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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의 춤 '역사를 품은 작은 몸짓'…전통춤 품계에 등재한 당찬 심결(心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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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의 춤 '역사를 품은 작은 몸짓'…전통춤 품계에 등재한 당찬 심결(心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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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의 '즉흥무'.
명멸하는 류파 가운데/ 이리저리 방향타를 헤아리지도 못한 가운데/ 방랑객처럼 흐름에 따라가다가/ 도래한 섬은 무인들의 도량/ 보이지 않는 곳의 기운이 보듬어/ 기름기 없이 불혹에 치른 성년의 개인 춤판/ 익숙한 레퍼토리 위로 달라붙는 격려/ 그녀는 고된 전통에 포획된다/ 때깔 좋은 춤이 스쳐 가는 현대에도/ 오방색 복식은 압도적 품격을 견지한다/ 현대와의 결별 같은 유별한 창의가 은하수처럼 뿌려지고/ 알듯 모르는 신비가 스며들어/ 빛나는 기교가 살아 숨 쉬는 춤판

7월 31일(토) 저녁 일곱 시 두리춤터 블랙박스 극장에서 임학선댄스위·두리춤터 주최·주관, 성균관대 유가예술문화콘텐츠연구소 후원의 박지선(안양예고 교사)의 전통춤 ‘역사를 품은 작은 몸짓’이 유혜진(성균관대 무용학 박사)의 사회로 공연되었다. 전통춤꾼 박지선은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강선영류 태평무 전수자, 국가무형문화재 제85호 석전대제 성균관대 팔일무 전수자로서 그녀의 춤 갈래의 향방이 궁금증을 낳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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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의 '춘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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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의 '춘앵무'.

박지선은 그동안 이론과 실제, 전통춤 연구와 의무적 춤 공연을 분주히 오갔다. 박지선의 민망을 털어내는 첫 번째 개인 공연은 ‘공연의 의미’를 살리며 통과의례를 무난하게 마쳤다. 그녀는 현란한 수사로 전통춤을 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2·30대에는 창작무용에 큰 관심을 가지고 서울시 지정 전문무용단인 ‘임학선댄스위’ 수석 단원으로서 안무작을 내었고 많은 창작무대에 활동해왔지만, 전통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전통춤은 한국춤의 기본, 그녀의 춤과 정신을 다스리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박지선은 올해부터 자신을 바로 세우는 무용사적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개인의 발전이 무용사적 발전이라고 생각하고 전통춤 레퍼토리를 꾸준히 훈련하는 과정에서 내공을 쌓아가면서 무형 자산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박지선은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전통춤은 한국 춤 철학의 근원이자 자신이 추고 있는 춤의 근거임을 확신하면서부터 개인 공연에 도전하겠다고 다짐해왔다. 불혹의 나이에 자신의 연기적 기량이 담긴 모든 춤을 스승, 연구자, 동료, 후학들에게 온전히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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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의 '즉흥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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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산조

생각이 머무르던 그대로 박지선의 춤 ‘역사를 품은 작은 몸짓’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레 정해지고 박지선의 핵심적 레퍼토리 네 편, 김천흥류 ‘춘앵무’, 강선영류 ‘즉흥무’, 황무봉류 ‘산조춤’, 강선영류 ‘태평무’가 들어섰다. 천지윤(이화여대·추계예대 외래교수) 연주의 해금산조가 찬조로서 가쁜 춤이 여유를 갖는다. 박지선의 전통춤 홀춤을 통해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춤의 원리와 구조를 분석하고 화두를 깨듯 그 춤 속에 담긴 삶의 메시지를 찾아가는 작은 움직임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춘앵무’(김천흥류); 19세기 초, 궁중 정재의 분위기를 박지선을 빌어 느낀다. 화창한 봄빛을 타고 버드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꾀꼬리 모습을 의인화한다. 여섯 자의 화문석 위에서 노란색 앵삼과 일곱 색깔의 한삼을 양손에 끼고 춤춘다. 박지선은 우아함과 극도의 절제미를 선보인다. ‘즉흥무’(강선영류); 20세기 초, 한성준이 정리한 ‘살풀이’를 강선영이 발전시킨 춤이다. 몸을 바로 세우는 ‘입춤’과 수건을 들고 추는 ‘수건춤’은 흥에 따라 두 양식의 범주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전통 가락에 박지선의 역동적 즉흥성이 표현되어 한과 조응하는 포용성이 돋보이는 맵시의 춤이다.
‘산조춤’(황무봉류); 1960년대 산조에 맞춰 만들어진 이 춤은 전승자의 개성에 따라 ‘잔영’, ‘회상’, ‘정금에 담은 여인상’, ‘연인’ 등 부제가 붙어있다. 철가야금 반주의 완급의 장단을 춤으로 자유롭게 형상화한다. 박지선은 신무용의 형태미가 돋보이는 섬세한 몸짓으로 여성성을 강조한다. ‘태평무’(강선영류);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며 한성준이 집대성한 무대춤을 강선영이 이은 춤이다. 진쇠장단을 비롯 여러 가락으로 구성된다. 박지선은 의젓하면서도 경쾌한 춤사위와 가벼우면서도 절도 있게 몰아치는 발 디딤새로 신명과 기량을 과시한다.

박지선의 '산조춤'.이미지 확대보기
박지선의 '산조춤'.

찬조 출연한 천지윤의 지영희류 해금산조는 경기무악의 대가 지영희(1910-1979)가 구성한 것이다. 그는 20세기 한국음악 분야의 입지전적 인물로 해금, 피리, 장단 등 전통음악 전 분야에 능통했다. 산조는 진양-중모리-중중모리-굿거리-자진모리 등의 장단에 연주자 스스로 가락을 구성하고 즉흥성을 가미하는 전통이 있다. 제39회 난계국악경연대회 일반부 문화관광부장관상 수상자 천지윤은 ‘산조와 무악’, ’여름은 오래 남아‘, ‘관계항1-경기굿’의 음반이 있다.

무엇이나 ‘처음’은 늘 설레고 신선한 법이다. 여유는 부리기가 힘들고, 평상시의 완급과 강약, 디딤과 사위의 불균질이 슬쩍 삐져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자신과 전문가만이 알 수 있는 아쉬운 점은 다음을 기약하는 에너지가 된다. 박지선의 첫 개인 공연도 그랬다. 역사를 지닌 춤을 연마하는 데에 정성을 쏟았지만, 그가 상상하고 생각했던 연출적인 면까지는 완성하지 못했다고 한다. 박지선은 겸허를 앞세우고 하나씩 온전히, 정통에 기인한 무대를 만들어나가겠다는 자신감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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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의 '태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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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선의 '태평무'.


박지선, 자신의 행성을 찾아가는 어린 왕자의 모습이 비치는 무용학 박사이다. 어안렌즈의 왜곡을 표준으로 돌리고자 하는 시대적 원근법을 구사한다. 팔월의 광시(狂市)에서 종려나무 숲으로 스며든다. 익숙한 풍경에서 호흡하는 이즈음의 나날은 약간의 방황과 일탈의 자유가 주었던 상처를 아물게 한다. 전통의 고즈넉함처럼 비치는 현상을 나름의 낯섦으로 타개할 비책을 연구해야 한다. 현대적 사고로 전통을 아우르는 그녀는 창작의 언저리에서 전통춤의 심층부로 진격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