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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Y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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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Y를 말하다

이재하 플랜비디자인 파트너위원
이재하 플랜비디자인 파트너위원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삼성전자 가전 브랜드, 비스포크(BESPOKE)의 CF는 최신 트렌드 음악이 아닌 서태지의 '컴백홈'을 배경음악(BGM)으로 채택했다. '컴백홈'은 대략 26년 전 우리 밀레니얼 세대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었던, 당시 비니 모자를 유행시키고 친구들과 최소 한 번쯤 안무를 따라 했던 전설적인 음악이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스마트폰도, 유튜브도, 아이팟과 같은 MP3 플레이어도 없었던 그때 그 시절. 귀하디 귀한 카세트 플레이어를 볼펜으로 감아가며 들었더랬다. 그랬던 Y(밀레니얼)가 오늘날 우리 사회 전반에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주인공이 되었다(국내 MZ세대 경제활동인구 비율: 44.6%). 또한 삼성과 같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그것도 광고에서 주 타깃 하는 메인 소비자가 되었다(국내 MZ세대 인구비율: 32.2%).

'Y세대'라는 용어는 과거 1997년 이웃나라 미국에서 '2000년에 주역이 될 세대'를 지칭하며 보험회사인 프루덴셜의 보고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른바 밀레니엄 세대라고도 불리며, 베이비붐 세대가 낳았다고 해서 '에코(메아리) 세대'라고도 한다. Y세대의 출생연도는 관련하여 여러 가지 정의가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는 1980년도에서 1994년생까지가 해당한다. 사실 밀레니얼 세대는 다른 어느 세대보다 기술 진보를 급격(?)하게 받아들였던 세대이다. 과거 X세대들이 주로 사용했던 삐삐를 유년기에 직간접적으로 체험했으며, 터치스크린은 고사하고 가로로 돌아가는 화면, 16화음이 지원되는 흑백 휴대폰에 열광하던 시기를 거쳐 오늘날 스마트폰까지 섭렵했다. 또한 486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페르시안 왕자부터 이후 PC, 인터넷의 급격한 발달로 가능해진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 포트리스를 친구들과 1시간에 1000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하며 전국 PC방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관련 산업을 부상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한 세대의 구성이 의미하는 바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그들은 메인 플레이어가 되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Y는 메인 플랫폼을 유튜브로 바꾸어 버렸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오후 9시 이후 디지털 매체 사용률 1위가 어느새 유튜브가 되어버렸다(56.7%). 지상파는 18.8%에 불과하다. 과거 TV가 지배하던 사회, 경제적 영향력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메인 플랫폼이 옮겨가며 기존 미디어 파워는 급격히 추락했고, 이제 Y세대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들이 뉴스보다 유튜브 콘텐츠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한편 기존 경제 시스템의 중심인 화폐도 변화가 시작되었다. Y세대 끝자락에 있는, 러시아가 낳은 천재 비탈릭 부테릭이 스무 살에 만든 이더리움은 오늘날 가상화폐 시가총액 2위를 기록 중이며, 1위인 비트코인과의 격차를 점차 줄이고 있다. 정치분야에서는 가장 보수적인 국내 정당에 85년생의 밀레니얼 정치인이 당권에 도전하고 있다. 새벽 배송이라는 유통업 배송 생태계를 바꾼 마켓컬리는 83년생 CEO가 회사를 세운 지 불과 6년 만에 매출 1조 클럽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회사원 Y는 현재 대리-과장 등 팀의 실무를 책임지는 중책을 맡고 있다.

Y는 고민이 많다. 수 없이 광탈하며 정말 힘들게 취업했지만, 회사 성과와는 전혀 상관없는 보고서 작성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평생직장도 없는 우리인데, 무작정 희생하라는 강요는 이제는 공감되지 않는다. 주는 것도 감사하게 여기고 받으라는 인센티브는 그 산정 방식이 도저히 납득이 안 되고, 어쩌다 용기 내어 옳은 말을 하더라도 '역시 요즘 애들은...', '역시 밀레니얼이야...'라며 혀를 차는 선배 세대들의 선긋기에 점차 지쳐간다. 더 큰 문제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이러한 불합리성을 수용하더라도, 앞으로 후배 MZ세대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Y는 단지 상식을 원한다.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기존의 관행에 질문을 던진다. 이미 세상이 변했고, 그 중심에 MZ세대들이 있다. Y는 기성세대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진정한 경청은 단지 듣는 것(Listen)이 아니라 상대방의 요구를 최소 한 개라도 수용(Accept)해주는 것이라고. 이제 더 이상 우리를, 그리고 변화를 거부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이재하 플랜비디자인 파트너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