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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바이든 주도 ‘글로벌 최저 법인세’ 암초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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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바이든 주도 ‘글로벌 최저 법인세’ 암초 부상

파스칼 도노호 아일랜드 재무장관.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파스칼 도노호 아일랜드 재무장관. 사진=로이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주도한 가운데 순조롭게 추진되는 듯했던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도입이 암초를 만났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들이 지난 9~10일(이하 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만나 전세계 모든 나라의 법인세율을 최소 15% 이상으로 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앞서 130개국이 이미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15%에 동의한 바 있다. 특히 동의한 나라에 그동안 낮은 법인세율로 해외 기업을 유치해온 중국과 인도까지 포함돼 있어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아일랜드를 비롯해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하고 있는 9개 국가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도입에 찬성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 문제가 이들을 무시하고 추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데 있다.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특히 아일랜드를 합류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를 CNN이 20일(이하 현지시간) 짚어봤다.

◇아일랜드가 동참하지 않는 이유


파스칼 도노호 아일랜드 재무부 장관은 지난 15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일랜드는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15%에 동의하지 않으며 현행 법인세율 12.5%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인구 500만명에 불과한 유럽 변방의 작은 나라 아일랜드가 글로벌 법인세 개혁 방안에 동조하지 않고 있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

아일랜드는 낮은 법인세율을 무기로 내세워 페이스북, 구글, 애플을 비롯한 초일류 글로벌 대기업의 유럽 본부를 성공적으로 유치해온 대표적인 나라, 이를 통해 경제의 활력을 유지해온 대표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12.5%로 미국의 21%는 물론이고 영국의 19%보다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도노호 장관에 따르면 아일랜드가 현재 글로벌 법인세 개혁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개혁안 내용을 보면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한 측면이 많다”면서 “게다가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아일랜드 정부의 진심은 후자에 실려 있다는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에 합의하면 지난 2003년부터 낮은 법인세율을 도입해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을 성공적으로 유치하는 방식으로 유지해온 아일랜드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불보듯 뻔하다는 것.

아일랜드 더블린 소재 싱크탱크 경제사회조사연구소(ESRI)의 율리아 지드슐락 연구교수는 “낮은 법인세율은 아일랜드가 외국기업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중요한 배경에 속한다”면서 “다국적 기업들을 유치함으로써 아일랜드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 유력 경제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일랜드 정부는 전체 세수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주요 선진국들보다 크게 높은 20% 수준인데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도입하게 되면 3조원 안팎의 막대한 세수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아울러 페이스북을 비롯한 글로벌 IT 대기업 외에 화이자를 비롯한 다수의 글로벌 제약기업들도 아일랜드에 유럽 본사를 두고 있는데 법인세율을 올리게 되면 이들로부터 걷을 수 있는 돈 역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인세와 관련한 메리트가 없어졌다고 판단해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기업이 없으란 보장도 없다.

◇아일랜드가 끝까지 거부할지는 아직 미지수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주도해왔고 대다수 국가들이 동의하는 글로벌 법인세 개혁방안을 아일랜드 정부가 끝까지 뿌리칠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 상당하다.

이 문제로 지난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을 만난 도노호 장관도 “생산적인 논의를 했다”고 밝혀 글로벌 법인세 개혁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은 아님을 시사했고 옐런 장관 역시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헝가리와 에스토니아 등도 동참할 수 있도록 길을 찾아보겠다”고 말해 적극적인 설득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CNN은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15%로 최종 확정되고 아일랜드가 끝까지 12.5%를 고수할 경우 2.5%의 차이에 해당하는 세금을 미국 정부가 아일랜드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에 직접 부과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가 어떻게든 글로벌 법인세 개혁안에 동참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스위스 로잔대학의 세법 전문가인 로버트 대넌 교수는 “큰 틀에서 15%로 최저세율이 정해지더라도 구체적으로 의논해 확정해야 할 내용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아일랜드가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국제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참여하는 커다란 개혁에 결국 참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최저세율이 15% 이상으로 합의될 경우에는 아일랜드도 끝까지 버틸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SRI의 지드슐락 교수는 “아일랜드가 결국 동참하더라도 최저세율이 15%보다 높은 선에서 정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을 아일랜드가 우려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2.5% 정도의 상향 조정이면 몰라도 예컨대 21%까지 최저세율이 올라간다면 아일랜드 입장에서는 경쟁력을 사실상 상실하는 셈이 돼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노호 장관도 현재의 개혁안에는 동의할 수 없다면서도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 재계와 사회단체 등으로부터 여론을 수렴하는 작업을 오는 9월까지 벌인 뒤 정부의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여론 수렴을 거쳐 정리한 입장을 토대로 미국과 논의를 벌이겠다는 뜻이다. 도노호 장관은 오는 10월께 미국과 다시 본격적인 협의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