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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규제 풀렸어도 美 취업비자 여전히 따기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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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규제 풀렸어도 美 취업비자 여전히 따기 어려운 이유

외국인들이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모습.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외국인들이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모습. 사진=로이터

미국 비자는 미국에 이민 오는 사람을 위한, 흔히 영주권이라고 알려진 ‘이민 비자’와 미국에 일하기 위해 오는 사람을 위한 ‘비이민 비자’로 크게 구별된다.

이민 비자를 신청하려는 사람이든, 비이민 비자를 신청하려는 사람이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만큼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 트럼프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 가운데 하나인 반이민 정책에 따라 비자 발급을 어떻게든 규제했기 때문이다.

권력이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 넘어가면서 비자 규제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껏 커진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23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친이민 정책을 표방한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해 이미 비자 관련 규제를 일부 개혁했음에도 외국인이 미국 취업 비자를 따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 시절보다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트럼프 취업비자 규제, 바이든이 되돌리는 중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근로자를 우선적으로 고용하는 정책을 내세워 규제의 칼을 들이댄 대표적인 비자는 취업 비자에 속하는 ‘전문직단기취업비자(H-1B)’와 ‘주재원비자(L-1비자)’였다.

특히 H-1B 비자는 학사 이상의 학력을 요구되는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는 외국 고급인력에 대해 최대 6년까지 미국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 H-1B는 영주권으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욱 이점이 큰데다 미국 기업들도 고급 인재를 조달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이 제도를 활용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6월부터 적용되는 행정명령을 통해 취업 비자뿐 아니라 취업이나 가족 이민을 통해 영주권을 승인 받은 외국인들에까지 비자발급을 한시적으로 중단시키는 조치를 취한데 이어 H-1B 조건을 충족하는지 심사하는 과정을 까다롭게 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강화했다.

다행히 바통을 이어받은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원상태로 되돌려놨고 합법적인 미국 이민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입장도 밝힌 상황이다.

◇심각한 비자 처리 정체

그럼에도 CNN에 따르면 취업 비자 발급 등이 트럼프 행정부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되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CNN이 지목한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누적된 비자 신청 건수가 미국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기 때문.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의 정책을 다 되돌려 놓더라도 막대한 규모로 밀려 있는 비자 신청을 해소하는데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CNN에 따르면 비자 발급 부처인 미 국무부가 접수해놓고 아직 처리하지 못한 비자 신청 건수는 무려 260만건 수준. 서류 심사는 통과했지만 면접을 아직 하지 못한 신청자도 50만명 규모다. 이민 비자에 따라서는 신청 건수가 트럼프 정부 출범 전인 4년 전보다 50~100배 폭증한 경우도 있다.

이민 컨설팅업체 엔보이글로벌의 딕 버크 최고경영자(CEO)는 “비자 처리 정체 문제가 이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은 미 국무부의 비자 관련 부서 인력이 부족한데다 해외 영사관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방역 조치로 정상 운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 사태 여파

코로나19 사태도 일을 어렵게 만든 주요한 배경이다.

코로나와 관련한 입출국 제도나 규정이 나라마다, 항공사마다 다르고 항공사 승객을 태우는 기준도 제각각인 것 등의 문제도 비자 수속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버크 CEO는 “기본적으로 나라마다, 항공사마다 제도와 규정이 다른데다 자주 바뀌기까지 하는 문제로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하게 비자 업무를 처리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민도 경쟁 시대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미국이 오랜 기간 보유했던 세계 최대 이민국이라는 지위를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 비자 받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다 미국 이웃인 캐나다를 비롯해 다른 나라들에서 미국보다 까다롭지 않은 이민 절차를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이민 수용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버크 CEO는 “특히 캐나다의 경우 매우 공세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는 미국 취업 비자 취득이 어려워지면서 캐나다를 대안으로 삼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와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캐나다는 여기에다 미국과 똑같은 영어권이고 지리적으로도 붙어 있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민도 경쟁 시대

그러나 문제는 외국인이 미국에 오기 어려워졌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고급인력이 됐든, 저임금 노동자가 됐든 외국 인력에 의존해온 미국 기업들에까지 여파가 미쳤기 때문.

안그래도 기왕에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완연한 경제 회복세로 일자리가 급증하고 있으나 고용시장 한파는 아직 풀리지 않아 ‘구인 대란’까지 빚어지고 있다.

미국 재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활동을 해온 대표적인 경제단체인 미국상공회의소가 구인난이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미국 내에서 인력을 조달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외인력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최근 밝히고 나선 이유다.

미국상공회의소의 닐 브래들리 수석 정책관은 CNN과 인터뷰에서 “미국 전역에 걸쳐 지금처럼 많은 지역에서 인력이 모자라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면서 외국 인재의 미국 취업문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