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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발 재택근무, 승자 30~40대....패자는 신입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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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발 재택근무, 승자 30~40대....패자는 신입사원

전체 유급 근로일수에서 재택근무 일수가 차지하는 비율의 추이. 사진=NBER이미지 확대보기
전체 유급 근로일수에서 재택근무 일수가 차지하는 비율의 추이. 사진=NBE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전례 없이 확산된 재택근무제가 코로나 예방 백신 접종 확대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출근제 복귀를 서두르고 있고 상당수 기업들은 재택근무제를 유지하거나 출근제와 재택근무제를 혼합한 형태의 새로운 탄력근무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도 방침을 뚜렷이 정하지 못한채 고심을 거듭하는 곳도 많다.

재택근무제 도입이 일률적인 효과를 낳을 수는 없다. 기업이 처한 사정에 따라, 업무의 특성이나 직무의 성격에 따라, 직위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부행정 전문매체 루트피프티가 재택근무제 도입 1년이 흐른 시점에 중간 결산서를 내놨다. 재택근무 문화의 확산으로 구체적으로 누가 이득을 봤고, 누가 손해를 봤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내용으로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많은 기업들에게 지침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가지의 상반된 조사 결과


루트피프티는 최근 실시된 두가지 설문조사의 상반된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하나는 아시아 지역의 한 대형 IT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 1만여명을 대상으로 이뤄졌고 다른 하나는 미국 근로자 3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가 터진 때부터 최근까지 재택근무제가 업무 현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악하는게 조사의 목적이었다.

미국 시카고대 부설 베커프리드먼경제연구소(BFI)가 지난달 진행한 아시아 근로자 대상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재택근무제의 효과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한마디로 재택근무 때문에 근무 시간이 오히려 늘어났고 업무 생산성도 떨어졌다는 것.
미국 최고의 경제분석 연구기관인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지난 4월 실시한 미국 근로자 대상 조사에서 확인된 효과는 정반대. 재택근무제 덕분에 직장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 한마디로 기대 이상의 효과를 경험했다는 것.

루트피르티는 “한 조사에서는 업무 효율이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오고 다른 조사에서는 업무 효율이 올라갔다는 결과가 나온 상황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재택근무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구체적인 영역별로는 승자와 패자를 논할 수 있을 정도로 편차가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첫번째 승자: 수익성 높은 기업의 고소득 근로자


미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먼저 잘 나가는 기업에 다니는 연봉 수준이 높은 30~40대 근로자들이 가장 큰 수혜자로 분석됐다. 아울러 수익을 많이 내는 기업일수록 재택근무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 작업에 참여한 니콜라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는 “3만여명에 대한 조사 결과 구체적으로 연령은 45세, 직종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경우가 재택근무의 수혜를 가장 많이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블룸 교수는 “적어도 단기적으로 볼 때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고수익 기업일수록 재택근무제를 유지하거나 하이브리드(절충형) 재택근무제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두번째 승자: 내향적이고 온라인 문화에 친숙한 근로자


성격적으로는 내향적인 편에 속하고 온라인 문화에 친숙한 근로자들도 재택근무제로 인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향적인 직장인들은 회사에 출근해 동료들과 대면하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얻지만 내향적인 직장인들은 재택근무제 덕분에 일도 잘되고 만족감이 높았다는 얘기. 특히 원치 않은 사람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 부담감, 사무실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소음 등을 피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메일을 즉각 확인하고 회신하는 능력, 문서를 잘 꾸미는 능력,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을 잘 사용하는 능력 등도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세번째 승자: 시내보다 살기좋은 근교 생활

재택근무제 덕분에 교외로 거주지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대도시 중심에 있는 사무실로 출퇴근하느라 교통 체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그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도 아끼는 대신 좀더 넓은 생활공간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재택근무자들에게 큰 만족감을 안겨준 것으로 조사됐다.

블룸 교수는 “대도시에 몰려 있던 직장인들이 대도시 주변 지역으로 넓게 퍼진다고 해서 이런 현상을 도넛 현상이라고 한다”면서 “경제활동의 무게 중심이 재택근무제 확산을 계기로 대도시 주변 지역으로 넓게 분산되고 있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교외 지역으로 탈출하는 이런 움직임은 특히 상대적으로 젊은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뚜렷이 확인된다고 그는 밝혔다.

블룸 교수는 “직장인들이 반드시 대도시 생활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같은 가격에 더 좋은 조건의 주거 공간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네번째 승자: ‘재택근무경제’


재택근무제의 확산이 ‘재택근무경제’라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직장생활의 근거지가 도시 중심에서 도시 외곽으로 옮겨가면서 그에 따른 새로운 경제적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것.

블룸 교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재택근무 근로자 한사람이 자신의 집을 재택근무 환경에 맞게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평균적으로 15시간, 561달러(약 64만원)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재택근무 환경을 꾸미는데 쓴 돈을 국내총생산(GDP)으로 환산하면 미국 전체 GDP의 1%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인터넷 통신비 등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위해 회사에서 쓴 돈까지 합치면 재택근무로 새로 만들어진 경제 규모는 엄청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첫번째 패자: 신입 직원들


그러나 직장 생활 경력이 있는 사람과 달리 갓 입사한, 젊은 연령의 근로자들에게 재택근무 문화는 오히려 부담스러운 환경으로 작용했다.

사람을 보고 일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회사에 다닌다는 소속감도 별로 없을뿐 아니라 존재감도 느끼기 어렵고 업무적으로 막혀도 도움을 받기 어렵기 때문.

◇두번째 패자: 시내 건물주와 상권


기업들이 몰려 있는 대도시 중심의 건물주를 비롯한 도심 상권에서도 재택근무제 확산이 반가울 수 없었다. 회사를 오가는 직장인이 뜸해지면서 유동 인구도 크게 감소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건물주들은 건물주대로 시내 건물에 거주하던 직장인들이 썰물 빠지듯 빠지면서 식당 주인, 가게 주인, 극장 등은 찾아올 직장인이 급감하면서 수입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진 것. 일상적으로 일하고 먹고 자는 사람이 크게 줄어들면서 도심 상권 전체에 위기가 닥친 셈이다.

블룸 교수는 “단적인 지표로 미국 전역에 걸쳐 도심 사무실의 공실율이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출근제를 되살리는 기업들이 나온다 해도 일주일 내내 출근하는 식이 아니라 3일 정도 출근하는 방식으로 결정한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도심 상권에서는 여전히 근심이 큰 실정”이라고 전했다.

◇세번째 패자: 저학력 근로자들


재택근무제로 인한 득실은 학력에서도 크게 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원 졸업 이상의 고학력자는 전체의 절반 이상이 재택근무제를 누릴 수 있을 정도로 경우가 흔했지만 고등학교만 졸업한 저학교 직장인의 경우에는 전체의 25% 정도만 그런 기회가 제공됐기 때문이다.

이는 식당 종업원, 접객업소 직원, 물류창고 근로자를 비롯해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해결해야 하는 업무가 저임금 직종에 몰려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각에서 재택근무제는 고학력 근로자에게만 유리한 문화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