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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vs '안 맞은'...백신으로 쪼개진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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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vs '안 맞은'...백신으로 쪼개진 미국

미국(보라색) 및 전세계 신규 백신 접종건수 추이. 지난 4월 이후 급하락하고 있다. 사진=Our World in Data이미지 확대보기
미국(보라색) 및 전세계 신규 백신 접종건수 추이. 지난 4월 이후 급하락하고 있다. 사진=Our World in Data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예방 백신 접종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한때 주춤하는 것으로 보였던 미국의 코로나19 사태가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백신 접종 확대 덕분에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전제 하에 대폭 해제된 코로나 방역 조치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역시 코로나 사태가 크게 누르러졌다는 전제 아래 뚜렷해지고 있는 경제 회복세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백신 맞은 미국인 vs 백신 안 맞은 미국인


미국 최고의 감염병 전문가로 대통령 수석 의료자문관을 맡고 있는 앤서니 파우치 박사는 25일(이하 현지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엄숙하고 강한 어조로 현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한마디로 현재 미국이 ‘백신을 맞은 미국’과 ‘백신을 맞지 않는 미국’으로 선명하게 갈라지고 있는 양상이라는 것.

그는 이날 CNN방송에 출연한 자리에서 “현재 미국의 상황은 백신을 맞지 않아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돼 있는 미국인 그룹과 백신을 맞아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태에 있는 미국인 그룹으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라고 주장했다.

아직 백신을 아직 맞지 않은 국민들 사이에서 앞으로 코로나 대유행 사태가 터질 것이라는 경고다. 그렇게 될 경우 결국 백신 접종을 시도한 것이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한채 미국 전체가 다시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실제로 파우치 박사는 “현재 미국의 코로나 사태는 백신을 맞지 않은 국민들 사이에서만 감염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미국 전역에 걸쳐 또다른 코로나 대유행이 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백신을 맞지 않은 국민들이 제발 백신을 맞기를 호소드린다”고 덧붙였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로셸 월렌스키 국장도 코로나 사태가 “백신 미접종자 사이의 유행병으로 바뀌고 있다”고 우려했다.

◇델타 변이와 접종 거부


미국 유력 일간 뉴욕타임스와 영국 옥스퍼드대가 공동운영하는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4일 현재 미국의 백신 접종 완료 인구는 전체의 49.6%, 1회 이상 접종 인구는 57.3% 수준.

독립기념일(7월4일)까지 1회 이상 접종율 70%를 달성하겠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을뿐 아니라 현재도 70% 달성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파우치 박사는 “델타 변이처럼 전파력이 강력한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백신을 두차례 맞은) 인구가 전체의 5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백신을 맞지 않은 나머지 인구에서 델타 변이가 급속도로 퍼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라면서 “많은 국민이 백신을 맞지 않은채 놔두는 것은 결코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감염력이 강한 델타 변이로 신규 확진자는 급증하는데 백신 접종율이 정체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을 돌파하지 못하면 그동안 노력해온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월렌스키 CDC 국장도 델타 변이와 접종 거부 사태가 결합된 현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전했다. 그는 22일 가진 브리핑에서 “델타 변이가 백신 접종을 맞지 않은 미국인들 사이에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다”면서 “현재 발견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83% 이상이 델타 변이로 확인되고 있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백신 임상시험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UCLA)의 크리스틴 최 간호학과 교수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현재 코로나에 걸려 입원하고 있는 환자는 99%가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심각성을 전했다.

실제로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미국인의 80% 정도가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생각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이들의 우려는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미국의 백신 거부 분위기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 조사의 경우 민주당 지지 성향 응답자의 6%가 향후 백신 접종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반면, 공화당지지 성향 응답자는 46%가 백신 접종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고졸 학력자의 백신 접종 거부 의사(31%)가 대졸 학력자의 경우(12%)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중년층(35~54세)의 백신 접종 거부율(33%)이 젊은 층의 거부율(22%)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으나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간 격차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CDC, 백신 접종자도 마스크 의무화 검토 중


코로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국민에게 미국 정부가 접종을 강요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현재로서 검토 가능한 현실적인 방안은 대폭 해제한 방역 규제 조치를 되살리는 정도.

대표적인 것이 백신 접종을 전제로 CDC가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 조치다. 그러나 문제는 규제를 한번 늦추는 것은 쉽지만 늦춘 것을 되살리는 경우에는 커다란 저항이 수반되기 십상이라는 것.

파우치 박사는 백신 접종자의 경우에도 마스크를 다시 쓰도록 하는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CDC가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발언으로 볼 때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행정 시스템이 연방 정부가 일률적으로 방역 조치를 시행하기 어렵게 돼 있는데다 공화당 주지사가 이끌고 있는 상당수 주에서는 연방 정부의 방역 조치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행보까지 보이고 있어 백신 접종 거부 사태가 해소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백신을 이미 맞은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백신을 맞은 대가가 다시 마스크를 쓰는 것이냐는 불만이 벌서부터 터져나오고 있고 백신을 여전히 거부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압박하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코로나를 둘러싼 국론의 분열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