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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이 ‘직무유기’ 논란에 휩싸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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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이 ‘직무유기’ 논란에 휩싸인 이유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세계은행 본부 건물.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세계은행 본부 건물. 사진=로이터
‘어차피 이름에 걸맞는 역할도 못할 바에야 이름에서 ‘세계’를 빼는게 낫겠다’

이렇게 조롱 섞인 표현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과학 전문매체 네이처가 세계은행이 설립 취지에 부응하는 역할을 하지 못해 사실상 직무유기를 저지르고 있다며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그 이유는 지구촌을 급습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에 전세계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특히 코로나 예방 백신 접종이 잘 사는 나라들 위주로 공급되면서 불공평한 백신 보급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국제 현안으로 부상했음에도 세계은행은 강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자세로 일관해왔다는 것.

네이처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 무리도 아닌 것은 세계은행은 애초부터 개발도상국에 대한 재정 지원을 목적으로 지난 1946년 출범한 국제 금융기구이기 때문이다.

◇지원금 쌓아두고 지원하지 않았다


네이처는 22일(현지시간) 올린 기사에서 최근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코로나 백신 보급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개도국에 백신 10억회분을 제공하기로 합의가 이뤄진 사실을 언급하면서 G7이 저소득 국가들의 백신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때까지 세계은행은 대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네이처에 따르면 세계은행이 개도국에 지원금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자금은 연간 500억달러(약 57조원) 규모. 여기에다 대출 명목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자금으로 100억달러(약 11조원)가 더 있다.

문제는 정당하게 집행할 수 있는 이 막대한 자금을 “지도력이 부족해서든 융통성이 없어서든” 여하튼 적극적으로 집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네이처의 지적이다.

지난해 10월 120억달러(약 14조원)의 자금을 백신 접종 환경을 갖추지 못한 중·저소득 국가에 대출 형태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지난날까지 실제로 제공한 돈은 36억달러(약 4조원)에 그치고 있는 실정. 이들 국가 입장에서는 백신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재정 지원이 절실하지만 이미 심각한 수준의 나라 빚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 두려워 선뜻 손을 벌리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처는 “세계은행은 코로나 같은 사태에 직면했을 때 다자협력을 통해 신속하고 탄력적이면서도 현명하게 행동에 나서야 했다”면서 “그러나 세계은행이 몇 달씩이나 굼뜬 행보를 보인 끝에 이제야 행동에 나선 것도 비판 받을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코로나 백신은 ‘공공재’


네이처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오히려 코로나 관련 자금 지원의 문턱을 높인 것으로 지적됐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아스트라제네카가 백신을 공동개발하는 과정에서 세계은행으로부터 외면 받은 일이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부터 영국으로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개발과 관련한 금융 지원을 요청받았으나 통상적인 경우보다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기 때문. 세계은행은 결국 영국 정부가 지난 1월 아스트라제네카를 공식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금융 지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처는 “공중보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개발한 백신은 일반적인 제품이 아니라 ‘공공재’의 성격을 지녔다”면서 “세계은행이 공공재의 개발을 지원하고 나서는 것이 마땅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세계은행의 무능력과 무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지원 받을 수 있는 문턱 높여


세계은행은 코로나 백신을 비롯해 공중보건상 중요한 대상이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과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게 네이처의 지적이다.

네이처는 아울러 “지난해 발표한 120억달러의 백신 자금 지원 계획도 속히 완전히 이행해야 한다”면서 “백신 자금은 집행이 늦을수록 의미가 없는 돈이 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이처는 “글로벌 백신 보급에는 백신 생산업체의 공급 문제, 수출 규제, 의료 인프라 문제를 비롯해 많은 난관이 따른다”면서 “전례 없는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모든 영역에서 혁신적인 방법을 강구하는 등 분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은행은 최소한 본연의 임무는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