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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경영 배점 높여놓고 경영평가 강화? 정부 '공공기관 다잡기'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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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경영 배점 높여놓고 경영평가 강화? 정부 '공공기관 다잡기' 모순

'LH 사태' 여파로 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 엄격해져...6년 만에 기관장 해임 건의 4건이나 나와
정부 "윤리경영·재무건전성 강조할 것"...학계 "4년 전 방만경영 견제 지표 줄여놓고 이제와 뒷수습"

기획재정부 안도걸 제2차관(가운데)이 지난달 25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0년도 경영평가 수정과 후속조치 브리핑에서 경영평가의 계산 오류로 10개 기관 종합등급이 뒤바뀌는 오류를 사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기획재정부 안도걸 제2차관(가운데)이 지난달 25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0년도 경영평가 수정과 후속조치 브리핑에서 경영평가의 계산 오류로 10개 기관 종합등급이 뒤바뀌는 오류를 사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계기로 정부가 공공기관 윤리경영 평가 강화를 통한 '조직기강 다잡기'에 나섰지만 일관성을 상실한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8일 '2021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고, 공공기관 경영평가 지표 중 '윤리경영' 비중을 늘리겠다고 천명했다.
아울러 부채비율·이자보상배율 등 '재무 건전성'도 엄격하게 관리하도록 경영평가 지표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18일 발표한 2020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D등급(미흡)과 E등급(아주 미흡)을 받은 기관을 전년도 17개에서 21개로 늘렸고, 6년 만에 처음으로 '기관장 해임 권고'도 시달했다.

이번 경영평가에서 LH는 D등급을 받았다. 또한, E등급을 받거나 2년연속 D등급을 받아 해임 권고 대상이 된 8개 기관 가운데 대한건설기계관리원 등 4개 기관은 실제 기관장 해임 건의가 이뤄졌고, 한국마사회 등 나머지 4개 기관은 지난해 재임했던 기관장들 임기가 만료돼 실제 해임 건의는 면하게 됐다.

정부는 LH 사태의 대응책으로 나름대로 공공기관 윤리경영과 경영평가를 엄격하게 다룬다는 원칙을 제시했지만 학계 내부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조치로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6개월 뒤인 2017년 11월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를 30년만에 대폭 손질해 평가 항목에 '사회적 가치'를 신설하고, 배점 비중도 22~24%로 가장 높았다.

특히, 사회적 가치 세부항목 가운데 정규직 전환을 포함한 '일자리 창출' 항목에 가장 높은 6~7%를 배정했다.
주요사업 부문에도 사회적 가치 실현을 10% 이상 배정해 정규직 전환 등 일자리 성과 만으로 100점 만점 중 32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더욱이 재무제표 등 '정량적 평가'보다 평가자 주관이 많이 작용하는 '정성적 평가' 비중이 전체 평가항목의 50% 이상을 차지하게 됐고, 행정학·경영학 교수 중심이던 평가단에는 시민단체와 시민평가단이 포함됐다.

2019년 6월 '2018년도 경영평가 결과'를 발표할 당시 기재부는 1983년 경영평가제도가 도입된 지 30여년 만에 처음 사회적 가치와 공공성을 중심으로 지표를 전면 개편했다고 밝혔다.

개편 영향으로 2018년 경영평가에서 '역대급 적자 전환'을 보였던 한국전력이 B등급(양호)을 받았고, 2019년도 경영평가에서도 정규직 전환 실적이 최상위권인 한국도로공사·LH·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이 대거 A등급을 받았다.

한발 더 나아가 기재부는 지난해 경영평가 항목에 ▲한국판 뉴딜 정책 수행 노력 ▲코로나19 대처 노력을 추가했다.

즉, 정부가 기관장의 조직·인사·재무관리·혁신노력 등 공기업의 기강 해이와 방만경영을 견제하는 지표의 비중을 축소시켜 평가의 초점을 경영 효율화에서 사회적 가치로 이동시켰다. 학계에선 이같은 정부의 경영평가 초점 변동이 공공기관의 조직문화를 이완시키고 기강 해이에 둔감하도록 방조해 놓았다고 주장하며, 문제가 터지자 '사후 약방문'식으로 땜질처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도 경영평가 내용이 계산 오류로 10개 기관 종합등급이 뒤바뀌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주무부처인 기재부는 평가단 책임자를 해촉하는 등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지난 4월 '공기업 재무건전성 강화방안 연구보고서'에서 우리나라 비(非)금융 공기업의 부채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에 이른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수년 간 참여했던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부)는 "기관 본연의 충실한 역할 수행을 유도하는 경영평가제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더 강화돼 왔다"면서 "현 정부 들어 경영평가제도 개편으로 과거에 엄격히 규제했던 방만경영·기강해이 등에 무뎌진 경향을 나타냈고, 결국 LH 사태를 초래한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평가지표의 일관성이 흔들릴 때 평가제도의 실효성도 흔들린다"며 "일자리창출 등 보다 공공기관 본연의 경영 성과를 균형있게 평가하는 지표의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