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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세권·초품아...상술이 낳은 부동산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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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세권·초품아...상술이 낳은 부동산 신조어

[고운 우리말, 쉬운 경제 2] 부동산 중개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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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슬세권이라서요. 아이가 있다면 초품아를 추천합니다.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은 스세권입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흔히 사용된다. 눈치 있는 사람들은 알 수 있지만 부동산 관련 조어들이다. 역세권이 시초다. 역세권은 지하철 반경 500m 이내를 뜻한다. 집이 지하철이 가까이 있어 출퇴근 등 이동이 편해 ‘웃돈’이 붙는다.
최근에는 부동산 ‘세권(勢圈)’이 다양해 졌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건설사 등 부동산 관련 업계의 상술이 더해지며 신조어가 속출하고 있다. 슬세권, 초품아, 스세권, 학세권, 버세권 등 줄줄이 이다. 여기에 몰세권, 공세권, 병세권 등이 가세하면 가히 신조어 경연이다.

이들 신조어는 건설사나 시행사에서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아파트 주변 여건에 맞춰 뽑아내는 ‘기술’이 놀랍다. 보통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나돌다가 발 빠른 언론사에 의해 확산된다.

‘슬세권’은 슬리퍼와 세권의 합성어다. 1~2인 가구 젊은 세대들이 선호한다. 쇼핑몰, 마트, 영화관, 커피전문점, 은행 등 편의시설이 단지에 인접해 슬리퍼, 잠옷 같이 편한 복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주거 권역을 의미한다.

‘초품아’는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를 말한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에게 인기다.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어 이 권역 ‘웃돈’도 상당하다. 비슷한 신조어로 학원이 근처에 있는 학세권이 있다.

부동산 관련 신조어도 세태를 반영한다. 요즘에는 생활 편리와 함께 쾌적함을 지향하는 친환경이 떠오른다. 공세권, 녹세권, 뷰세권, 수세권, 숲세권, 천세권, 호세권, 흙세권 등이 해당된다.

‘공세권’은 공원, ‘녹세권’은 녹지가 인근에 있는 것이고 뷰(view)세권은 전망이 좋은 입지를 의미한다. 뷰세권에서 더 나아가 ‘강+세권’, ‘산+세권’으로 확장된다.
하다하다 어이없어 보이는 ‘욕세권’도 생겼다. 욕먹는 아파트를 말한다. 서울 강동구 고덕 OOOO, OOOOO 두 곳이 대표적이다. 이 두 아파트 단지는 합쳐서 9000 세대가 넘는 대단지다. 2019년에 입주하기 전까지 ‘입지가 안 좋다’, ‘부실시공이다’ 등 욕을 먹었다. 하지만 입주 후 지하철 5호선을 끼고 강동구 랜드마크가 됐다.

부동산 신조어는 청소년들이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개’와 ‘핵’을 붙여 만들고, 어법에 어긋나고, 비속적인 그들만의 대화 수단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신문과 방송은 다르다. 무분별한 줄임말과 신조어를 담은 활자와 영상이 많아진다면 한글이 파괴될 수 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가려 쓰자.”

감수 : 황인석 경기대 교수·문화관광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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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j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