시적 상상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흐가 농부의 아내를 짝사랑한 심정을 담아 화폭에 구두를 그린 것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훨씬 내 삶의 쉼표가 되어서다.

페테르 한센 ‘포보르 교외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 20세기, 캔버스에 유채, 덴마크, 코페하겐 국립미술관.이미지 확대보기
페테르 한센 ‘포보르 교외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 20세기, 캔버스에 유채, 덴마크, 코페하겐 국립미술관.


덴마크 화가 페테르 한센의 작품 <포보르 교외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을 한참 보노라면, 어느새 성미정 시인의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라는 시의 화자와 동일시가 되는 한 여성이 보인다. 이 여성은 그림에서는 아줌마가 아니라 열다섯쯤 수줍은 소녀의 모습을 취하고 ‘나’를 찾아보라고 부추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하나씩 따라서 연필로 선을 이어가다 보면 한 소년이 주인공임을 알 수 있다. 중3 오빠일 것이다. 그 오빠 뒤에는 파란 치마를 입은 소녀가 서 있다. 소녀의 시선은 중3 오빠한테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멋지게 얼음을 제치는 모자 쓴 오빠를 향하여 발끝부터 머리까지 짝사랑을 하는 선망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겨울 빙판은 아이들의 아우성으로 분주하다. 화폭 오른 쪽 상단, 교회 앞 빙판에선 술래잡기가 벌어졌는지 사람 사이를 요리조리 비껴가며 질주하는 아이가 있다. 화폭 중앙 상단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마도 저녁 식사하러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늦은 오후 풍경일 것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더 간절히 놀게 되는 순간. 화폭 아래쪽, 가장 크게 그려진 소년 무리가 보여주는 요란한 움직임을 쫓다보면 유독 멀뚱히 서 있는 소녀에게 시선이 다다른다. 파란 치마를 입고 공손히 손을 모은 소녀. 빙판을 화려하게 지치는 무리를 간절하고도 끈질긴 시선으로 바라보는 저 아이도 분명 이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 나도 놀고 싶다.’ (최혜진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175쪽 참조)

물론 ‘아, 나도 놀고 싶다’라는 파란 치마 소녀의 속내가 안 읽혀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보다는 파란 치마 뒤에서 두 소녀가 수군대는 것을 참고하면, 얘기가 “어머, 쟤 좀 봐, 또 저 오빠만 본다. 그치?”하고 속닥거리는 소녀들의 대화가 멀리서 들려올 것만 같다.

감히 추측컨대 화가 페테르 한센의 자화상은 바로 파란 치마를 입은 소녀일 테다. 그 소녀는 성미정의 시에 등장하는 화자의 이미지와 묘하게 겹치고 어울린다. 그렇다. 소녀의 이름을 파란 치마 대신에 나는 ‘꼼빠니아(Compañía)’라고 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모자 쓴 소년과 미래를 ‘함께’하고자 하는 파란 치마 입은 소녀의 열망의 욕구는, 머잖아 몰래 한 사랑, 짝사랑으로 끝날 테다. 공손히 손을 모은 태도에서 그녀의 기질이 수렴(收斂)에 있고, 발산(發散)에 무능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이렇듯 공손히 손을 모은 파란 치마, 꼼빠니아 소녀는 고요히 외치고 있었을 테다. 하지만 저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소녀의 첫사랑이 정작 자신이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서 살아갈지도 혹 모를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수렴에 머물지 말고 발산하는 것으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사랑을 말로 아닌, 글로 발산을 한 셈이다. “언제나 시작입니다”에 머묾은 싱싱하다. 펄떡인다. 날것의 생기(生機), 그것은 어쩌면 아무나 다다를 수 있는 내공의 경지는 아닐 테다.

짝사랑이란 생기, 생명이 발하여 움직이게 하는 동인(動因)


중국 명나라 때 문인이자 화가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은 당시로는 비교적 장수(82세 卒)를 누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지은 화론서(畵論書)인 <화안畵眼-동기창의 화론>(시공아트, 2004년)에는 이런 글이 보인다. 다음이 그것이다.

“그림의 도는 우주가 손안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가) 생기 아닌 것이 없다. 때문에 그림 그리는 사람(화가) 중에는 오래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판박이 그림처럼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하여 조물주의 심부름꾼이 되고 마는 사람의 경우는 수명이 단축될 수 있는데, 대체로 생기가 없기 때문이다.” [畵之道, 所謂宇宙在乎者, 眼前無非生機, 故其人往往多壽, 至如刻畵細勤, 爲造物役者, 乃能損壽, 蓋無生機也.] (동기창 <화안畵眼-동기창의 화론>, 79쪽 참조)

동기창의 말을, 단지 허무맹랑하고 고리타분한 비평으로 제한해서 보기에는 실은 유명 화가들의 장수 현장을 문득 확인하는 순간 의심은 사라지고 확신이 머릿속에 똬리를 트게 한다. 우리가 사랑한 화가 고흐가 만약에 자살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얼마나 오래 살았을까?

고흐는 가난한 이들, 특히 농부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은 바 있다. 농부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생기 있게 화폭에 담은 작품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편이다. 그가 존경했다는 선배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 1814~1875)도 우리 나이로 환갑을 넘겼는데, 고희를 지나 팔순까지 장수를 누리진 않았을까.

어쨌거나 앞의 그림, 구두와 관련해서, 최상운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1886년에 그린 <구두 한 켤레>는 다 해진 고동색의 구두를 보여준다. 그가 시골에서 들판을 다닐 때 신은 구두로, 투박한 등산화를 닮았다.” (최상운 <우리가 사랑한 고흐>, 38쪽 참조)

명화에 대한 상상력을 확 깨는 정석의 설명이어서 다소 실망스럽다. 그런 까닭에 나는, 시로 그림에 접근하여 독자가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감상하길 권하는 바이다.

아무튼 성미정의 시에는 빈번하게 ‘사랑’이 등장한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사랑은 야채 같은 것> 한 부분)을 사랑을 지속하는 것으로 보는 시선은 생기가 발랄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녀가 공들여 만든 대머리를 위한 가발이/ 찢겨진 우산처럼 빗속에 버려져 있다“(<대머리와의 사랑> 한 부분)고 하더라도 시인의 ‘사랑’에 대한 열망 에너지는 지치거나 멈추는 법이 없을 테다.

고등학교 국어교사 김경민 작가는 성미정의 명시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를 두고서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울림이 있어, 여기에 옮겨 적는다.

“어떤 시는 그 특유의 문체나 구조를 흉내 내어 내 나름대로 다시 써보고 싶게 만든다. 이 시가 그렇다. 쉽게 읽히면서도 위트 있고 귀여운 느낌이 들어서 읽자마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중략) 사랑을 포함해 이 세상 모든 것엔 시작만 있을 수 없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그 끝이 있다. 사랑의 끝은 어떤 모습인가. 끝이 시작만큼 반짝일 수 있을까. (중략) 끝으로 가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바로 사랑을 ‘유지’하는 것이다. (중략) 요컨대 이 시는 사랑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설렘이나 고백이 아니다. 이별을 경험한 그리고 그 이별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의지이자 다짐이다. 이별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랑에서 때때로 의지는 설렘보다, 다짐은 고백보다 힘이 세다는 걸.” (김경민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104~108쪽 참조)

낡고 다 해진 구두 한 켤레. 그것을 ‘부부의 날’에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그녀)의 시선이 느껴지는가?

고흐와 한센의 그림을 보면서 혹은 어릴 적 첫사랑이나 짝사랑을 부부 잠자리에서 생각하면서 가정을 끝내 지키려는 사랑의 의지와 다짐은 설사 남편이 대머리로 변했거나, 아내의 허리가 찾기 어려울 정도로 뚱뚱하게 변했다고 할지라도 섹스 리스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 ‘부부의 날’은 좋은 날이다. 가수 아이유의 <좋은 날>이란 노래 가사는 이렇다. 한 번쯤 음미해 볼 만하다. 음미만 할 것이 아니고 “한 번도 못했던 말”을 꺼내들어야 한다. 그 시적인 가사를 소개한다. 다음과 같다.

어쩜 이렇게 하늘은 더 파란건지

오늘따라 왜 바람은 또 완벽한지

그냥 모르는 척 하나 못들은 척

지워버린 척 딴 얘길 시작할까

아무 말 못하게 입 맞출까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

내게 왜 이러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오늘 했던 모든 말 저 하늘 위로

한 번도 못했던 말

울면서 할 줄은 나 몰랐던 말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해

새로 바뀐 내 머리가 별로였는지

입고 나왔던 옷이 실수였던 건지

아직 모르는 척 기억 안 나는 척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굴어볼까

그냥 나가자고 얘기할까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

내게 왜 이러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오늘 했던 모든 말 저 하늘 위로

한 번도 못했던 말

울면서 할 줄은 나 몰랐던 말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해

(휴~ 어떡해)

이런 나를 보고 그런 슬픈 말은 하지 말아요

철 없는 건지 조금 둔한건지 믿을 수가 없는 걸요

눈물은 나오는데 활짝 웃어

네 앞을 막고서 막 크게 웃어

내가 왜 이러는지 부끄럼도 없는지

자존심은 곱게 접어 하늘 위로

한 번도 못했던 말 어쩌면 다신 못할 바로 그 말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아이쿠, 하나 둘)

I'm in my dream

(It's too beautiful beautiful day)

(Make it a good day)

(Just don't make me cry)

이렇게 좋은 날

이렇게 좋은 날! 부부로 살면서 상대방에게 단 한 번도 못했던 그 말. “사랑해요!”를. 더 늦기 전에, 그(그녀)에게 꼭, 먼저 내가 말해보는 것이다. 성미정의 시와 고흐의 구두, 한센의 그림이 내 곁에 찾아와 도와줄 것이다.

나 또한 아이유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다짐의 말을 오월에는 깊이 새기면서 시작하고자 한다.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보고 내 사랑이 시작된 거라고.

◆ 참고문헌


성미정 <대머리와의 사랑, 문학동네, 2020.

김경민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포르체, 2020.

이상국 <옛 詩속에 숨은 인문학>, 슬로래빗, 2015.

동기창, 변영섭 외 옮김 <화안畵眼-동기창의 화론>, 시공아트, 2004.

김영애 <나는 미술관에 간다>, 마로니에북스, 2020.

최혜진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은행나무, 2019.

최상운 <우리가 사랑한 고흐>, 샘터, 2021.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