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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합법 사행산업의 'ESG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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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합법 사행산업의 'ESG 효과'

김종국 건국대 겸임교수(정책학 박사)

김종국 건국대 겸임교수(정책학 박사)
김종국 건국대 겸임교수(정책학 박사)
서울 강남의 최대 상업 요충지인 스타필드 코엑스몰 중심부에는 7만 권의 도서류를 소장한 '별마당도서관'이 있다.

비싼 임대료를 낼만한 공간에 서점도 아닌 도서관이 자리잡고서 코엑스몰을 이용하는 누구나에게 자유롭게 책을 빌려 주거나 독서의 기회를 제공하고, 쇼핑에 지친 연인·가족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책상에는 독서에 몰입할 수 있도록 책상용 조명등과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콘센트까지 설치돼 있다. 이 모든 것이 공짜이다.

코엑스 내부의 넓은 공간에 그것도 임대료가 비싼 자리에 책도 안 팔고 도서관을 만들다니…. 철저히 손익관계를 저울질해야 하는 사기업인 신세계그룹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일까.

먼저, 별마당도서관을 시민의 만남의 장소로 각인시켜 스타필드를 다른 경쟁업체보다 흡인력 높은 쇼핑몰로 만들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다.

별마당도서관은 과거 서울 종로2가에 있던 '종로서적' 또는 강남역에 있던 '뉴욕제과'와 같은 만남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휴대전화가 없던 1980년대 대학생과 청소년들은 '우리 어디서 만날까' 하면 '종로서적 앞에서 만나~' 하거나 '뉴욕제과 앞에서 봐~' 하면 끝이었다. 이제는 "별마당도서관으로 와!" 하면 끝이다.

별마당도서관 개관 4년이 넘은 지금, 이러한 신세계그룹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세계그룹에겐 그 이상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최근 국내외 기업들의 경영 화두는 사회적 가치, 정확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이다.

ESG경영의 핵심은 최대의 '수익(Profit·경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에 최대의 '혜택(Benefit)'을 창출하는 것을 기업의 궁극 목표로 삼는 것이다.

영국 유니레버, 독일 바스프, 한국 SK그룹 등은 '비용(Cost)' 대비 얼마나 많은 '사회적 혜택(Benefit)'을 창출하는 지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당기순이익 등 전통적 재무제표와는 별개로 사회적 혜택을 화폐화한 재무제표를 매년 작성해 이를 기업의 최종 성과로 발표하고 있다고 한다.

시민에게 '선물'과도 같은 공간인 별마당도서관을 제공함으로써 신세계그룹은 임대료 등 '기회비용'보다 더 많은 '사회적 혜택'을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혜택을 화폐로 환산해 관리하고, 이를 더 효과 있게 창출하기 위한 노력은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 공기업에게 더더욱 필요한 과제다.

특히, 사행산업을 운영하는 공기업은 '도박산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이같은 사회적 혜택을 화폐화하기 어려울 것이며, 그래서 더더욱 사회적 혜택을 체계적으로 측정·관리·창출하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사행산업은 '필요악'으로 무조건 없애면 좋을 것 같지만, 인간의 본성상 억누를수록 음성화돼 도박중독·지하경제 등 폐해를 더 키우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폐해를 최소 비용으로 최소화시킬 수 있는 규모 만큼만 합법화시켜 운영하는 공기관이 한국마사회·강원랜드·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이다.

이들은 합법 사행산업을 운영해 불법도박·지하경제·조직범죄의 확산을 방지하는 '사회적 혜택'을 창출하고 있다. 매년 수조 원의 레저세·축산발전기금 등 세금이나 기금 납부, 각종 사회공헌사업은 '덤'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온라인 발매 법제화를 통해 1년 넘게 멈췄던 합법 경륜·경정을 정상화했고, 강원랜드는 30% 안팎의 부분적 고객 입장을 통해 카지노고객이 불법시장으로 흘러드는 부작용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마사회만은 도박중독·사행심조장을 내세우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반대로 온라인 발매를 못하고 있다. 농식품부의 주장과 반대로 합법 경마가 중단된 최근 1년 반 사이 상당수의 기존 합법경마 고객들이 일본 경마 등 불법시장으로 흘러들고 있음은 여러 조사결과에서 드러나고 있다.

불법시장 확대, 도박중독자 양산, 국부 유출 등 마사회가 합법 경마를 운영하지 못해 잃는 '사회적 혜택'을 화폐로 환산한다면 얼마나 될까. 마사회가 '매출 제로(0)'로 입는 재무제표상 당기순손실 수천억 원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강남 노른자땅 한복판에 무료 도서관을 운영할 생각을 한 것은 시대 흐름을 읽은 한 사기업의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정작 공공성을 존재 이유로 내세우는 공기관의 ESG경영을 다름아닌 정부가 막고 있는 상황에서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을 지나칠 때마다 한국마사회의 조속한 ESG경영을 바라는 간절함이 더해지는 것은 코로나로 위기를 맞은 마사회와 국내 말산업 종사자들의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필자의 주장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